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밍 Apr 21. 2025

[카지노 게임술례길] 100km 남은 길

카지노 게임 순례길 28일 차


가장 첫 번째 글 : #1 카지노 게임'술'례길의 시작 https://brunch.co.kr/@2smming/52/


카지노 게임 순례길 28일 차
2018. 6. 10. 일요일
사리아(Sarria) - 곤싸르(Gonzar)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
전 날 먹은 거한 저녁
'당신은 태양입니다'라는 귀여운 문구가 적힌 조형물


이전 글: 길 위의 마음들 /@2smming/200/


우연하게 만난 빵집에서의 피자와 딱 한 병 남았던 에딩거

이전 같지 않은 길

오늘의 길은 지금까지와는 분명히 달랐다. 어제의 일이 마음에 영향을 끼친 건지 오래 고민도 해봤는데 확실히 달랐다. 눈에 익은 얼굴이 아무도 없었지만 평소보다 길에 사람이 훨씬 많았다. 종종 관광버스들이 사람들을 떼로 실어와서 길 중간에 내려주기도*카지노 게임. 사람 때문에 걸음의 속도를 줄여야 하는 구간도 있을 정도였다.


사람이 많아진 건 차치하고도 순례길에서 느낄 수 있는 정이 한순간에 증발한 것 같았다. 살뜰하게 서로의 안부를 물어주고, 위해주고, 인사를 건네던 분위기가 사라졌다. 그저 함께 걷는 각자의 그룹과만 이야기를 하며 앞을 보며 걸어갈 뿐이었다. ‘Buen Camino’를 외치며 걷는 게 어색하지 않았었는데 오늘은 입밖에 소리를 내기가 멋쩍어졌다. 이제야 순례길을 걸은 지인들이 입모아 ’ 사리아부터 순례길 분위기가 달라져 ‘라고 했었는지 이해가 갔다. 함께 걸었던 친구들이 보고 싶어 졌다.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운 좋게 많이 만났다. 지금까지 걸을 수 있던 것도, 걸으면서 행복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들 덕분이다.



같이 걷는 길

지금에야 같이 걷는 친구들이 있지만 3분의 2 정도 되는 길은 홀로 걷다 말다 했기 때문에 한국의 친구들이 외롭지 않냐는 연락을 종종 했었다.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은 없어서 ‘나는 혼자 있는 게 외롭지 않은 사람이구나’ 하고 속단카지노 게임. 하지만 돌아보니 나는 분에 넘치는 사랑 속에 늘 함께 걷고 있었다. 마음 깊이 내 걸음을 응원해 주는 사람들 덕에 한 발짝씩 나아갈 수 있었고, 내 건강과 기분을 챙기는 사람들 덕에 탈이 나기 전에 내 몸과 마음을 다질 수 있었다.


순례길에는 이렇게 걷는 사람들을 위한 뷔페도 있다. 음식은 먹고 싶은 대로, 가격은 자신이 낼 수 있는 만큼만

처음 보는 사이라도 나를 위한 기도들을 담뿍 받았다. 어렸을 때 성당을 잠깐 다니기는 했지만, 기도라는 개념을 현실과 동떨어진 막연한 어떤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이곳에서 낯선 이들로부터의 기도를 받았을 때도 솔직히 ‘종교에 정말 신실하시구나'하고 넘겼었다. 그렇지만 점점 셀 수 없는 기도들을 빚지며 생각이 바뀌어갔다. 나를 위해 대가 없이 바라는 순수한 진심이 느껴졌다. 가톨릭이라도, 기독교라도, 불자라도, 심지어는 무교인 사람들도 나를 위해 빌어줬다. 그제야 기도는 종교 안에 종속된 어떤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위해 보내는 마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자신이 품을 수 있는 가장 선한 마음을 골라 깨끗하게 닦아 보내는 바람이 바로 기도였다.


이제는 나도 기도한다. 마음 깊이 그 사람의 행복과 안녕을 빈다. 만난 지 30초밖에 되지 않았더라도 나는 사람을 위해 마음 깊이 비는 법을 알게 되었다. 가장 예쁜 모양의 사랑을 골라 전하는 방법을 이 길에서 배웠다. 그리고 그 진심이 사람에게 가닿을 수 있다는 걸 확신한다. 물론 기도가 어떤 물리적인 상황을 바꾸지는 못할 수는 있다. 그래도 언젠가 차곡차곡 모인 마음들은 지친 이가 다시 한 발짝을 내딛을 수 있는 힘이 될 거라는 걸 굳게 믿는다.


