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분가분 Dec 08. 2024

카지노 쿠폰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카지노 쿠폰


이근이 형에게



죽음

형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 소식, 그래서 일찍 귀국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그날 바로 형에게 달려갔지요. 아프셨던 아버지가 수술로 잘 회복하고 계셨는데 갑자기 찾아온 패혈증은 끝끝내 아버지를 하늘로 보내셨어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에 형의 마음은 얼마나 황망했을까요. 옆에서 듣는 저도 그런데 형은 오죽했을까요. 형 아버지의 연세를 듣고 제 아버지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걸 알고는 저도 더욱 불안해졌어요. 죽음은 항상 힘들고 불편하고 황망하고 동시에 늘 우리 곁에 있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부디 형 마음, 잘 추스르시고 아버님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할게요.


그런데 우리 앞에 또 다른 죽음이 그늘을 드리웠어요. 형이 마지막이라고 보낸 지난 편지에서 이야기했던 인천 특수교사의 죽음. 작년 서이초 선생님 이후(아니, 그 이전에도!) 멈추지 않았던 죽음들이 그래도 조금 진정되는가 싶더니만, 안타까운 일은 또 일어났어요. 인천 특수교사, 고 김동욱 선생님은 무엇이 그리 힘들었기에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셨을까요.


조금이나마 그분의 상황을 살펴볼게요. 주당 29시간 수업. 저는 그걸 듣고 깜짝 놀랐어요. 주 29시간 수업이 말이 되는 건가 해서요. 초등학교 교사의 평균 수업 시수는 21.1시간이에요. 저는 처음 기간제를 시작할 때 전담 수업으로 24시간을 맡았는데, 그걸 듣고 주위 사람들이 다들 놀랐어요. 수업 시수가 너무 많다고요. 저는 그 이후로 제 주위 교사 중 24시간 넘어 수업하시는 분은 보지 못했어요. 그런데 29시간이면 어떤 수준인 걸까요.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 40분까지 전혀 쉬지도 못하고 수업만 하는 거죠. 수업이 끝나도 카지노 쿠폰이 바로 가는 건 아니고 뒷정리도 해야만 하기에 사실상 3시까지 하나도 못 쉬고 수업만 한다고 생각해도 돼요.


학교에 있지 않은 분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몰라요. 아니, 수업 중간에 10분씩 쉬는 시간도 있고 점심시간도 있지 않으냐. 그러나 적어도 초등학교는 그사이 10분과 점심시간은 쉬는 시간이 쉬는 시간이 아니에요. (실제로 학교는 점심시간을 업무시간으로 포함하고 있죠) 그 쉬는 시간에 카지노 쿠폰은 가만히 있지 않으니까요. 선생님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관심을 보이는 건 때로 행복한 순간이기도 하지만, 그사이 교사의 휴식권은 어쨌든 날아가 버려요. 그래도 그렇게 관심을 보이고 때로 귀찮게 구는 정도의 수준이라면 괜찮아요. 그냥 넘길 수 있고 때로 즐겁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카지노 쿠폰은 그때 꼭 싸우고 문제 행동을 보여 교사는 다툼 중재하는 데 온 시간을 쏟아야 해요. 학부모 민원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카지노 쿠폰 다툼이기에 쉽게 넘길 수 없어요. 분명코 중간에 전담 시간 등으로 수업 없는 시간이 보장되지 않으면 탈진할 수밖에 없어요. 형도 아시겠지만, 수업이 연속으로 붙어있을 땐 화장실 갈 틈도 잘 없는 게 현실이에요. 김동욱 선생님은 수업만 하는데도 온몸에 힘이 빠져나갔을 거예요.


