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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여행자 Feb 12. 2019

강남몽과 카지노 게임몽(夢)

<週刊태이리 제32호

원주민(原住民, inhabitants of the land)은 그 지역(Region)에 본래 살던 사람을 가리킵니다. 국가나 섬 같은 지명을 단어 앞에 붙여 ‘아메리카원주민’ ‘하와이 원주민’ ‘뉴질랜드 원주민’ 이런 식으로 씁니다. 비슷한 말로는 ‘네이티브(Native)'라는 게 있는데 이건 좀 더 ’문화(Culture)'에 집중한 표현입니다. ‘디지털 네이티브’ ‘모바일 네이티브’라고 하죠. 원주민이든 네이티브든, 정복자에게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 세계 곳곳에 있습니다. 제가 나고 자란 ’카지노 게임동’에도 그비슷한 하나 고요.


#1. 원주민의 탄생과 종말

이건 1990년대 중후반의 카지노 게임동 이야기입니다. 한적했던 동네에 솔깃한 이야기가 은밀하게 돌았습니다. ‘누구네 집을 얼마에 팔았다’ ‘조금 늦으면 막차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조바심이 납니다. 한강과 가까운 한남1동 친구들부터 하나둘 이사를 갔습니다. 누군가는 목동, 잠실, 분당으로, 다른 누군가는 의정부와 일산으로 짐을 꾸립니다. 재산과 벌이에 따라 저마다 다른 곳으로 갑니다. 지각변동이 일면서 교실에는 강남에서 오고 강남으로 가는 전학생이 한 달에 최소 두어 명은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오산고 3학년 4반이었던 ‘하동훈’입니다. ‘하하’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죠.

카지노 게임▲ 하동훈은 고등학교 때 강남에서 온 전학생이었다.

2000년에는 단독주택, 맨션, 빌라, 그리고 한남역 바로 앞의 한남아파트가 와르르 헐립니다. 그 자리에 리버탑(2000)과 동원베네스트(2008)이 들어왔고, 도깨비시장 아래편에는 리버빌(2000), 하이페리온(2002), 힐스테이트(2003)라는 브랜드 아파트가 새롭게 고개를 듭니다. ‘재개발’이 뭔지 실감이 났죠. 2006년 즈음에는 부동산 바람이 한광교회, 그리고 이슬람사원 주변의 한남2동까지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빨간 기와의 낡아빠진 저희 집도 이때쯤 팔았고요. 유치원 다니던 때부터 제대 후 첫 직장을 잡을 때까지 30년 조금 넘게 한 곳에 살았으니, 이쯤이면 저도 ‘카지노 게임동 원주민’이라고 방귀 좀 뀔 만한 게 아닌 생각합니다.

카지노 게임▲ 리버탑을 시작으로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카지노 게임동 집을 팔며 특이했던 것은, 큰 손 사모님이 여러 채를 한 번에 사들인 겁니다.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이사 갈 곳을 정하지 않았으면, 월세로 그냥 여기 사셔도 된다”고 선심 쓰듯 말했죠. 집이 헐리기 전까지 관리할 사람이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지만, 그 낡은 동네를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어 거절했죠. 그때 제 주변 이웃들은 처음 만져본 큰돈을 들고 다들 어딘가로 다들 흩어졌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2000년 중반부터 카지노 게임동에는 원주민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이 별로 없게 되죠.


#2. 카지노 게임더힐 뛰자 함께 뛴 몸값

뚜껑을 연 카지노 게임동의 재개발 속도는 ‘인어의 달리기’처럼 무척 아프고 답답했습니다. 주민 동의절차는 복잡했고 세입자들은 소리쳤고 서울시는 정비계획을 자주 바꿨습니다. ‘이게 되긴 되는 건가’ 싶은 의구심이 저절로 들었는데 2007년 단국대학교가 한남캠퍼스를 통째로 죽전으로 옮기자 숨어 있던 기대심리에 다시 불이 붙었습니다. ‘외국인 전용 호텔이 세워진다더라’ ‘커다란 친환경 공원으로 바뀐다더라’는 출처 모르는 소문들이 귀를 간지럽혔습니다.

카지노 게임▲ 단국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에 위치해 있었다.