*사리아부터 카지노 게임 데 콤포스텔라까지는 약 100km가 남은 길이라 여기서부터 걷는 순례자들도 많고, 100km 걷기 관광상품도 있다고 한다.



딱 100km 남은 길

100km 비석을 드디어 만났다. 100km가 남았다는 말은 지금 내 속도로 3일이면 카지노 게임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한다는 말이다. 길의 끝이 생각보다 빨리 다가오고 있다. 비석을 보고 나서야 내가 아직 이 길과 작별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말았다. 아직 그 어떤 것과도 이별하고 싶지 않다. 여기서 만난 친구들과, 새벽녘에 일어나서 걷기와 사유로 시간을 채우는 근면한 기분과 습관을, 인심 좋게 술을 따라주는 바를 만나는 행복을, 맛있는 지역 음식으로 먹는 저녁식사를, 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이지만 퀄리티가 남다른 홈메이드 와인을 포기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순례길은 언제나 길 양옆으로 정경이 펼쳐지는 고운 흙길만 걷는 곳은 아니다. 때때로 질퍽거리는 진흙탕을 넘어야 할 때도, 끝이 보이지 않는 아스팔트 길을 걸어야 할 때도, 차도 옆 언저리를 모래바람과 함께 걸어야 할 때도 있다. 솔직히 그런 순간마다 길을 권태로워했었다. 유튜브에서 10초 앞으로 돌리기를 하는 것처럼 구간들을 계속 앞으로 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제와서는 그런 생각들도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모든 길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것을, 길의 일부분으로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반성했다.


여름방학이 끝나가는 기분이었다. 28일이 지났다는 건 아무래도 거짓말 같다. 다시 열심히 보낼 테니 시작점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학답게 쌓인 방학숙제도 있었다. 이 길을 걷고 나서 딱 한 가지 얻고 싶던 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해 실마리를 얻는 것이었다. 나름 성실하게는 생각해오고 있었지만 편린에 불과카지노 게임. 산발적인 생각들을 한데 모아야만 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이제는 진짜 미뤄왔던 숙제를 할 때다.


오늘에 와서야 내게는 아직 길이 더 필요하다는 걸 확신했다. 카지노 게임 데 콤포스텔라에서 멈추고 포르투갈 여행을 할지, 더 걸을지 지금까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어쩌면 포르투갈로 넘어가 서핑을 며칠 더 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길을 끝내기에는 내 마음이 너무 버겁다. 카지노 게임부터 묵시아, 피니스테라까지 4일을 더 걷기로 결정했다. 부디 길의 끝이 천천히 다가오기를, 그리고 남은 모든 길을 애틋하게 사랑해야지.





과거와 시간의 밤

언제나 도착하기 1시간 전부터가 고비인데 오늘은 2시간 전부터 고비였다. ‘이 길 맞아?’를 적어도 50번은 말했을 거다. 길이 갯벌과 같은 늪이었다. 빨리 다른 발을 앞으로 내딛지 않으면 아래로 침잠카지노 게임. 게다가 소똥 말똥도 여기저기 있었다. 고약한 냄새 한 톨이라도 내 등산화에 닿아서는 안되고, 등산화가 흙에 삼켜지는 것만은 막아야 카지노 게임. 시간제한이 있는 게임 같았다.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땅을 잘 골라서 걸어야 카지노 게임. 우리는 거의 두 시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진창길을 걸어내 너덜너덜한 상태로 알베르게에 도착카지노 게임.


