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나다운가
강릉 한달살이에 마음이 부풀어 서울에서 강릉으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오랜만에 옛 직장 동기에게서 연락이 왔다.
"언니, 난 지금 워싱턴에 있어."
동기는 회사에서 보내주는 해외연수의 기회를 얻어, 그곳에서 대학원을 다닌다고 하였다. 늦깎이 학생으로서의 고충, 타국에서 홀로 아이들을 양육하는 엄마의 외로움과 불안, 그럼에도 업무에서 벗어나 공부하니 리프레시된다는 직장인의 속마음을 나누어 주었다.
"언니는? 언니는 어떻게 지내?"
"나? 나야 뭐... 놀아. 매달 어디서 어떻게 놀면 더 잘 놀 수 있을까 궁리해. 하하하"
내 가벼운 대답과 상대방의 잠시간 침묵에 머쓱해져 괜히 더 크게 웃었다.
26살, 대기업 3년 차. 석사학위를 받으러 해외로 나갈 결심에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었다. 석사 후 현지에서 취업을 하던지 박사까지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으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의 눈물의 만류로 공부를 포기하고 이직을 준비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일은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일' 리스트에 꽤 오랫동안 남았더랬다.
30대, 정신 못 차리게 만드는 굵직한 일들이 터지며 그런 꿈과 후회마저 덮였다.잊고 살았는데 40대의 나이에 미국에서 공부하고 카지노 게임 추천는 동기의 소식을 들으니오래전 일이 생각났다.
'멋지다. 너의 도전이.'
전화를 끊고 멀리 있는 그녀를 마음으로 응원하였다. 동시에 '난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나?' 벌써 수십 번은 했던 생각에 다시 잠겼다.
학교를 졸업해도 동창의 소식을 듣고, 회사를 떠나도 회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사회적 관점에서 주류가 되었거나 그 과정 중에 있는 이야기가 주로 전달된다.
00 기억나지? 이번에 임원 승진했다더라. 00은 뉴욕에서 성공한 사진작가가 되었대. 00은xx에서 박사학위 수료했단다. 누구는 뭐래~누구는 어떻대~. 말이 들려오면 마음에는 얕은 진동이 인다.
잘됐다며 해맑게 박수를 치다가, 이내 손바닥에서 힘이 빠진다. 한때는나도꿈도 욕심도많은 사람이었는데.
한 방향으로 달리던 경주에서 나는 대차게 자빠졌다. 달릴 수 없게 된 다리를 끌고 레이스를 벗어나서나를 스치고 저만큼 뛰어가는 많은 이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시야에서 안 보이게 된 그들의 뒤통수에 대고 "멋있다"며 박수를 보내고 있는 내가 있다.
난 '어쩌다' 파이어족이 되었다. 자발적 퇴사라기보다 자빠져서 어쩔 수 없이 그리 되었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그리 된 김에 다 내려놓고 놀 궁리를 하며 살아간다.
그런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다. 지난주에 강릉을 방문한 친한 언니네 부부는 우리 부부의 삶이 그들 미래의 목표이자 꿈이라고 하였다.
많은 직장인들의 로망인카지노 게임 추천, 이른 은퇴를 위해 그들이 가장 먼저 그리고 제일 크게 생각하는 것은 '돈'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 파이어족이 되면 더 이상 계좌에 월급이 찍히지 않는 것 외에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나는 멈춘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데, 남들은 다들 앞으로 치고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나의 막연한 꿈을 대신 이룬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휘청 흔들리기도 한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지지하지만,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열정인지 죄책감인지 인정욕구인지 구별 안 가는 내면의 질문에 마음이 가라앉을 때도 있다.
나무를 마주 보고 나무처럼 우두커니 서서,
나 이렇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나다운지 생각한다.
이따금 바람 같은 말들이 나를 기쁘게, 슬프게 흔들고 지나가더라도
나는 나대로 묵묵하면 된다.
-고수리, '마음 쓰는 밤'(창비 2022), p124
자란다는 건 오르거나 나아가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넓어지고 깊어지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 상동, p113
답답한 마음에 집어든 고수리 작가님 책에서 위로를 얻는다.
오르거나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지만 나 역시 자라고 있을 것이다. 나의 작지만 기쁜 삶 속에서 더 넓고 더 깊게.
오늘 살아카지노 게임 추천는 사실만으로 얼마나 기적 같은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얼마나 나다운가.
파이어족이 된다는 것은 '나로도 충분히 멋있다'며 양팔로 내가 나를 끌어안는 수많은 밤을 내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