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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n juho Apr 17. 2025

카지노 게임 잊은 그날


퇴근길이었다.

마트에 들러 카지노 게임 한 송이를 사 오라는 아내의 문자를 본 건, 계산대 앞에 줄을 선 후였다.

장바구니에는 두부 두 모, 샴푸 리필팩, 아이스크림 하나, 그리고 라면 한 묶음.

그 안에 카지노 게임는 없었다.


‘아, 또 까먹었네.’


하지만 다시 돌아가기엔 다리에 힘이 없었다.

50을 갓 넘긴 오재현 씨는 오늘도 하루 종일 서서 고객을 응대했다.

고객은 늘 옳고, 사장은 늘 뒤에서 지켜봤으며, 본인은 늘 간신히 버텼다.

집에 가면 또 아내의 잔소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내가 뭘 얼마나 바랐다고, 그 카지노 게임 하나 못 기억하냐고!”

한때는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뛰던 그 여인이, 이제는 카지노 게임로 그를 평가했다.


재현 씨는 잠시 고민했다. 돌아갈까? 말까?

그러다 “아이고~” 하며 무릎을 붙잡았다.

몸은 솔직하다. 귀찮고, 아프고, 피곤하다.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집안 가득 저녁 냄새가 퍼지고 있었다.

“왔어요?” 아내가 말했다.

재현 씨는 장바구니를 내밀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 카지노 게임는 못 샀어. 미안.”


아내는 장바구니를 슬쩍 들여다보더니, 뜻밖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히 장을 정리하더니, 식탁 위에 삶은 달걀과 오이, 그리고 카지노 게임 한 송이를 올려놓았다.


“아, 샀었네?”

“…응. 당신 또 까먹을까 봐. 어제 낮에 마트 간 김에 사놨어.”

“그럼 문자로 뭐 하러…”

“그냥. 혹시 기억할까 싶어서.”


재현 씨는 잠시 멍해졌다.

한껏 뾰로통할 줄 알았던 그녀가, 의외로 담담했다.

“근데 왜 아무 말 안 해?”

그가 조심스레 묻자, 아내는 웃으며 말했다.

“사람이 매일 잊는다고 혼내기 시작하면, 살아 뭐 하니.

잊어도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잖아. 카지노 게임는 그냥 과일이야.”


그 말이 마음에 콕 박혔다.

아무 말 없이 숟가락을 들었다.


며칠 후, 재현 씨는 아내 몰래 조그만 메모장을 샀다.

표지에 ‘중요한 것들’이라 적혀 있었다.

첫 장엔 이렇게 썼다.


1. 오늘 카지노 게임 있음


2. 아내는 내가 잊어도 기다려줌


3. 근데 또 잊으면 큰일 날 수도 있음


4. 잊지 말자 – 고마운 사람


그날 밤.

아내가 먼저 잠든 뒤, 재현 씨는 부엌에서 조심스레 카지노 게임를 하나 까먹었다.

달았다.

쓸쓸하게 달고, 고맙게 달았다.

그리고 조금 눈물이 났다.

딱히 슬퍼서라기보단, 뭔가 오래된 기억이 올라와서.

처음으로 아내와 데이트하던 날, 편의점에서 카지노 게임 우유를 사줬었다.

그때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나, 카지노 게임 좋아해요. 진짜 좋아해요.”

“그럼 내가 평생 사다 줄게요.”

“진짜요? 그럼 잊지 마요.”


그 약속을, 그는 자주 잊었고

그녀는 자주 기억해 줬다.


몇 달 후, 아내가 병원에 입원했다.

큰 병은 아니었지만 며칠 입원해야 했다.

재현 씨는 어색한 손길로 집안일을 해냈다.

분리수거도 하고, 빨래도 돌리고, 국도 끓였다.


그리고 병문안 가는 날, 그는 마트에서 카지노 게임 한 송이를 샀다.

누렇게 잘 익은 걸로.


“여보, 당신 카지노 게임 좋아하잖아.”

그는 조심스레 카지노 게임 내밀었다.

아내는 병상에서 피식 웃더니 말했다.


“됐어요. 이젠 안 좋아해요.”

“왜?”

“다른 과일도 좀 먹어보려고.”


하지만 한 개를 까서 먹는 그녀의 표정은

예전 그 웃음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병실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재현 씨는 주머니 속 메모장을 꺼내 다시 한 줄을 추가했다.


5. 카지노 게임는 이제 별로라지만, 여전히 좋아하는 것 같음


그리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평생 못 잊을 거 같아. 이 카지노 게임 맛은.”


ㅡㅡ 왠지 오늘은 내 상상 속에서만 이렇게

다정했고 평범했던 나의 아버지, 어머니가

생각난다... 그들도 이들처럼.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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