말할 힘도 남아있지 않아서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숙소 바에서 레몬 맥주를 한 잔 시켜 거의 누운 채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폐인처럼 누워있는데 누가 반갑게 인사를 카지노 게임. 저번에 종종 마주친 크로아티아 친구들이었다. 이제는 얼굴이 익은 친구들을 만나면 코끝이 찡해질 정도로 애틋해진다. 반가운 마음에 거지꼴을 하고서도 열심히 이야기를 나눴다. 지나가다가 우리가 바에 앉아있는 모습을 정말 많이 봤다고 해서 조금 민망카지노 게임. 나보다 늦게 출발했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빨리 올 수 있었냐고 물어보니 50km씩도 걸어왔다고 카지노 게임. 역시 서양인들은 체력이 좋다. 크로아티아 친구들은 이 알베르게에 오게 된 게 알베르게에서 제공해 주는 저녁이 훌륭하기 때문이라고 카지노 게임.


과연 듣던 대로 저녁은 훌륭했다. 육중한 무게의 고기와 파스타, 디저트, 무제한 와인이 오늘의 메뉴(메뉴 델 디아)로 제공되는 곳이었다. 식당에도 사람들이 진짜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꼭 이곳에서 숙박을 하지 않더라도 저녁을 먹으러 오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오늘이 28일 차지만 여전히 어떻게 파스타가 메인 요리가 아닌, 전식인지 의문이 든다. 순례길 초기에는 미처 다 먹지 못했는데 이제는 디저트까지 무난하게 먹을 정도로 위장이 커졌다. 돌이켜 보건대 지금 내가 음식을 먹는 양이 지금까지 내 인생 중 가장 많다. 성장기인 고등학생 때도 이만큼을 매일 먹어본 적 없다. 음식도, 술도 지금이 황금기다.



알베르게에는 양탄자가 깔린 아늑한 거실이 있었는데 오늘 하루의 여운이 남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맥주나 와인을 홀짝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거실에는 우철오빠와 수지, 그리고 나만 남았다. 저 멀리 부엌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우리 앞에는 한 병의 와인이 잔도 없이 있었다. 조용한 가운데서 병을 돌려가며 한 모금씩 와인을 먹다 보니 허물이 벗겨져 지금까지와는 다른 내면의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오기 시작카지노 게임.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굵직굵직한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상처를 받았던 순간이나, 생각이 변화된 순간에 대한 말도 나왔다.


짐작했던 부분도 있었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도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내가 어떤 사람을 ‘안다’라는 게 얼마나 가냘픈 사실인지 느꼈다. 내가 아는 건 큰 부분 중 티끌 같은 일부에 불과하거나 왜곡되거나 과장되어 있을 수 있다. 제 자신이 아니면 한 사람이 한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 자명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체감카지노 게임.


또 하나 느낀 점은 감정과 생각에도 이름을 붙이고 정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다. 오늘 이야기를 하면서 머릿속에 부유했던 것들이 말의 형태로 전해지게 될 때 비로소 실체가 되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는 그 감정과 생각이 어디서부터 기인했는지를 집요하게 찾아야 카지노 게임. 내가 늘어놓는 이야기 중에 우철오빠와 수지는 왜 그렇게 느꼈는지를 물었다. 명쾌하게 이유를 댈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글쎄, 왜 그랬을까?’ 하는 것들도 존재카지노 게임. 마음의 실타래를 손으로 짚어가다 보면 저 끝에 숨겨진 실마리가 있었다. 그냥인 마음은 없었다.



이야기는 새벽 늦게까지 이어졌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개운한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거대한 고민 상담소를 다녀온 느낌이면서도 끝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지금 시점에 무엇보다 필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깜깜한 거실에서 서로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꺼진 벽난로의 미미한 잔열이 감싸던 그곳은 평생 기억될 것 같다.


매일 배우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나날이 생각하는 범위가 자라난다. 아직 다 걸은 것도 아닌데 이 길이 너무 그리워지기 시작카지노 게임. 잠에 들려 눈을 감고 있었는데 문득 하나의 생각이 떠올라서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일기장에 짧은 글을 적었다.


내게는 생각을 해야 할 거리가 많았으므로 카지노 게임 길을 끝까지 혼자 걸으리라 다짐했었다. 그러다 이제는 여럿이서 걷는다. 처음에는 이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좋은’ 사람들이므로 같이 걷게 되었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이 사람들은 나를, 사람을 자신의 시각으로만 쉽게 판단하지 않는 세상에 잘 없는 사람들이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몰랐는데 귀한 빚을 지고 있었다.





오늘도 술람찬 하루, 그리고 사실 여긴 #카지노 게임순례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