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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주 Jan 23. 2025

처음이자 마지막 사업 실패기

SPSS

1985년도에 석사학위를 위한 학점을 이수하고 석사 논문을 써야 될 때가 되었다. 물리교육전공으로 어떤 주제에 대해 연구해야 할지가 막막했다. 마침 지도교수가 미국에서 받은 박사 논문 주제를 한국에서 적용해 보는 것이 어떻겠나 생각했다. 제목이 ‘과학과 과학교육에 대한 과학교사의 태도조사’였다. 이론적 배경이나 진행과정은 지도교수의 논문대로 따라서하면 되겠으나 문제는 설문 데이터를 전산처리하는 거였다. 지금처럼 PC가 가정마다 학교마다 있던 시대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 컴퓨터는 서울대, 카이스트, 고려대 정도만 그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대형 컴퓨터가 있었다. 서울대 전산실에 있는 대형 컴퓨터는 모든 교수, 학생, 교직원의 사용하는데 그 메모리가 지금 휴대폰 메모리보다 용량이 적은 4기가 바이트였다.

문제는 그렇게 데이터를 처리해서 결과를 뽑아 줘도 그 결과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모르면 논문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처리 비용도 교사 월급이 40만 원일 때 20만 원을 받았으므로 만만치 않았다. 한 명의 설문지 결과를 코딩용지에 한 줄로 정리해 주면 며칠 후에 결과 프린트를 가져다주는 시스템이다. SPSS라는 통계패키지를 이용해서 연구목적에 맞게 여러 가지 통계분석의 결과를 프린터로 뽑았다. 나는 이를 외부에 의뢰하지 않고 직접 해보기로 결심하고 한 학기 동안 통계학을 수강하고 SPSS매뉴얼을 구입하여 열심히 공부했다. 그 결과 내 논문은 내 힘으로 방과 후에 서울대 전산실을 오가며 스스로 완성할 수 있었다.

같은 학교 학생 주임도 석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석사 선배인 나에게 논문을 완성하기 위한 각 단계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왔다. 통계처리 단계에서 내가 했던 대로 퇴근 후 관악산 서울대 전산실에 가서 며칠간 거의 막차가 끊어질 때까지 데이터를 입력하고 결과를 뽑아다 주었다. 고맙다고 점심을 얻어먹은 게 전부였다. 그리고 잊고 있었는데 다음 학기에는 학생 주임 소개로 왔다며 서너 명이 한꺼번에 전산처리를 부탁해 왔다. 전산처리비가 거의 무료지만 완전히 공짜는 아니어서 프린트 한 장당 얼마, CPU사용 초당 얼마 단말기 1시간 얼마 이런 식의 요금이 부과 됐고, 기존의 시스템으로 하면 20 만원씩 내야 했으므로 한 명당 10 만원씩 받고 논문이 될 수 있도록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그 학기 나를 통해서 5명쯤 교육 석사학위를 받았다. 교감이나 교장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석사학위가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나이가 좀 있는 선배 선생님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잊고 있었는데 다음 학기에 논문 쓸 시기가 되니 이번에는 10명도 넘는 사람으로부터 전산처리 요청이 왔다. 아무개, 아무개한테 소개받았다는 것이다. 강릉과 부산에서도 연락이 왔고, 교육이 아닌 경영이나 역사 등 다른 분야의 논문 등 다양했다. 문제는 한 학기 중 설문지 설계하고 설문 지을 받아서 통계처리하는 기간은 한 달 남짓 밖에 없어서 의뢰인 전부를 처리해 줄 수가 없었다. 통계처리에서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든 과정이 데이터를 입력하는 과정이다. 데이터 입력 방법이 지금처럼 OMR카드나 기타 다른 입력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손으로 입력하는 방법밖에 없어으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사례수가 1000개 2000개 되는 데이터는 거의 1주일이 걸렸다. 그러면서 느낀 것이 누가 단순 작업인 데이터만 입력해 주면 사업이 될 것 같았다.


그때쯤 미국에서는 IBM PC가 막 나오던 때여서 가격을 알아보니 1500만 원에서 2000만 원 한다는 거였다. 중형 아파트보다 비쌌고, 600만 원짜리 아파트 전세 사는 나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그래도 일단 동대문에다 사무실을 얻어 ‘구일기획’이라는 간판도 달았다. 컴퓨터는 살 수가 없고 전화기 한 대 덩그러니 있는 사무실이었다. 의뢰를 받으면 고용된 사무원으로 하여금 서울대 전산실에 데이터를 입력해 주면 방과 후 결과를 내가 뽑아주면 되리라.

