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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Z양 Apr 21. 2025

그 카지노 게임, 10년 뒤 날 다시 데려왔다

나의 이유

〈그 카지노 게임, 10년 뒤 날 다시 데려왔다〉

“카지노 게임서 잘 쓰시네요.”

그 말은 내 카지노 게임서보다 오래 남았다.

자존감은 낮지만 자신감은 높아야만 했던 취준생 시절
간간히 대면 면접에서 들었던 말이었다.

비루한 대학, 비루한 스펙
심지어 비루한 외모까지 가진 나에게
그 말은 단지 면접관의 따뜻한 배려라고 여겼다.
여기저기서 짜깁기한 카지노 게임서 따위가
절대 좋았을 리 없다고,
나는 그렇게 믿었다.


---

아직도 기억나는 회사가 하나 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의 나를 여기로 이끈,
그 바이럴 마케팅 회사의 채용 공고였다.

자기소개 3장
존경하는 인물 2장
감명 깊은 책 2장
게다가 글자 크기 10, A4 풀페이지.

그 당시 길게 써야 하는 카지노 게임서도
항목당 1,000자 언저리였는데
이건 그냥 '작성'이 아니라 거의 '집필'이었다.

특이했다.
왠지 이 양식을 어떻게든 채워내면
대면 면접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

그 회사는 전경도 깔끔했고,
급여 조건도 비루한 나에게는 너무 훌륭했다.

그렇게 3일간, 동네의 작은 카페에서
사장님의 커피를 축내며 사투를 벌였다.

연습장에 아무 생각이나 적고
버릴 건 버리고, 남길 건 남기고,
퍼즐처럼 글을 맞춰 붙이고
거기에 내 생각을 살짝 덧붙였다.

그렇게 진짜 카지노 게임 완성됐다.
기진맥진. 하얗게 불타고, 즐겨하던 게임을 켰다.
오래간만에 내 몸과 마음이 잠시 쉬는 날이었다.
뭔가 해냈다는 안도감에 이끌려...


---

예상대로 대면 면접이 잡혔다.
콧노래를 부르며, 룰루랄라 면접장으로 향했다.
그 회사, 대면 면접도 참 특이했다.

혹시 RPG 게임을 해봤는가?
나는 캐릭터처럼 퀘스트를 수행하듯
사무실, 탕비실, 창고까지 돌아다니며
각 부서 면접관들과 면접을 봤다.

그 상황이 신기했고,
‘게임한 게 헛된 게 아니었어.
이건 내 운명이었어!’
혼자 위안하며 가볍게 면접을 마쳤다.


---

하지만 면접장 가던 길의 콧노래는
슬픈 멜로디가 되었다.

다른 회사 면접을 보고 받은 면접비로
친구가 사준 술을 마시며 그날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는 그 회사에 관심을 보였고,
우리는 서로 카지노 게임서를 공유하던 사이였기에
내 카지노 게임을 조용히 건넸다.


---

2주 뒤, 그 친구는 그 회사에 입사했다.
내가 부정 탄다고 콧노래는 절대 부르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친구의 전공이 그 회사와 잘 맞았기 때문이다.

취업턱을 쏜다던 친구와 술을 마시며
우리는 인간이길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

그날, 친구가 술김에 말했다.
“니 글 잘 괜찮테.
취업할라카는 마음이 보이더라.
글고 생각보다… 좀 셈세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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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처음,
내 카지노 게임서는 꽤 괜찮았을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그 경험이
10년이 지난 지금,
나를 다시 글 앞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그 친구와는 아직도 잘 지낸다.

그 친구는 다른 회사로 이직했고,
지원자들을 골라야 하는 입장이기에
간간히 누가 더 괜찮은지 골라 달라는
카지노 게임서의 자기소개글만 편집한 파일을 보며

나는 내 취준생 시절의
가장 진한 파편을 다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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