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해탈
순전히 사고였다. 진심이다. 난 정말 이 친구까지 키울 생각 없었다. 굳이 이 일에 대한 원인을 찾자면 깊이 사유하지 않은 죄라 할 수 있겠다. 맙소사.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코로나가 극성일 때 우리 집에 자주 오던 조카는 복주를 보고 그만 사랑에 빠졌다. 그 후 조카는 복주와 헤어질 때마다 눈물을 훔쳤고 이를 보는 내 마음은 그때마다 찢어졌다. 해서 어느 날 조카에게 나는 덜컥 "그럼 우리 강아지 임보를 할까?"해버렸다.
아니 우리 같이 떡볶이나 먹을까도 아니고 임보를 할까 라니. 그것도 대형견을.... 고모라는 사람이 할 소린가.... 정신이 나가도 단단히 나갔지. 현실적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오빠네는 카지노 게임 추천 키울 상황이 아니다. 당시 오빠네 부부는 이미 중 고생 남매를 키우고 있었다. 이 친구들 뒷 바라지 하는 것도 버거워 애들 부모는 숨이 턱까지 찬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 내가 개 한 마리를 그것도 허스키를 조카손에 들려 보낸 거다. 처음엔 나도 조카한테 관리하기 좋은 작은 카지노 게임 추천 추천했다. 하지만 조카 녀석은 작은 개는 싫다고 완강하게 고집부렸다.
덕분에 조카와 나는 어느 날 갑자기 김포의 한 공장에 나타났다는 이 친구를 데리고 오게 됐다.(이 친구 역시 포인 핸드를 통해 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빠네 부부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고모네 다녀온다던 딸이 갑자기 낯선 개 한 마리를 안고 현관에 나타났을 때 말이다. 물론 조카한테 카지노 게임 추천를 들려 보내며 만약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개 키우는 걸 반대하면 우리는 이 개 못 키운다. 명심해라. 단단히 일렀다. 그런데 조카 왈 "만약에 집에서 카지노 게임 추천를 내쫓으면 저도 함께 나올 거예요" 했다. 뭐????????? 그제야 나는 일이 뭔가 꼬이고 있다는 걸 느꼈다.
우여곡절 끝에 개는 일단 오빠네 집에 엉덩이를 붙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정작 그 집에는 대형견을 돌볼 사람이 없었다. 나름 조카 녀석이 해탈이의 주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지만, 아무리 작아도 장차 대형견이 될 카지노 게임 추천 길 들이기에는 이제 갓 중학생이 된 조카에겐 여러모로 무리였다. 그 덕에 해탈이 녀석은 오빠네 호적에 이름만 올리고 우리 집에 와 있었다.
시간이 흘러 코로나로 중단됐던 일상이 회복되며 녀석은 학교로 돌아갔고, 조카는 이제 학원도 가고 친구도 만나야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녀석은 더 이상 카지노 게임 추천를 돌볼 처지가 안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조카가 내게 오래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라며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말하길 카지노 게임 추천가 자기네 집에 있을 때 보다 우리 집에 있을 때 행복해 보인다고 카지노 게임 추천는 고모가 그냥 키우고 자기가 와서 자주 보겠다고 했다.
욕심부리려면 데려가서 집에서 지네 식구들끼리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키울 수도 있었겠지만 지가 생각해도 해탈이가 여기서 지내는 게 행복해 보여 욕심을 접고 카지노 게임 추천 우리 집에 두기로 결정한 게 기특해 나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그러자고 했다. 그 후로 나는 예정에 없이 나는 복주 동생으로 시베리안 허스키 (믹스)를 한 마리 더 키우게 된 것이다. 또 해탈이라는 이름은 별생각 없이 조카와 내가 카지노 게임 추천 찾으러 가던 길에 마구잡이로 지은 이름이다. 최종 후보에 ‘각시탈’과 ‘명수’가 있었느니 특별한 뜻은 없었다고 보는 게 맞다. 한데 아무래도 이름을 잘못 지었지 싶다. 해탈이를 키우고 내가 늘 해탈할 지경에 놓이니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애 이름을 가만히 있으라고 만희나 조용히 있으라고 용희로 지을 걸 그랬다.
다들 삶이 권태롭게 느껴지거든 아들을 낳으라고 하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일단 허스키부터 키워보라 하고 싶다. 카지노 게임 추천 보다 6개월 언니인 복주는 이른바 로또멍이라 카지노 게임 추천 들이기 전까지는 전혀 힘들게 하는 게 없었다. 헛 짖음이 있길 하나. 어디 가서 사고를 치나 노상 내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닐 뿐이었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 추천는 다르다. 게다가 퍼피시절은 더 대단했다. 어떻게 된 게 눈을 떠 감을 때까지 사건사고를 끊임없이 치던지. 거의 일 년 동안 난 한시도 이 친구에게서 종일 눈을 떼지 못했다.