이렇게 살인적인 수업시수가 나온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어요. 특수학급 정원 6명을 훌쩍 넘은 8명 아이를 맡아 가르친 것. 특수교육법상 초등학교 특수학급의 한 반 정원은 6명이에요. 그런데 왜 8명을 맡게 된 걸까요? 학기 초 6명으로 시작한 특수학급은 전학해 온 아이들로 인해 8명으로 곧 늘었어요. 그 8명에는 중증 장애 학생 4명도 포함돼 있었어요. 김동욱 선생님은 그 학생들에게 맞고 터지고 하는 일이 다반사였어요. 허리를 다치고 얼굴을 맞기도 한 기록이 보건 상담일지에 고스란히 적혀 있지요. 법정 정원보다 학생이 많다 보니 수업 시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었던 거고요.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건, 이 책임이 장애 학생들이나 그 부모들한테 있지 않다는 거예요. 누구나 기본권으로서 교육받을 권리가 있고 그건 장애 학생이라도(중증 장애 학생이라도!) 예외는 아니에요. 전학을 오고 가는 것 또한 그들의 권리고요. 문제는 그들 장애 학생을 못 오게 하는 게 아니라, 가르칠 사람을 더 보내줘야 하는 거예요. 그 아이들이 충분히 배울 수 있게,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도 충분히 가르칠 수 있게.


법정 정원을 넘어섰을 때 재빠르게 특수학급을 하나 더 만들고 특수교사도 한 명 더 배치하는 게 맞는 건데, 교육 행정당국은 그러지 않았다는 거지요. 그 학교는 이미 그 전해에 7명의 특수교육 대상 학생이 있어 2명의 특수교사가 2개의 특수학급을 맡아 가르친 경험이 있었어요. 시설도 다 갖춰져 있었어요. 새로 보낼 특수교사가 없냐 하면 그렇지도 않아요. 바로 발령을 낼 수 있는 기간제 특수교사가 90여 명이나 있었어요. 그러나 ‘3명 이상인 특수학급에만 기간제 교사를 배정한다’라는 자체 기준이 있어 보내지 않았어요. 인천시교육청은 특수교사를 새로 뽑거나 발령 내기보다는, 3명의 보조 인력을 지원했어요.


보조 인력은 또 뭔가 싶고, 어쨌든 3명이나 지원해줬으면 많이 해준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어요. 그런데 이게 또 그렇지 않지요. 일단 채용 공고부터 관리까지 모든 과정을 다 특수교사 한 사람(고 김동욱 선생님)이 책임지고 맡아 해야 해요. 교육청에서는 돈만 지원해줘요. 가뜩이나 일이 차고 넘치는 이 특수교사는 그 학교 공문 생산량 1위를 차지할 만큼 정말 정말 일이 많았어요. 수업도 차고 넘치고 일도 차고 넘치는 김동욱 선생님은, 이제 보조 인력 채용 관리 업무까지 떠맡게 된 셈이지요.


게다가 보조 인력은 특수교육에 대한 전문 교육을 받은 분들이 아니에요. 물론 열심히 하시는 분들도 있다는 걸 알아요. 그러나 이건 열심히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개인의 성실함에 기대야 할 만큼 불완전한, 구조적인 문제예요. 법적으로 이런 보조 인력은 주 15시간만 근무해야 하는, 즉 하루 3시간 정도만 근무하는 것도 문제고 그만큼 책임감이 적을 수밖에 없어요. 분명 이분들의 존재는 없는 것보단 도움이 됐겠지만, 김동욱 선생님은 특수교사 1명이 더 간절했을 거예요.


정리해 볼까요. 수업시수도 이 학교에서 가장 많아요. 행정업무도 이 학교에서 가장 많아요. 내가 가르치는 학생에게 맞기도 하고 그래서 다치기도 해요. 너무 힘들어 교육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네가 알아서 해라’라는 답변뿐이에요. 점점 몸도 마음도, 남아있던 것들이 사그라져 갔을 거예요. 어디 하나 기댈 곳이 없어요. 그나마 아이들을 생각하며 책임감 하나로 버텨 왔어요. 주변에서 병가 쓰고 좀 쉬라는 말에 김동욱 선생님이 답한 건 “그럼 우리 애들 어떡해”였어요. 그런데 쌓이고 쌓이다 보니 이제 정말 더 이상 참기 힘들어져요. 순간 모두 다 놓고 싶지 않았을까요.


솔직히 저는 공감이 되지는 않아요. 얼마나 힘들면 그렇게 삶을 놓을 수 있을까요. 저라면 도망쳤을 거예요. 덜 힘들어지고 싶으니까요. 무책임하게 병 휴직 쓰고 도망쳤을 거예요. 그런데 김동욱 선생님은 끝까지 카지노 쿠폰을 생각하며 그 책임감에 아무것도 놓지 않았어요. 꾸역꾸역 버텼어요. 버티고 또 버텼어요. 그러다 번 아웃이 왔고, 한순간 생을 마감했어요.




