'마중도 배웅도 없이'를 읽고, '계절 산문'을 떠올리며
사랑하는 작가가 있다. 독자의 사랑이 늘 그렇듯 내가 그를 처음 사랑하기 시작한 것도 한 책으로부터였다. 그 책은 짙은 초록색을 입고, 어떤 연인의 모습을 몸에 그리고 있었다. 얼굴 없는 연인은 어떤 연인도 될 수 있으므로, 책의 표지는 곧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리고 역시나 나의 이야기를 하는 책에, 작가에 나는 매료되었다. 페이지를 거듭할수록 감정은 상열감으로 차올랐다. 좋아하는 낱장의 모서리를 하나둘 접다 보니, 온전한 페이지를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마저도 책을 다시 곱씹자 더 이상 접히지 않은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모든 페이지가 마음에서 발이 걸려 넘어졌다. 그는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 이번에는 가을의 바랜 낙엽 같은 책이 출간되었다. 의도라도 한 듯 초록이 현현했던 이전 책과 대비되는 색채였다. 마치 계절을 따라간다는 듯. 혹은 살아 있는 모든 건 푸르름 뒤에 반드시 진다고 말카지노 쿠폰 것처럼.
대체로 시가 주를 이뤘던 전작과 달리 이번에는 산문으로만 가득 찬 책이었다. 여백이 많은 시도 좋지만 기왕이면 사랑하는 작가의 생각을 더 오래 들을 수 있는 산문을 나는 더 좋아한다. 나는 타인의 글을 읽을 땐 주로 나의 생각을 덧대는 편이지만, 사랑하는 작가 앞에서 속수무책이 된다. 생각을 멈추고, 그저 그의 생각을 길잡이 삼아 나아가고 싶어진다. 어느 한 곳으로도 새지 않고. 이 이야기에서만큼은 오직 작가의 생각만이 길이라 삼고, 살고 싶어진다. 그렇기에 이 책은 나에겐 더할 나위 없는 책일 것이었다. 기어이 1편보다 나은 2편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대개 이 허들을 넘지 못한다. 내가 서 있는 각도에서 작가는 허들을 넘지 못했다. “나는 죽은 사람들이 좋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나보다 먼저 죽은 사람들과 모두 함께 다시 태어나고 싶다”를 지나 “이번에는 내가 먼저 죽고 싶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면서부터 눈물을 참다가 더운 육개장에 소주를 마시고 진미채에 맥주를 마시고 허정허정 집으로 들어가는 기분, 그리고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서야 터져 나오던 눈물을 그들에게 되돌려주고 싶다. 그렇게 울다가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난 아침, 부은 눈과 여전히 아픈 마음과 입맛은 없지만 그래도 무엇을 좀 먹어야지 하면서 입안으로 욱여넣는 밥. 그 따듯한 밥 한 숟가락을 그들에게 먹여주고 싶다.”라는 앙갚음 같은 그리움으로 끝나던. 한 장짜리 산문조차 내 발을 잡아 놓지 않던 전작은 아이러니하게도 후속작을 바래게 하고, 자신을 더 추켜올렸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다르게 평가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까지는 아닌 독자에게는 1편도 2편도 모두 명작일지 모른다. 때론 나보다 더 그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1편보다 나은 2편이라 불릴 수도 있다. 서로 다른 위치에서 작가를 바라보기에 일어나는 착시일 뿐이니까. 그리고 비단 작가와 독자의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착시가 아닐 것이다.
애정이라 이름 지을 수 있는 모든 곳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각도에서 타자를 본다. 사랑하는 마음은 같아도 서로 서 있는 곳이 달라서, 누군가에게는 한결같거나 혹은 더 나아졌다 불릴 수 있는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이제 변해버리고 나를 덜 사랑하는 사람으로 불릴 수 있다. 카지노 쿠폰는 사랑을 저버리니까.
1편보다 못한 2편을 말하는 내가 서 있는 자리에는 항상 ‘카지노 쿠폰’가 있었다. 늘 변하지 않을 거라는 카지노 쿠폰, 늘 나를 만족시킬 거라는 카지노 쿠폰, 늘 나를 사랑하고 있을 거라는 카지노 쿠폰, 늘 아름답고 예쁠 거라는 카지노 쿠폰. 상대가 실제로 변했든 변하지 않든 중요하지 않았다. ‘카지노 쿠폰’는 그저 한 번 싹트면 사랑을 저버리기 위해 존재할 뿐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카지노 쿠폰하지 않기로 한다. 카지노 쿠폰가 없는 자리에 서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싶다. 설령 그들이 변하더라도 이번에는 여전한 마음과 애정으로 내가 더 그들을 사랑하고 싶다.
과일 장사꾼을 위한 이야기 <내가 팔았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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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배田性培 :1991년 여름에 태어났다.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너와 나의 야자 시간』 이 있다. 생生이 격동하는 시기에 태어나 그런지 몰라도 땅에 붙어사는 농부와 농산물에 지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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