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헌재의 판결을 위대한 국민의 승리이자 민주주의의 승리하고 자찬하는 입장들이 있다. 지금까지 헌재의 인용 판단을 끌어내기 위해 투쟁한 국민들의 노력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그 이상으로 나는 이번의 판결을 법치와 법상식, 법이성의 승리라고 생각한다.
만일 이것을 국민의 승리라고 한다면 탄핵을 반대했던 국민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들 역시 똑 같이 국민으로서 반대했던 것이다. 이번 헌재의 판결은 법상식, 법이성, 법치 등과 같이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 '그 무엇'의 존재에 의해 윤석열의 여러가지 위법 사례들의 위법성을 조목 조목 판정한 것이다. 이러한 판결은 전형적인 '법적 판단'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법적 판단은 칸트가 말한 규정적 판단의 하나로서 법 일반의 규칙에 의거해 다수의 위법 사례들을 판단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법치의 존재, 법상식과 법이성의 존재가 반드시 전제되고, 그것의 권위가 인정되어야 한다. 굳이 철학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이번 판결은 존재론적으로 '무엇이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인식론적으로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큰 문제는 법을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이헌령 비헌령) 식으로 판단하고, 법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데 있다. 때문에 헌재의 판결에 대해 그간 어느 쪽도 승복하려 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공공연했다. 그런데 헌재는 정파의 입장에서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한 것이 아니라 법적 규칙에 의해 윤석열의 여러 조치들이 위법하다는 것을 판단한 것이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헌재 내부에 이견이 있고, 특히 보수적인 재판관이나 윤석열이 임명한 재판관은 기각할 것이라고 예측을 했다. 그런데 헌재는 8:0 만장일치를 통해 그런 예측을 여지없이 무너 뜨렸다. 한 마디로 정치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를 막은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엄정한 법적 판단으로 인해 그동안 멋대로 해석했던 법치와 법이성, 법상식을 회복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의 의의가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누구도 법 위에서 군림할 수 없다는 것이고, 이런 일관된 법적 판단이 반대 세력의 저항 감정을 무력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헌재가 이번의 판결에서 딱 한 가지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이 있다. 헌재는 윤석열의 ‘적대 정치’를 질타하고, 야당엔 관용과 자제 촉구한 점이다. '정치적 판단'은 어떤 사건들이나 사태들의 보편성과 객관성을 반성적으로 찾아가는 판단이다. 이런 판단에 의해 헌재는 윤석열이 비상 계엄을 일으키게 된 정황을 고려에 넣었고, 야당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판단에는 언제든 그와 반대되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이런 판단은 사안을 관점주의, 상대주의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헌재의 판단을 헌재의 재량이 아니라 할 수는 없어도 그것은 헌재의 법적 판단을 넘어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