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15
"이지안 씨!"
"아무것도 아닌 거야. 행복하자"
박동훈의 음성이 여운을 준다.
이 드라마에서 나는 도청이라는 도구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생각했다.
사실 누군가가 나를 도청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끔찍하다.
이지안은 도청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어른들의 진짜 세계를 배우는 작고 불쌍한 어린 소녀이면서
그 속에서 인생의 빛을 발견한 순간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지안이 도청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솔직히 놀랐을 박동훈이지만,
이지안을 찾는 도구로써 이용하는 모습에서 도청이라는 일방적이고 불순함이 사라짐을 느꼈다.
사실 박동훈은 정말 이 세상의 롤모델급 캐릭터이지 않은가.
드라마라서 요약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극한의 스트레스를 자기만의 신념으로 이기는 모습,
그리고 편견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용기, 이런 건 우리들이 정말 배워야 하는 부분이다.
2018년도 작품인데 비해 늦게 봤지만, 내가 만약 그때 봤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마흔이 된 지금 이 드라마를 보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의 카지노 게임라는 타이틀로 사뭇 남자들의 이야기 일 수 있지만, 사실 이건 남녀가 중요한 부분이 아닌
그냥 어른의 이야기이다. 진짜 어른의 이야기.
주변에 보면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거나 자기만의 생각에 사로 잡혔다는 식으로 평가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런 카지노 게임들에게 다가감이 아닌 적당한 거리에서 탐색만 하고 있다. 그리고 선입견이라는 이상한 프레임이 생기면 그 카지노 게임은 그냥 이상한 카지노 게임이 되어 있다. 평범한 보통의 카지노 게임들과 다른 카지노 게임이 되어 있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들은 그 카지노 게임을 정말 진심으로 챙길 수 있을까?
예전에 우리 팀에 어린 여자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일명 MZ세대. 그동안의 회사 생활은 사실 근로계약서가 중심이 아닌 그 팀의 분위기와 이미 자리 잡고 있는 터줏대감들의 성향이 만무하는 그런 환경에서 살아남냐? 아니냐?로 갈렸을 시기이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때 당시 신입사원은 그래도 자기만의 색이 강하게 있었다. 할 말 다하는 그런 당참은 물론이고, 불합리한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순수한 호기심을 발동한다.
호기심의 순수함은 사실 중요치 않다. 대부분 "알아서 맨땅에 헤딩을 하더라도 네가 찾아보고 해결해야지"라는 생각이 나부터도..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시기였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서툴렀고, 그저 나의 안위에만 집중되던 시기였다.
신입 후배에게 나는 말을 걸고, 알려주고, 같이 일하면서 그 녀석을 알아가면서 느낀 게 있었다.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말 카지노 게임을 카지노 게임으로 대할 수 있느냐의 문제.. 카지노 게임은 원래 처음에는 못하는 게 정상인데, 사회는 원래부터 잘한 카지노 게임을 원한다.
이지안도 그런 거 아니겠는가. 4번 이상 잘해준 카지노 게임이 박동훈이라니.. 그건 우리 사회가 잘못된 거다.
어떻게 잘해줘야 되냐고 묻는다면 정확한 답은 없지만, 그래도 먼저 길을 지나왔을 때 그 뒤를 따라오는 카지노 게임에게 설명은 해줄 필요가 있다. 같은 길이어도 헤맬 수 있으니 말이다.
삶의 가이드.
나는 가이드 없이 커왔다. 부모님의 온전한 사랑은 받았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드라마에서 제일 부러웠던 건. 박동훈은 형과 동생이 있다는 점. 그것이 짐일 때도 있겠지만. 가끔은 그 짐에 파묻혀 잠들 수 있는 짐. 기댈 수 있는 짐. 그런 짐은 나는 없다. 짐 없는 삶을 살다 보니 갑자기 짐이 생기면 너무 불편하다. 그래서 그 짐을 들기만 해야 된다는 생각에 겁부터 났다.
나의 카지노 게임를 마흔에 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두서없이 글을 이어왔지만, 정말 나는 좋은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가 나중에 그저 불필요한 짐이 아닌 꼭 필요하면서도 기댈 수 있는 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