이제까지의 추세로 보아 다음 학기에는 의뢰자가 50명 100명은 되리라고 예상됐다. 그런데 정작 멍석 깔아 놓으니 아무도 안 오는 거다. 기껏 사무실에 왔던 사람도 사무실에 전화한대 달랑 있는 거 보고는 나가 버린다. 어떤 이는 자기 논문 제목이 이건대 통과되도록 써줄 수 있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서울대 전산실은 원칙적으로 교수, 학생, 교직원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다. 학교를 졸업하면 전산실에 내 계좌를 폐쇄 신청해야 하지만 전산실에서 기존 계좌를 검열하지는 않아서 내가 쓰는 것도 조심스러운데 내 직원이 상주해서 공공의 컴퓨터를 사용할 수는 없다. 더구나 석박사 논문 통계처리 기간이 한 학기에 한 달 정도밖에 안돼서 사무실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그나마 손실을 줄일 수 있었던 것은 사업자 등록도 하지 않았으며 직장(학교)에 사표를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몇 년 후에 우리나라에도 디스크를 넣어야 구동이 되는 PC가 들어오기 시작해서 큰 회사나 관공서부터 컴퓨터가 놓이기 시작했다. 그즈음 학교 성적무료 카지노 게임는 외부에 의뢰했다. 학생들이 응답한 OMR카드를 모아다 무료 카지노 게임업체에 주면 며칠 후에 결과를 받아오는 식이다. 물론 그 무료 카지노 게임비용은 학생 개인 부담이다.

이때 서울시 교육청에서도 시범사업으로 학교 자체 성적처리를 할 수 있으면 처리용 컴퓨터를 지원해 준다는 공문이 왔다. 컴퓨터에 욕심이 있었던 터라 내가 해보겠다고 지원을 했다. 이후에 잘못되면 모든 책임을 각오해야 한다고 주위에서 말렸지만 무식이 용감이라고 전산실을 교무실 옆에 만들고 컴퓨터를 받아왔다. 컴퓨터가 온도에 예민하다는 핑계로 학교에는 처음 에어컨도 설치됐다. 내부에 하드 디스크가 장착되어서 바로 구동되는 신형 컴퓨터(AT)와 카드리더기, 프린터가 완비되었다. 물론 성적 처리 전용 소프트웨어(프로그램)도 내장되었다.

문제는 카드리더기에서 발생했다. 각 문항을 읽는 센서 24개가 따로 있는데 특정한 센서의 감도가 낮으면 흐리게 마킹한 것은 공란으로 무료 카지노 게임하여 오답이 되고 감도가 예민하면 먼지나 약간의 오염에도 두 개로 마킹한 것으로 무료 카지노 게임하여 오답이 되었다. 처음 성적을 뽑아서 확인시킨 날 자기 점수가 이상하다는 학생들로 전산실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래서 해당 학생 카드를 찾아 확인해 보니 학생은 이상이 없었는데 카드를 잘못 읽은 거였다. 이상 있는 학생의 카드를 찾아 일일이 수작업하느라 매일 자정에 퇴근하면서도 별로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수정을 거치면 통지표를 인쇄하는 것이 마지막 일이다. 이때 프린터는 도트 프린터다. ‘찌이익 찌이익’ 소리 내며 한 줄을 찍고 다시 와서 찌이익 찌이익 두 번째 줄을 찍는다. 이미 기본 양식이 인쇄된 프린터 용지에 한 학생 성적표를 찍는 데 10초쯤 걸린다. 전교생 2500명을 찍으려면 25000초 약 7시간이 걸린다. 퇴근하면서 프린터에 성적표용지를 걸고 가면 되겠지. 다음날 아침에 전산실을 열었을 때 프린트 용지가 엉기고 찢기고 중간에 멈춰있었다. 연결된 용지이기 때문에 찍으면서 조금씩만 각도가 어긋나도 나중에는 어망이 되었다. 그나마 프린터 고장이 아닌 게 다행이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처 안정되는데 1년 정도가 소요되었다. 컴퓨터 하드디스크 용량이 20M인데 3년간 모든 학생의 카드리더기 통과한 원시 데이터와 그들을 무료 카지노 게임한 결과를 모두 저장했는데도 용량의 반은 비어있었다.

지금은 모든 학교에서 성적은 자체 무료 카지노 게임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었고 교사 누구한테 맡겨도 큰 어려움 없이 해내고 있다. 설문지 통계무료 카지노 게임도 이제는 PC에서 각자가 무료 카지노 게임하고 있는 것을 대학교 조교실에 방문했을 때 유심히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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