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 이름 남겨 뭐할 것인가
동물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유치하지만 좀 더 나아가 생각하면 의미 없는 말이다. 죽어서 이름을 남겨서 뭐에 쓴단 말인가. 반 고흐 같은 천재 작가도 죽어서야 이름을 남겼지만 닥터 후에 나온 것처럼 그도 죽어서야 이름을 남긴 것을 알면 통탄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유가에서는 죽어서 이름을 남겨 영원에 다가간다고 하지만 그 역시 그저 형이상학적 이야기일 뿐이다.
사람은 살아서 카지노 가입 쿠폰 남긴다. 글을 꿰어 낼 수 있는 건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여러 구슬과도 같은 낱말들을 하나의 완성된 문장이라는 줄로 꿰어낼 수 있는 건 그 사람 고유의 몫이니 말이다. 살았을 때 가장 나라는 존재를 잘 알릴 수 있는 건 글이다. 죽어서 이름을 남겨봤자 뭐한담. 살아서 글이나 쓰자.
난 최근에 의존증이 생겼다. 글을 쓰고자 하는, 그리고 씀으로써 삶을 버틸 수 있는. 얼마 전까지는 알코올 의존증이었던 것 같다. 취미가 뭐냐고 물었을 때 말할 수 없던 이유는 취미를 보낼 저녁 시간에 술을 먹고 저녁 시간을 지워버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술 대신 글에 의존하게 됐다. 단어를 조직하고 동사를 연결하고 이 뜨개질의 과정이 즐겁다.
글을 쓰려면 인풋이 있어야 한다. 들어가는 게 있어야 나오는 게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근래 관찰력이 좋아진 것 같다. 관찰해야만 생각이 떠오르니까. 어찌보면 글 쓰기 위한 간절하고도 긴박한 관찰이라고 봐도 좋겠다. 똑같은 루틴으로 살아도 똑같이 살지 않는, 하루를 특별하게 보내려고 하는 노력들을 해왔다.
그러니 보이는 것들이 있다. 강아지의 눈망울, 골목의 고즈넉함, 걸음의 여유로움, 햇살의 다정함. 예전에 한 1인 가구 프로그램에서 글을 쓴 적이 있다. 주제는 여행이었다. 당시의 난, 일상을 여행처럼 살고 싶다고 썼다. 매일 버스를 타고 출근하더라도 그날의 날씨에 따라, 공기의 습도와 온도에 따라, 햇살의 각도와 강도에 따라 하루하루 다르지 않냐는 생각의 발로였다.
한동안 그런 일상의 여정을 잊고 지냈다. 글을 쓰며 이것 저것 주의를 기울이려다보니 일상에 여정이 돼가고 있다. 하나 하나 유심히 바라보고 남아있는 다정한 것에 웃음 지어보자. 그리고 느낀 것을 글로 꿰어 남겨보자. 다시, 인간은 살아서 글을 남긴다. 죽어서 이름 남겨서 어디에 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