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의 말들) 송길영 『시대예보:핵개인의 시대)
“부장님요? 존경하죠, 한 5분 정도?(전문성이 있는 부분만 존경하고 나머지 분야에 대해서라면 평등하게 간다) 서로 5분의 존경만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 5분의 존경은 진심이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P.308)
“권위는 기능으로 대체되고 기능은 충분히 외주화 되었기 때문에 이제 권위나 존경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는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권위자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 내가 과도하게 고개 숙일 이유가 없습니다. 물론 때로는 일상에서 부장님의 선견지명이 뛰어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범람하는 콘텐츠 속에 더 심도 있는 혜안이 밀물처럼 몰려와 스마트폰으로 눈을 돌리면 마음을 울리는 강연 프로그램, 정보 가득한 유튜브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가까운 권위자의 오류나 편협한 생각도 바로 검증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명사와 해외 지식인들의 지식 콘텐츠 동영상이 매일 갱신됩니다. 해외 석학의 최신 지식이 시차 없이 유튜브를 타고 전해오기에 젊은 세대는 더 이상 그들 주변의 앞 세대의 지혜만을 일방적으로 존경하기 힘듭니다.”(P.311)
다양해진 삶에서 누군가가 모든 분야의 권위를 갖기 힘든 세상이다. 권위라는 것은 경험과 연륜과 전문성의 누적에서 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를 원할 때 여전히 가까운 친구를 먼저 찾는 편향을 갖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왠지 더 공정하고 믿을 만하고 특별한 연결의 혜택이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란다. 20만여 년 살아오면서 그 20만여 년간 나의 주변만 탐색했기에, 나도 모르게 주변으로부터의 정보가 권위를 형성하는데 가장 큰 요소로 인식된 것 아닐까라는 말도 덧붙인다.
상견례 후, 아들이 올해 결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러 친정에 갔다. “옛날로 치면 상견례는 약혼식이나 마찬가지야. 여자 쪽에서 준비했고 예물도 주고받았지.”라는 아버지말에 “요즘은 양가가족이 모여 식사만 하는 걸로 바뀌었어요.”라고 말씀드렸다. “아니, 상견례는 약혼식이나 마찬가지라니까 그러네. ”라며 예전 경험이 지금도 유효하다 계속 우기셔할 수 없이 “네”라고 대답했다. 아버지가틀렸다는 게 아니다. 다만 시대가 바뀌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가 난감했다.
비단 아버지뿐일까? 그 어느 곳도 이미 그때의 시대가 아닌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혹은 선배라는 이유로 “내가 해봐서 안다니까, 내 말이 맞다니까.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권위는 인정을 기반으로 한다. 수용자가 인정하지 않으면 권위는 성립되지 않는데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들 대부분은 수용자의 인정 따윈 안중에 없다. 그저 자신의 권위만이 꼭 지켜야 할 중요한 무엇인 양 권위에 집착한다. 자신의 권위가 조금이라도 훼손된다 싶으면 버럭 화를 내거나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투덜거린다. 하지만 “위로부터 아래로 억압적인 기제로 유지되던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 이제 개인이 상호 네트워크의 힘으로 자립하는 새로운 개인의 시대”(p.19)에 권위라는 말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기본값이 수직 사회에서 수평 사회로 변했는데도 이런 시대의 흐름에 역행해 자신의 권위만을 앞세워 말하는 사람을 보면 답답하다 못해 갑갑하다.
책을 읽을 때 마음에 와닿는 문장은 그때그때 다르다. ‘이 문장이 왜 좋았지?’생각하다 보면 평상시 고민하고 있던 삶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권위’라는 단어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 역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아이들이나 독서 모임 동생들에게 선배로 불리고, 먼저 시작했다는 이유로 탁구장 동생들에게 선배로 불린다. 50대 초반이다 보니 후배보다는 선배의 자리에 있는 경우가많다.무료 카지노 게임라는 말에 꽂힌 이유도 행여 무료 카지노 게임를 앞세우는 사람이 될까 두려워서다. 권위가 사라진 시대라고는 하지만 나 역시 어느 순간 권위를 앞세울 수 있기에 ‘에헴’하고 권위를 찾으려 할지 모르기에 선배로서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할지 정해야 했다.
신혼부부 대출을 통해 집을 장만하기로 마음을 바꾼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울 어디에 집을 사야 할까요? 집을 살 때 학군이 중요한가요? 월급에서 원금과 대출 금액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요?” 내경험치에 근거해 내가 아는 만큼 말해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 시대가 아니고 아들 또한 만족스러운 답이 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왠지 믿을 만하고 특별한 연결의 혜택이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내게 묻는 것이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나의 경험은 그저 정보를 얻을 때 여전히 가까운 친구를 먼저 찾는 편향 정도에 가깝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지금까지우리가 이뤄 놓은 것들에 대해 아들은 “부장님요? 존경하죠, 한 5분 정도?” 의 부모 버전인 “우리 부모님요? 존경하죠, 한 5분 정도?”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부모인데 너무 심한 것 아냐?’ 생각할 수 있겠지만그거면 됐다. 그 5분의 존경은 진심에서 우러나왔을 것이다. 더 많은 존경을 받으려 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아들에게 지속적으로 권위를 요구하는 관계가 될 수 있어 위험하다.우린 이미 부모와 자식 사이에 위계가 사라진 수평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상하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관계이니 부모가 자식에게 권위를 내세워서는 안 된다. 아버지에게서 느꼈던 난감함과 답답함을 자식들이 똑같이 느끼길 바라지 않는다. 아버지는 예전엔 그러지 않으셨다.
“신혼부부 대출 금리부터 알아보고 계획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라는 내조언에 대출 금리를 알기 쉽게 정리한 유튜브 영상을 카톡에 공유한 것만 보아도 권위의 원천은 이제 유튜브로 넘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또한 아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신혼부부 대출에 관한 유튜브 영상을 찾아본다. 최신 지식이 시차 없이 유튜브를 타고 전해오기때문에 아들이나 나나 유튜브에서 답을 찾고 있다. 개인들이 모아놓은 정보의 원천인유튜브에 쉽게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의사결정을 할 때 이제는 선배들에게 물어보지 않는다. 대신 그 분야에 해박한 전문가에게 묻는다. 지식의 원천이 바뀐 시대이자 앞 세대의 지혜만을 일방적으로 존경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그럼 부모이자 선배로서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나는 나를 어떤 위치에 두어야 할까? 저자가 말한 ‘신인’이라는 말에서 답을 찾았다. “앞으로는 선배라는 말조차 사라질지 모릅니다. 선배라는 한자에 포함되어 있는 ‘앞서 경험한 사람’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우리는 모두 변화 앞에서 동등한 신인이 될 터입니다. 탁월한 사람은 그렇게 매일 자신을 선배의 자리, 권위자의 자리가 아닌 ‘신인의 자리’에 세우는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p.289) 그렇다. 나도 이렇게 정보가 매일 갱신되는 세상은 처음이다. 오죽하면 『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가 “오늘날은 모든 해가 혁명적이다.”라고 말했겠는가? 이런 혁명적인 시대에 살고 있으니 신인의 자리에서, 신인의 마음으로 아들과 똑같이 배워야 한다. 권위를 내세울 때가 아니다. 내 말 안 듣는다고 화를 내야 할 때는 더더욱 아니다. 먼저 살았다는 이유로 아는 척해야 하는 책무에 놓여 있다는 착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깨끗하게 인정하자. “나도 잘 몰라, 함께 고민하며 탐색해 보자.”(p.161) 내게 거는 주문이자 앞으로 나의 포지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