숱한 논란과 소문 끝에 그곳에는 ‘한남더힐’이 2011년 들어섰습니다. ‘단군 이래 최고가(最高價) 아파트’라는 수식어를 이름표처럼 붙이고선. 전용면적 244.8㎡(74평) 81억 원이라는 가격, 신문들은 “2018년 가장 비싸게 거래된 주택이 바로 한남더힐”이라며 1% 상류층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를 마구 쏟아냈습니다. 단국대를 밀어낸 한남더힐은, 역사 깊은 부촌(富村)인 유엔빌리지의 명성을 한 방에 따돌렸습니다. 배우 안성기와 한효주, 가수 이승철, 그리고 재벌가 4세들이 여기 몰려 산다고 하죠.

▲ 단국대에서 보면 이런 카지노 게임동 풍경이 눈에 와 감겼다.

단국대 중앙도서관에서 바라보던 카지노 게임동 노을이 꽤나 멋졌는데, 이제 그곳은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 됐네요. 한남더힐이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서, 2013년쯤부터 한남대교 사거리 일대와 순천향 병원 주변의 집값과 상권의 임대료도 훌쩍 뛰었습니다. 낡은 집들이 빈티지 카페와 술집으로 리모델링되고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했거든요. 맞아요. 방탄소년단이 숙소로 이용한다는 그곳도 바로 ‘한남더힐’입니다.


#3.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

사람들은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강남 개발시대의 욕망이 재연된 것처럼. 순진했던 그 사람들은 어떻게든 카지노 게임동 땅을 끌어안고 버티면 언젠가 큰돈이 된다고 종교처럼 믿게 됐습니다. ‘아파트만 들어서면, 10년만 더 지나면’ 카지노 게임동 땅 3.3㎡는 5천만 원이 훌쩍 넘을 거라고 합니다. 집주인들은 그때까지 내가 들어가 살긴 싫고, 빈집이 되는 건 더 싫으니 낡은 공간을 헐값에 세를 주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그곳에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몰려들었죠. 코리안드림을 안고 온 동남아와 무슬림의 외국인 노동자, 화려하지만 피곤한 밤을 보내는 이태원 출근족,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그 자리에 새로 둥지를 튼 겁니다.

▲ 한광교회를 꼭짓점으로 내려오는 방사형 구조다.

2010년부터 카지노 게임동은 서울에선 좀처럼 찾기 힘든, 기묘한 분위기를 갖게 됩니다. 뭔가 슬프면서, 이국(異國)적이고, 가난하지만 부유한, 나이 들었지만 아직 어린, 욕망와 애증의 아이러니. 누군가는 이런 카지노 게임동 산동네를 ‘서울의 몽마르뜨’라고도 부른다지요. 재개발이 만든 기묘한 얼굴입니다. 이 속도면 아마도 10년 안에 카지노 게임동 원주민은 몽땅 사라질 것 같습니다. 카지노 게임동의 랜드마크이자 우사단로 가장 높은 곳에 서 있어 꼭대기교회라고 불리는 한광교회도 카지노 게임동 재개발과 함께 없어질 거라고 하네요.

▲ 서울시와 한광교회 측의 입장이 엇갈린다.

도시는 생명(生命)입니다. 죽어가는 동네에는 새로운 기운이 필요합니다. 그걸 정부는 ‘도시재생’이라 부르고, 낡은 콩글리시로는 '뉴타운'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영세 원주민이 거대자본에 떠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걱정합니다. 원주민과 외부인, 모두가 행복한 도시개발은 ‘소리 없는 아우성’같은 역설인가요. 잘 모릅니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내 삶을 관통해온 옛 동네 카지노 게임동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는 게, 못내 아쉬울 뿐입니다.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대로 흘러가며, 이렇게 기록할 뿐입니다.


▮ 덧붙이는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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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광교회는 1957년 세워졌습니다. 제가 유치원도 다니고 중고등 학창시절에 잠시 다녔던 곳이라 기사를 좀 더 뒤져봤습니다. “다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하겠다”는 서울시 의견과 “예배드리던 거룩한 곳을 세속에 내어주느니 철거하겠다”는 교회 측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었어요. 둘의 입장을 두고 제3자인 제가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긴 어렵지만 좀 의외였습니다. 서울시가 부수려 하고 교회가 남기고 싶어하는 줄 알았는데 정 반대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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