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하죠.
꿈에 그리던 이상형과 사랑에 빠지고,
정의가 승리하는 결말의 일부가 되고,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
누워 있는 이야기를 읽으면
뇌는 실제로 우리가 그 일을 한 것처럼
작동한다는 거예요.
경험을 많이 한 카지노 게임은
재료를 많이 가진 카지노 게임입니다.
이야기를 만들거나, 빚거나,
이어 붙일 소재가 많은 거죠.
태어난 해가 아니라 경험이,
그 카지노 게임의 진짜 나이를 말해주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결국,
저마다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뇌 과학자들의 말이 설득력을 얻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속에 두 카지노 게임이 있어도
경험이 그 둘을 완전히 다른 세상에
속하게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매혹당한 영화 속으로
좋아하는 카지노 게임을 데려가고 싶은가 봅니다.
19세기 파리의 길을 나란히 걸으며
그날 뜬 달을 함께 바라보고 싶으니까요.
“카지노 게임을 웃기는 건 한 방이야.”
가족한테도 웃는 얼굴을 보인 적이 없어서,
간장에 졸인 얼굴 같다는 평을 들어온
영화 ‘우동’ 속 아버지는 그렇게 말합니다.
“맛있는 우동 한 그릇이면 돼.
맛있는 거 먹을 땐 다들 웃잖아.”
김이 올라오는 우동을 사이에 두고
같은 속도로 등을 수그리진 못해도
우동이 나오는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는
같은 우동을 먹을 수 있습니다.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만날 수 없다면,
거기서 만나요.
우리가 같은 각도로 입꼬리를 올리는
영화 속에서.
<오직 사랑하는 영화만이 살아남는다
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살짝 밀어봅니다.
거기
우리가 함께 서 있습니다.
https://youtu.be/u_D_gaFFav0?si=Xnk7oAqppDGWB8w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