MBC 탐사 방송 ‘스트레이트 275회 – 선생님이 또 죽었다’를 봤어요. 겨우 4년 차 교사였어요. 영상으로 본 김동욱 선생님의 모습은 밝았어요. 항상 웃고 있었고, 웃는 모습이 너무나 예쁜 사람이었어요. 아이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학교 옥상에 아이들의 정서발달을 위해 텃밭도 만들었던 이 교사는 분명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교사가 된 사람은 아닐 거로 생각했어요. 그저 안정된 직업이니까 이 직업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거로 생각해요.


EBS 다큐멘터리 ‘우리는 선생님입니다. 1부 – 선생님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봤어요. 서이초 박인혜 선생님의 모습도 항상 밝았어요. 앳된 모습 속에 감추어지지 않는 박인혜 선생님의 순수함과 열정을 보고 있노라면, 맘이 아려요. 교실 한 귀퉁이를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고 아이들 마음을 어루만져 주려고 ‘마음 해결소’를 만든 사람이, 1년 교육과정을 모두 마치고 학부모들에게 진심 뚝뚝 묻어나는 감사 손 편지를 쓰는 사람이, 그냥 교사가 됐을 거로 생각하지 않아요.


그들은 꿈이 있었을 거예요.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꼭 안아주는 꿈, 힘들 때 도닥여주고 위로해주며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꿈, 아이들의 성장을 보며 나도 같이 성장하는 꿈, 아이들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에 어쩔 줄 모르며 설레는 꿈, 열심히 준비해 카지노 쿠폰쳤을 때 재밌어하고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며 뿌듯해하는 그런 꿈.


그런 그들에게 웃음을 앗아간 건 무엇이었을까요. 그런 그들에게 꿈을 뺏어간 건 누구였을까요. 정말로 설레는 꿈을 가지고 처음 학교에 갔을 그들을 2년 만에, 그리고 또 4년 만에 삶을 정리하고 싶을 만큼 몰아갔던 건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의미

예전 편지에서 형에게 전했던 걸 정리하는 수준이지만 얘기하자면 이래요.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건 첫째로, 가까이서 보면 괴물 학부모의 문제고 멀리서 보면 천민자본주의의 문제예요. 공동체보다는 내 이익을 더 중요시하는 천민자본주의, 그래서 내 새끼만을 생각하는 ‘내 새끼 지상주의’의 문제. 이건 너무 큰 문제라서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예요. 넓고 크게, 그리고 오랜 세월에 걸쳐 저항하고 싸우며 서서히 변화시킬 수밖에 없어요.


둘째로, 카지노 쿠폰를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과 법, 문화의 부재예요. ‘괴물 학부모’ 앞에서 서이초 박인혜 선생님은 그 누구의 도움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바스라 졌어요. 학교의 중재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아니, 애초에 과도한 요구나 간섭을 거를 수 있을 시스템만 있었다면 박인혜 선생님이 그렇게 아스라이 무너졌을까요.


또 인천 학산초 김동욱 선생님은 그 고된 수업과 업무에도 어디 한 곳 하소연할 곳이 없었어요. 교육청은 철저히 그를 외면했어요. 교사는 죽음의 문턱 앞에 섰을 때조차, 그 어디에서도 보호받을 수 없었어요. 작년 교권 사태 이후 교권 5법이 통과되었건만 학교 현장은 그 변화를 크게 느끼진 못해요. 실제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전국 유·초·중·고 및 대학 교원 1만 1천32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 교사 중 67.5%는 교권 5법 개정 및 시행 후 교육활동 보호에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고 답했어요.


이런 어두운 현실 앞에서 카지노 쿠폰들은 있던 열정도 꺼트리고 무기력해지는 게 당연해요. 처음에는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외부의 압력에 의해 무기력해지다가, 이내 스스로 무기력해져요. 내가 이러려고 카지노 쿠폰가 됐나 싶은 마음에 정말 자괴감도 들어요. 카지노 쿠폰가 된 처음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요. 그저 하루하루 꾸역꾸역 버틸 뿐이죠. 내가 겪었던 어려움, 내가 겪었던 고단함, 내가 겪었던 무기력한 순간들이 서이초 박인혜 선생님과 인천 김동욱 선생님의 모습과 겹쳐 우울해져요. 어찌 안 그러겠어요.


