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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게임 일기장에? 싫어요!

참을 수 없는 입의 가려움

요 며칠 대체 내가 왜 브런치라는 열린 공간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곰곰이 카지노 게임해 보았다.내겐 가장 면도날 같은 댓글, “일기는 일기장에”가 무서워서 예전 같았으면 브런치 따위는 절대 안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젠 달라졌으니 답을 하겠다.

입이 가려워서.

공개된 곳에 글을 발표하는 이유란, 논문 쓰는 게 아닌 이상 이거 말고 어느 이유가 있겠나.

누군가 물을 수도 있겠다. 당신 입은 대체 왜 가렵나?
나도 똑같이 묻고 싶다. 내 입은 왜 가려운 걸까?


가려움이란 무엇일까. 아픈 것과 아무렇지도 않은 것의 중간.
무시해도 되지만 무시할 수 없는 묘한 자극이다.
그런 현상이 내 입에서 왜 일어나는 걸까?
오래도록, 그토록 조용히 살아온 내 입에서?


간덩이가 상당히 커진 요즘이지만 “카지노 게임 일기장에”가 몹시 무서워서 극히 보통인 내 인생의 디테일을 미주알고주알 여기다 말하지는 않겠다. 오늘은 이십일세기의 트렌드에 맞게 답만 말하겠다.

답을 하기 위해 입가려움 현상의 패턴을 분석해 보자.

이런저런 일을 겪어도 전에는 입이 가렵지 않았다. 가렵기는커녕, 점점 무거워졌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생길에 이런저런 일이라는 건 원래 늘 겪는 거다.

“너는 왜 말을 안하니?”
어느날 엄마가 물으셨다.
“말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잖아요.”

나는 이 말을 카지노 게임속으로 했었다.
“빙그레 웃지 말고 말을 좀 해봐.” 엄마가 덧붙이셨다.
그때도 난 그냥 웃었던 것 같다.
이게 왜 그리 기억이 나냐면, 그 순간 내 카지노 게임이 좀 쓰라렸기 때문이다.
말하는 대신 호호 불고 고이 덮어주었다.


내 카지노 게임의 의사가 되어보자.

청소만 하면 코가 간질간질, 눈도 간질간질. 이건 내 먼지 알레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입가려움은 먼지알레르기처럼 원래 늘 그래왔던 게 아니라, 요즘 새록새록 생긴 증상이다.
그러니까 이 가려움은 요즘 생긴 "무엇" 때문이라는 거지.

그게 뭘까?

언제부터 그랬나?
카지노 게임해 보니 이 년 전 수술 이후인 것 같다.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의료사고 수준의 후유증을 겪었다.

그렇다. 나는 갑자기, 하루 입원으로 끝나는 “쉬운” 수술 끝에 장애인이 된 것이다.


(독자 여러분, 대수롭지 않은 수술 따위는 이 세상에 없다. 모든 수술은 대수롭다. 필요한 수술을 앞두었다면 심신의 준비를 잘하시고, 몸조리 잘하시라.)


남들이 보기엔 가벼운 장애지만 처음에는 극히 우울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생겼고, 삶이 어려워졌다.
그러나 세월이 약이라고, 지나가니 적응되더라.


적응만 된 것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 자체가 바뀌었다.

전에는 노심초사, 사자가, 표범이 오고 있지는 않나 쉴 새 없이 곁눈질해가며 풀을 뜯는 겁먹은 초식동물이었다면, 지금은 먹이를 보면 적극적으로 달려가는 맹수 비슷해졌다.
사자까지는 아니어도 고양이 정도는 된 것 같다.
요는, 달려갈 카지노 게임이라는 걸 먹을 수 있게 됐다는 거지.


카지노 게임돌격 앞으로!


내 카지노 게임속에 생긴 무엇인가가 나를 겁 많은 인간에서 대담한 인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바꾼 거지?

나의 인생에 있어서의 사자, 표범은 무엇?
대체 누구의 눈치를 그토록 보면서 살았나?


내게 제일 무서웠던 것은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런 식으로 살다가는 필 낙오자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
그러면 나는 나 자신에게는 웬수, 부모에게는 수치요 오점일 뿐이라는 무서운 결말.

나라는 인간을 이루었던 분자와 원자는 산산이 부서져 우주의 먼지가 되겠지만 거기에 붙어있는 죄책감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더라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허무와 공포.

광을 내놓은 수도꼭지에 물자국이 생기면 즉시 극세사 수건으로 문지르고 싶어 미치겠는 카지노 게임처럼, 시도 때도 없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카지노 게임의 돌덩이, 죄책감.
이건 나와 함께 붙어 태어나, 떨어질 기미가 없던 혹 아니었던가.


이런 게 없어졌다. 완전히는 아니어도 많이.


카지노 게임해 보면 새로 갖게 된 작은 장애. 이게 열쇠 같다.

어차피 이제 나는 그 무엇을 해도 완벽하고 깔끔할 수 없으니까.

나는 이미 녹슨 수도꼭지니까. 눈에 불을 켜고 걸레질을 할 필요는 없게 된 거지.


이게 묘한 해방감이 있다.


장애가 없을 때, 나를 이렇게 용서할 수 있었으면 훨씬 행복했겠지. 카지노 게임속에 돌덩이 따위는 한 개도 없는 겉으로도 속으로도 건강하고 멋진 나. 얼마나 좋았겠나. 그땐 몰랐다. 내가 가졌던 좋은 것들을.


이랬더라면 따위는 됐고, 완벽한 모습은 아니지만, 좀 어떠냐. 괜찮다. 용서하자.


카지노 게임해 보니 나에 대한 용서를 시작한 뒤부터 나의 입이 가려워지기 시작한 것 같다.

원래 싱싱한 상처는 아픈 법. 너무 아파서. 가리고, 감추고, 입으로 호호 불고 신줏단지처럼 모시지 않나?

상처는 나아갈 때 가려워지는 것이다. 새살이 돋고, 딱지가 떨어질 때.

내 인생의 새살은 이 나이에, 이런 몸에, 이런 몰골이 된 후에야 돋기 시작했다.

잘했다, 새살아. 반갑다. 기특하다. 포기하지 않고 돋아주어서.

가려울 때마다 긁어주겠다. 가려운 입에서 나오는 말을 글로 적자.


카지노 게임 일기장에? 이렇게 말할 사람도 있겠지. 세상엔 그런 사람을 위한 훌륭한 글과 책, 다른 흥밋거리가 얼마나 많나. 그런 사람들은 어차피 재미없는 내 글을 떠나 그런 곳으로 이미 가셨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런 거 신경 쓸 시간에 글을 쓰자. 이렇게 쓰다 보면 글 실력도 늘고, 내 마음이 카지노 게임의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를 어디엔가로 보내주겠지?


거긴 좋은 곳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 참 궁금하고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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