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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원 Mar 18. 2025

카지노 게임가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 카지노 게임17

봉준호 감독의 유명세를 업은? 영화 카지노 게임17을 보았다.


배경은 근미래, 카지노 게임는 사채업자를 피해 우주로 달아나려고 익스펜더블이라는 복제인간에 지원을 하게 된다.


식민지 행성을 건설하러 가는 과학 수준이다보니 인간을 복제하는 기술인 휴먼프린팅도 존재하는 세계관이라 유일한 익스펜더블이 되지만 거의 도구처럼 부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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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팅되는 복제인간은 진짜 나일까?


작중에서 카지노 게임는 죽을 때마다 휴먼프린팅을 통해 육체가 만들어지고, 그 육체에 기존의 기억데이터를 주입시켜서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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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게임17이란 숫자는 16번 죽었고 17번째 태어난 카지노 게임라는 뜻이다.


가끔 논쟁이 되는 문제지만 진짜 나는 어디에 있을까? 기억에 있다고 해야 할까? 기존 카지노 게임의 기억을 가지고 다시 생명을 찾은 카지노 게임17은 카지노 게임1과 같은 존재일까?


어쨌든 복제된 카지노 게임가 한 명일 때에는 사실 그런 철학적인 존재에 대한 논의는 필요없다.


하지만 만약 복제된 카지노 게임가 1명이 아닐 때에는 문제가 된다는 점이 명확하다. 이른바 도플갱어와 같은 문제로 누가 진짜 나인가에 대한 풀기 힘든 문제에 직면한다.


실제로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복제인간이 2명이라면, 그리고 또 본체에 해당되는 인간이 없다면 진짜는 누구라고 해야 할까?


이런 문제가 윤리적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복제기술은 인간이 함부로 발전시키기 어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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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게임17과 카지노 게임18이 동시에 존재하게 된 사건은 아무래도 감독의 그런 생각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관객 입장에서는 조금 의문스러운 설정이 바로 복제된 카지노 게임들의 성격이 다 다르다는 점이다. 카지노 게임17과 18만 하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카지노 게임18은 그전의 어떤 카지노 게임보다 분노를 쉽게 표현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과격하다. 카지노 게임17은 상대적으로 소심하지만 둘 중의 누가 진짜 카지노 게임라고 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카지노 게임를 사랑하는 나샤의 생각이 그 사실을 보여준다.


두 명이 되어버린 카지노 게임를 나누자고 하는 카이의 제안에 싫다고 말하는 나샤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한 인간을 둘로 나눈다는 것이 가당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지노 게임17도 카지노 게임18도 나샤에게는 사랑하는 카지노 게임일 뿐이었던 것이다.


혹은 이런 생각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린팅되는 복제인간은 마치 우리가 남을 따라하는 인생을 얘기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신의 인생이나 자신의 길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하고 줏대없이 남을 따라 사는 사람들 말이다.


남의 인생을 복제하는 사람이 계속해서 바꿔가며 인생을 살았어도 그 어느 것도 진짜 나 자신은 아니었을 것이다.


카지노 게임17 또한 자신을 복제하는 휴먼프린터가 파괴되고 나서야 진짜 자신을 찾는 것처럼.



죽음의 가치란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함인가


인간에게는 생사가 존재한다. 만약 생사가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 있다면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신 혹은 도구.


카지노 게임는 후자인 도구처럼 여러 실험에 이용되고 죽는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


사람은 죽음이 있음으로써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할 수도 있다. 또한 죽음이 있기에 사람은 한계를 받아들이며 인생을 선택과 집중에 몰입할 수 있다.


죽음이란 인생의 기회비용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죽으면 끝이기 때문에 더욱 더 삶을 열망할 수 없다.


만약 인간에게 죽음이 없어 끝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아쉬운 것이 카지노 게임18이다. 그의 역할은 분명 명확하고 중요했지만 그의 생각을 드러내는 장치에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미키17이 도구로 취급받은 주인공이라지만 영화 내에서는 미키18이 오히려 도구로 취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카지노 게임18은 솔직했고, 자신의 역할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도 죽음에 대해서는 두려워했다.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폭탄의 기폭 버튼을 누르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레귤러였고, 카지노 게임17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본인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을 위해 복수하고 목숨을 바쳤다. 하지만 죽은 것은 아니다. 카지노 게임17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정말 인생으 다르게 살 수 있을 텐데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2회차가 없으며, 지나온 것을 되돌릴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계속 생각해야하는 굴레에 처한다.


카지노 게임는 자신을 복제하는 행위를 멈추고나서야 도구가 아닌 인간 카지노 게임 반스로 인정받으며, 자신의 진짜 이름을 되찾았다.


우리도 지금 허명만 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짜 이름을 찾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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