그런 마음들이야 충분히 공감하죠. 저 또한 아팠던 순간들이 떠오르며 때로 두려워지니까요. 다시금 그때처럼 힘든 상황을 마주하지 않으리라는 장담을 할 수가 없으니까요. 게다가 서이초 사태 이후에도 여전히 주변에서 들려오는, 카지노 쿠폰에게 일어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화가 나고 슬퍼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요.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 단단해져야 해요. 언제까지나 무기력에 빠질 수만은 없어요. 생각해야만 돼요. 우리가 왜 교사가 됐는지를,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지금의 상황을 견디지 못하겠고 이 일의 의미가 뭔지도 모르겠는, 다만 경제적인 이유만 남아 꾸역꾸역 학교에 다니는 경우라면, 사실상 이 일을 그만두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제가 중요하게 보는 건 ‘의미’에요. 어떤 힘든 일을 겪었든, 혹은 다른 교사들의 힘듦을 보며 그 힘듦이 전이되었든 간에, 내가 하는 이 일에 쥐꼬리만큼이라도 의미를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만두라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아요. 그런 말들은 그런 사람한테는 상처일 수 있어요. 조심해야 해요.


그러나 애초부터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해 보지 않았던 사람이 교사가 되어, 지금의 ‘교권 붕괴 사태’를 자기 정당화의 연료로 삼아 비판을 위한 비판만을 일삼고, 자신의 직무 유기(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일!)가 마치 그럴듯한 이유라도 있는 양 행동하는 사람들이 저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은 핑계를 대지 말고 얼른 교사를 그만두어야 마땅해요. 저는 교사관 중 ‘성직자관’을 그렇게 좋아하지만은 않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아무 생각 없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인 건 분명해요.


그런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지금 교실에서 힘겹게 가르치며 살아가는 많은 교사는, 우리 일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야 해요. 다시 말하지만, 더 단단해지기 위해서예요. 우리 일의 의미, 즉 가르치는 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저는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우리나라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 다수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이유로 소수를 억압하는 사회,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하면서도 차별하는지조차 모르는 사회, 이런 사회에 희망이 있을까, 생각하며 가끔 한없이 우울해지며 패배주의적 감성에 젖을 때가 있어요. 물론 이내 곧 정신 차리고 균형을 찾아가지만요. 분명 더 나아진 것도, 발전한 것도, 성숙해진 것도 많다는 걸 알아요. 그런데 그렇게 가슴에 턱, 한 번씩 걸려요.


그렇게 걸릴 때마다 ‘이 문제를 풀려면 어디부터 풀어야 하지?’ 하고 생각해봐요. 투쟁해야 하나. 사회 운동을 해야 하나. 시민 단체에 가입해야 하나. 역사를 보면 분명 변화한 부분들이 보여요. 기본권을 얻기 위한 사람들의 처절한 저항의 역사를 보며, 이 변화가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니구나, 깨닫고 숙연해져요. 이번 12. 3. 비상계엄을 막아낸 시민들의 힘을 보세요! 더불어서 이런 생각도 함께해요. ‘나는 못 하겠구나.’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님을 깨달아요. 물론 ‘점’ 하나로 참여할 수는 있겠지만요.


그러면서 이 사회의 변화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픈 욕구가 생겨요. 시민운동가나 활동가로 살지는 못하더라도 이 사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소소한 것들이라도 해 보자. 그러며 생각한 게 돈으로 내 알량한 자존을 한껏 부풀어 오르게 할 수 있는, 몇 푼 안 되는 ‘기부’였고, 나머지 하나는 ‘의미 있는 활동’이었어요. 겨울에 추위에 떨고 계시는 분들을 위해 연탄 나르기라도 해 볼까, 아니면 굶고 있는 노숙인들을 위해 배식 봉사활동이라도 해 볼까.


그러다 문득,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무언가 모순적이라 느껴졌어요.


나는 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굳이 꼭 바깥에서 찾으려 했을까요.


