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내가 서너 살 때의 일이다. 큰 솥에 장작을 잔뜩 넣고 불을 때고 있었다는 기억으로 판단해서 여름은 아닌 것 같다. 한 여름에는 부엌 아궁이에 불을 때지 않고 밖에다 따로 솥을 걸어서 불을 땠다. 그렇다고 추운 겨울도 아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를 포함한 대가족이 사는 집이어도 큰솥에 장작을 넣어 불을 땐다는 것은 엿이나 두부를 만든다던가 잔치를 한다던가 하여튼 범상치 않은 날인 건 분명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점심때 나만 빼고 모든 식구가 방으로 밥을 먹으러 안방에 들어가 있었다. 무료했던 나는 부엌으로 가서 아궁이에서 타고 있던 장작들 중에 불이 붙은 가지 하나를 꺼내 들었다. 어린 생각에 불붙은 가지에 불이 점점 작아지는 것이 아까워지기 시작해서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옆에 있는 나뭇간에 쌓인 나무에 불을 갖다 댔다. 나뭇간에 나무가 가득 쌓여 있었지만 그 당시 내 생각에 조금만 태우면 되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마싹 마른 볏짚 더미가 조금과 타고 꺼질 리 없었다. 불은 금방 전체로 번졌고 어찌할 바를 몰라서 마루로 올라와 ‘잉잉’(조금만 태울려고 했는데 불이 너무 무서워 라는 의미로) 울기 시작했다. 내 울음이 이상해서 나와 본 식구들이 부엌에서 일어나는 불길을 보고 당황하여 불을 끄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 당시 시골에 불이 나면 공회당 처마에 걸려 있는 종을 친다. 그러면 일하던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합심해서 불을 끄는 구조였다. 아마 그날도 그런 프로토콜을 거쳐서 불을 껐을 것이다. 내 기억에 쌓여있던 볏짚은 거의 다 타고 부엌 지붕은 뻥 뚫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내가 야단을 맞았는지는 기억에 없다. 나는 마루에 앉아서 잉잉 울었을 뿐 누구에게도 내가 불붙은 나무 가지로 아궁이 불을 옮겼다는 이야기를 한 기억도 없고 누가 왜 불냈냐고 물어본 사람도 없다. 7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나는 여기에 그날의 불에 대한 고백을 허공에 대고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