복주는 진돗개 특유의 영민함으로 뭐든 한 번 가르쳐 주면 두 번도 필요 없이 척척 했다. 앉아. 기다려. 심지어 캔넬 훈련까지 뭐 하나 힘들게 한 거 없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 추천는 복주와 완벽하게 다른 장르의 개다 카지노 게임 추천는 뭐 하나 쉽게 넘어가는 게 없었다. 앉아 라는 간단한 훈련 하나도 가르치는데 한 달이 걸렸다. 또 전에는 내가 개 키우는 걸 옆집에서도 몰랐다. 복주는 헛 짖음이 일절 없었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 추천는 달랐다. 시도 때도 없이 자기가 원하는 게 있으면 요구성 짖음을 하고 울고 또 울었다. 또 잠깐만 한눈을 팔면 어느새 먹으면 안 되는 걸 입에 물고 나타났다. 놀라서 다급하게 뺏으려 들면 녀석은 잽싸게 세탁기 뒤나 침대 밑으로 튀었다.
그러면 나는 이성을 잃고 "아니야 나와 아니야 먹지 마 먹지 마 하지 마 뱉어 뱉으라고오오오오오 호"하며 배에 힘을 꽉 주고 소리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녀석은 나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당시 이 친구는 뭐든 닥치는 대로 먹었다. 종류도 다양하다. 휴대폰 충전 줄, 티브이 리모컨 숫자패드, 카펫, 벽지, 바닥재, 나무 몰딩, 문짝, 플라스틱 슬리퍼, 비닐우산, 수세미 등등 입에 닿는 건 뭐든 뜯어먹었다. 다행히 전부 소화시켜? 큰 탈은 없었다.
배변 훈련도 힘들었는데 녀석은 언제나 눈 깜짝할 사이에 아무 데나 똥오줌을 갈겼다. 배변판은 처음 얼마간 지독히도 우연히 한 두 번 이용한 게 전부다. 때문에 매일같이 나는 이불 홑청을 뜯어 빨고 무거운 카펫을 이고 지고 빨래 방을 오가는 신세가 됐고 날이 갈수록 시름은 깊어져 갔다. 그래서 어느 날은 작정하고 대체 뭐가 문제인지 깊이 고민했다. 어째서 내 말을 안 듣는지 말이다. 생각해 보니 이 친구는 복주를 자기 리더라고 생각하고 따르며 나를 무시하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녀석에게 나는 아무리 봐도 그냥 함께 사는 덩치 큰 친구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상황이 이러니 좀처럼 훈련이 안 되는 거라. 카지노 게임 추천는 나라는 존재는 완벽히 무시하고 복주 말만 들었다. 그런데 복주는 이 친구의 배변 활동에 큰 관심이 없다. 그러니 어째. 답답한 내가 직접 우물을 팔 수밖에. 그 후로 나는 녀석이 뭔가 잘못된 행동을 할 때마다 개처럼 바닥에 엎드려 네발로 걸으며 카지노 게임 추천한테 이빨을 보여주면서 으르렁거렸다. 웃지 마시길. 나도 젊어서는 내가 나이 오십에 이러고 살 줄 꿈에도 몰랐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방법은 성공이었다. 그제야 카지노 게임 추천가 내 말을 듣기 시작했다. 그 후 이 친구는 놀라울 정도로 매일 조금씩 나아졌고 이제 더는 실내에 실수하지 않는다. 궁하니 통한 것이다.
이런 연유로 얼결에 나는 개 두 마리를 키우고 있다. 그것도 대형견 두 마리를. 요즘도 가끔 그날 김포에서 녀석을 덜컥 데려온 순간을 떠 올리면 그때의 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평소에 나는 충동적인 일을 하지 않고 모험과 변화를 두려워하는 성격이다. 그날 아무래도 뭐에 씌웠지 싶다. 카지노 게임 추천를 데려오던 날 유난히 큰 보름달이 떴던 것도 예사롭지 않았고.
한데 이제는 이 녀석 없는 인생을 상상하기 어렵다. 이 녀석과 한 해 두 해 살을 맞대고 살다 보니 녀석의 효용이 의외로 남달랐다. 먼저 녀석은 사춘기 조카의 마음에 난 구멍을 따뜻하게 메꿔주었고, 예민한 개 언니 복주에게도 밝고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마지막으로 녀석은 사람도 개도 너무나도 좋아하는 외향적인 개라 산책 중 여러 사람과 인사한다. 덕분에 나도 밖에 나가 억지로 많은 사람과 인사한다. 아마 녀석이 아니었다면 복주랑 나랑 둘이 지냈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밖으로 쏘다니지 않았을 거다. 포천에 가서 살지도 않았겠지. 그럴 필요 없었을 테니까.
녀석이 어쩌다 김포의 공장에 버려졌는지 아무도 모른다. 당시 카지노 게임 추천는 2개월 추정이었는데 오래 굶어 뼈 밖에 없었다. 귀도 새까맣게 병들어있었고 배에는 회충이 들끓었다. 집에 온 후에도 담배꽁초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카지노 게임 추천를 처음 본 동물병원 선생님께서 어미한테 관리를 못 받은 게 틀림없다 했다. 어려서 어미가 돌본 개는 행동거지가 다르다 했다.
요즘 이 친구를 보면 그러니까 우리 집에 와 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해탈이를 보면 생명의 힘이라는 게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죽으라고 그렇게 고사를 지냈지만 끝까지 버티고 버텨 누구보다 제멋대로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잘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연유에서 나는 이 친구를 ‘기적의 해탈’이라 부른다. 기적처럼 살아나 기적처럼 우리에게 왔으니. 하지만 현실적으로 말하면 녀석은 나의 십자가다. 이 얘기는 차차 밝혀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