생각해 보니 내가 하는 일 자체가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었던 거예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이것만큼 뜻깊고 의미 있는 일이 또 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카지노 쿠폰 건

대안학교인 간디학교 교가로 알려진 ‘꿈꾸지 않으면’이라는 노래를 저는 좋아해요. 그 노래 후렴구에는 이런 대목이 나오지요.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 카지노 쿠폰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배우고 가르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노래를 들으며 다시금 되새겨요. 배우고 카지노 쿠폰 건, 노래 가사처럼 희망을 노래하는 거예요. 대한민국이 가끔씩 더 이상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답답함에 가슴이 턱 막힐 때, 아이들을 생각해요. 이미 굳어질 대로 굳고, 세상 때 가득 묻어 전혀 변할 기미가 안 보이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보들보들하고 야들야들해요. 어른들이 이리 만지고 저리 만져서 때가 조금씩은 꼈지만, 뭐 아직은 괜찮아요. 가르치고 배우며 그 더러운 때, 떼어 낼 수 있어요. 아직 아이들과는 희망을 노래할 수 있어요.


제가 너무 희망적이라고, 감상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아이들이 그렇게 순진하고 착하기만 하지는 않다고 얘기할 수도 있어요. 10년 넘게 교사하면서 아이들을 만나온 제가 그걸 왜 모르겠어요. 훈육이 아직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아이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아직 잘 모르는 아이들, 알아도 몸이 따라 주지 않아 나쁜 짓을 저지르는 아이들. 수없이 보고 들었지요. 워낙 많이 보고 듣다 보면, 사람의 본성이 본래 악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어요.


그런데 그 카지노 쿠폰이 정말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악했을까요? 태어날 때 본성적으로 못된 짓 하는 걸 타고났을까요? 저는 아닌 것 같아요. 부모의 ‘때’가 아이에게로 고스란히 옮겨간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때리는 부모 밑에서 때리는 아이가 생겨나고, 욕하는 부모 밑에서 욕하는 아이가 생겨나요. 아이는 귀신같이 따라 해서 어느새 폭력도, 욕도 자기 것처럼 하고 있어요.


그 카지노 쿠폰이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의 더러운 때를 계속 물려받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냥 똑같이 더러운 때를 덕지덕지 달고 다니는, 똑같은 성인이 되는 거지요. 하지만 다행히도 카지노 쿠폰은 부모만 만나지 않아요. 학교에 가서 꽤 많은 시간을 바로 우리, 교사를 만나며 배워요. 혹여나 부모의 때를 물려받은 아이라면, 어쩌면 이 시간이 아이의 때를 벗겨낼 유일한 시간일지도 몰라요, 교사인 나와의 만남이! 그렇기에 교사인 나는 이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최소한 아이의 몸에 때를 더하지는 말아야 해요. 패배적 감상주의에 젖어 카지노 쿠폰에게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해요.




이근이 형, 우리가 함께 써 내려간 지난 편지들을 되돌아보면 사실 대부분은 ‘무기력 교사’에 대해 다루었어요. 무기력한 교사의 아픔과 상처에 집중했죠. 그리고 왜 우리가 그렇게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러나 무기력하게만 있기에는 우리가 하는 이 일이 너무 가치 있는 일이라 어떻게든 힘을 다시 내야만 해요. 상처에 허덕이는 선생님에게 힘내라는 말이 얼마간 폭력적으로 들릴 수 있음에도 저는 조심스럽게 힘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조용히 내밀고 싶어요. 마지막 순간까지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포기하지 않았던, 우리 곁을 떠난 선생님의 숭고한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할래요.


형,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은 비상계엄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어요. 저는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불안하고 우울한 이 시대에도, 간디학교의 교가처럼 희망을 노래할래요. 카지노 쿠폰 건 희망을 노래하는 거니까요.


형과 저의 편지들이 그 희망에 한 줄기나마 빛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요.


형, 폐교 위기에 몰린 학교로 다시 돌아간다는 2025년 형의 복직 생활에도 그 빛이 환하게 비추기를 기도해요.


형, 언젠가 다시 형과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게 될 그 순간에는 부디 희망의 노래가 가득하길, 역시나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요.



2024. 12. 7. 토요일

카지노 쿠폰 곽 노 근 드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