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직 정리되지 않은 이삿짐 사이로 빈 공간만 덩그러니 남아 있던 새 아파트에서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삿짐 상자들이 거실 가운데에 여기 저기 무심하게 놓여있었다. 아직 집이라 부르기엔 낯선 공간. 켜놓은 형광등 아래 먼지가 춤을 추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박서방, 아들이다."
장모님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아들'이라는 말에 힘을 더 주는 듯 했다. '아들'이라는 말이 텅 빈 공간을 가득 메웠다.
딸아이에 이어 얻은 아들.
첫 아이 때처럼, 두 번째 아이의 탄생 순간에도 함께하지 못한 나는 그 빈 공간 속에서 환희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먼저 느꼈다.
아파트 베란다 너머로 김해의 낯선 하늘이 펼쳐졌다. 우리 가족의 새 보금자리가 될 이곳은 직장과는 거리가 있었다. 삶의 무게를 재배치하는 과정이었다.
처음 신혼살림은 희망으로 시작됐다. 카지노 게임의 2천, 내가 은행에서 빌린 2천, 아내의 1천만 원을 모아 마련한 21평 아파트. 그 작은 공간이 세상의 전부같았다.
하지만 IMF라는 쓰나미가 밀려왔고, 카지노 게임의 슈퍼마켓이 무너졌다. 그 파도는 우리 신혼의 바닷가까지 덮쳤다.
내가 감당해야 할 무게는 곱절에 곱절이 되었다. 카지노 게임의 빚, 내 빚.
결국 신혼집을 떠나 공무원 임대아파트로 들어갔다. 겉으로는 20년된 건물이지만, 그 안의 세월은 40년을 더 담고 있는 듯 했다. 여름이면 하수구 냄새가 온 집안을 휘감았고, 엘리베이터 없는 5층 계단은 임신한 아내에게 매일이 산행 같았다.
그 무게를 견디다 못해 우리는 다시 짐을 쌌다. 부산에서 김해로. 조금 더 멀어졌지만, 새 아파트로 가게 된 것이다. 그날, 이사하는 바로 그날, 아들이 세상에 나왔다.
큰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는 수원에서 연수 중이었다. 교육이 진행되기 직전에 혹시나 싶어 처가에 전화를 했다. 국어사전을 뒤적이며 밤새 이름을 지었다. 둘째와 셋째 이름까지 미리 정해두었다.
언젠가 셋이 나란히 앉아 웃을 모습을... 마음속에 그렸다.
하지만 아내는 단호한 목소리로 "둘째까지만."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 말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계획과 달랐다. 그래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매일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마법 같았다.
둘째는 누나보다 눈치가 빨랐다. 다툼이 생기면 혼나기도 전에 먼저 다가와 누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작은 손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봄날, 백양산을 오르던 날이 떠오른다. 조립 장난감을 사주겠다는 약속으로 그 작은 손을 이끌고 산길을 올랐다. 아들의 손가락은 매미 다리처럼 가늘었고, 손바닥은 땀으로 촉촉했다.
우리는 약속을 확인하며 손가락을 걸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꼭 사줘야 한다고.
그 순간의 온기와 아이의 순수한 눈빛은 카지노 게임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는다.
세월은 물처럼 흘렀다. 시청으로 전근을 가며 일은 늘어났고, 가족과의 카지노 게임은 줄어들었다. 집은 그저 잠깐 머무는 공간이 되었다. 부딪히는 숟가락 소리, 텔레비전 소리, 그것이 우리 가족의 대화를 대신했다.
아이들도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같은 지붕 아래 살면서도 우리 사이엔 보이지 않는 벽이 쌓였다.
돌이켜보면, 그건 모두 내 선택이었다. '나중에'라는 단어로 포장한 미루기의 연속. 그 '나중'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거리가 되었다.
오늘 아침, 달력을 보다가 아들의 생일이 이번 주 금요일임을 새삼 깨달았다. 스물다섯 번째 5월 2일.
그 낯선 아파트, 어지러운 이삿짐들 사이에서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된 또 다른 아이의 카지노 게임라는 이름. 출산으로 지친 아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던 젊은 카지노 게임.
그래도 아들은 잘 자랐다. 잘 챙겨주지 못했지만, 모두가 부러워하는 이름있는 대학에 다니며 스스로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다.
언제부턴가 그 작던 손이 내 손보다 커졌다. 걸음마를 떼던 아이가 어느새 내 어깨를 넘어섰다. 등을 돌리면 낯설 정도로 훌쩍 자란 아들의 뒷모습은 지금 꼭 젊은 시절 나를 보는 듯하다.
가끔은... 상상한다.
카지노 게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 작은 손을 더 오래 잡아주고, 백양산 길을 더 천천히 걸었을까. 장난감을 사러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더 자주 사줬을까. 아들의 방문을 두드리며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까.
하지만 카지노 게임은 흘러갔고, 남은 건 앞으로의 카지노 게임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지나간 카지노 게임을 아쉬워하기보다 남은 카지노 게임을 소중히 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