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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Mar 12. 2025

20. 개츠비는 왜 무료 카지노 게임가?

(필사의 말들) F. 스콧 피츠 제럴드 『무료 카지노 게임 개츠비』

“우리가 주관적인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저는 정말 위대함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통 그렇게 말하지는 않지만 정말 위대한 사람 중 하나가 되고 싶습니다.”


미국의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의 청년 시절을 담은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의 주연을 맡은 29세의 티모시 샬라메가 SAG 어워즈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후 이렇게 말했다. 또 위대함이군! 도대체 위대하다는 게 뭐길래 저 젊은이는 위대함을 추구하고 있다고 패기 넘치게 말하는 걸까? 몇 년 전인지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F. 스콧 피츠 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읽은 적이 있다. 개츠비가 왜 데이지에게 일생일대의 사랑을 바치는지, 자신의 인생을 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인생이 뭐가 위대하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좋아하는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자신의 자전적 소설인 『상실의 시대』 주인공 오타나베의 입을 빌려 자신의 최고의 소설로 『위대한 개츠비』를 꼽는다. “나는 마음이 내키기만 하면 책꽂이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꺼내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 부분을 오랫동안 읽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었는데, 단 한 번도 실망을 맛본 적이 없었을 만큼 단 한 페이지도 시시한 페이지는 없었다. 이렇게 멋진 소설이 또 있을까 싶었다.”


아! 나만 『위대한 개츠비』의 진가를 모르는 건가? 나만 개츠비의 위대함을 모르는 건가? 당혹스러웠다. 마치 유명 화가의 그림을 보러 가 그 앞에 섰는데 왜 그 그림이 좋은지 모르겠어서 ‘나만 못 느끼는 건가?’ 자책할 때의 기분과 같았다. 그럼에도 하루키가 왜 이 책을 최고의 소설로 꼽았는지, 왜 개츠비가 위대한지는 또 궁금해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질문들 중 하나로 머릿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참고로 내 머릿속에는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질문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날을 기다리며 대기 중이다. 이 와중에 위대한 사람이 되겠다는 티모시 살라메의 수상소감이 잠자고 있던 사자가 아니라 잠자고 있던 질문을 건드린 것이다. 이제는 개츠비가 왜 위대한지 알아내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무료 카지노 게임 개츠비』를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속물로 대표되는 데이지라는 여자를 사랑하는 개츠비는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돈을 벌어오는데, 그 돈은 금주법과 관련되어 있거나 불법적인 방식으로 번 돈이다. 돈으로 사랑을 사려는 그와 부자가 되어 돌아온 개츠비가 좋아 보이는 데이지는 서로 잘해보려고 하지만 개츠비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끝이 난다.

“개츠비는 왜 위대한가?”라는 질문에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이렇게 대답한다. “별로 중요한 것으로 드러나지 않는 가치임에도(물질 만능시대에 사랑이라는 비물질 가치) 자기 인생을 거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 가치는 말하자면 데이지다. 데이지는 돈이나 영혼을 바쳐서 사랑할만한 가치가 없는 여성으로 책 속에 그려지지만 개츠비는 일생일대의 사랑을 그녀에게 바친다. 이것이 어떻게 생각하면 허망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약간 시지프스 신화처럼 무의미한 삶을 견디는 어떤 사람의 숭고함일 수도 있다. 무의미한 삶을 견디는 숭고함이 ‘위대함’ 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으로 드러나지 않는 가치에 인생을 거는 사람이라서 위대하다는 건가? 데이지를 얻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던져 노력했고, 최선을 다해 살았기 때문에 위대하다는 건가? 사실 그의 말을 듣고도 위대하다는 것의 의미가 명확히 풀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얼마 전 다녀온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를 통해 만난 화가, 에곤 쉴레의 그림과 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에곤쉴레, 욕방이 그린 그림을 보면서 그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가치를 위해 자기 인생을 기꺼이 바치는 사람의 이야기는 에곤실레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는 표현주의 화가다. 표현주의란 개인의 감정, 성격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들을 색깔과 형태로 표현하는 사조를 말하는데 나도 이번에 알았다. 그의 작품 중 300여 점이 자화상이다. 그는 자신의 벌거벗은 몸에서 주제를 찾았고, 그림이라는 게 미화하거나 포장하면 안 되며 내면과 본질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누드로 그린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그는 항상 큰 거울을 가지고 다녔으며 거울 앞에서 포즈 취하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면서 어떤 구조에서 또 어떤 자세에서 어떤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지 드로잉 연습을 통해 끊임없이 연구했다.인체의 몸을 연구하면서 그 안에 담긴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며 드로잉 하는 모습이 상상된다.

하지만 당시 신화 속 여성들을 아름답게 그린 그림에 익숙한 대중들에게 모델을 미화하지 않은 그의 추한 누드화는 대중에게 불편함을 안겼고 “에곤 쉴래의 누드화는 포르노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끝까지 밀고 나갔다. 오히려 과거 누드화에는 없었던 체모를 그림으로써 전통적인 미의 기준에 반항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마치 그 그림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정우철 도슨트는 말한다. “불편하지? 잘 봐, 이게 너희들 삶이야.” 인간의 신체를 가장 솔직하게 묘사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끝까지 밀고 나간 에곤 쉴래. 28세에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해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 자신의 그림을 폄하하는 사람들을 개의치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향해 걸어갔다. 자신의 본질에 다가서기 위해 애쓰고 애쓰다 생을 마감했다.

에곤 쉴래의 삶을 보면서 개츠비가 왜 위대한지 이해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는 서로 다를지언정 가치를 추구하는 방식은 같았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끝까지 달렸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온몸을 던지고 온 마음을 내어주었다. 한 번도 뭔가에 몸과 마음을 다해 끝까지 밀어붙인 경험이 없었기에 개츠비의 삶이 왜 위대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야 어렴풋이 알겠다. 뭔가에 몸과 마음을 전부 내어주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위대하다는 것을. 사실 어떻게 죽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살아있는 동안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이렇게 살다 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인간은 충분히 위대한 존재가 아닐까? “당신 한 사람이 그 빌어먹을 인간들을 모두 합쳐 놓은 것보다 훌륭하지.”라는 닉 캐러웨이의 말이 이 뜻 아니었을까? 내 해석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이제 티모시 샬라매의 무료 카지노 게임함을 추구하고 있다는 말은 이렇게 들린다. “ 제가 추구하는 가치에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해 끝까지 가보려고 합니다.” 위대하다는 말이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럼 위대함은 개츠비와 에곤 실레에게만 존재할까? 내 생각엔 인생을 통틀어 위대한 사람도 있겠지만 누구나 무언가에 온몸과 온 마음을 내어주는 시기 혹은 하루의 작은 시간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이를 작은 위대함이라 부르고 싶다. 내겐 글을 쓰는 시간이 그러하다. 온 몸과 온 마음을 다해 사유의 끝까지 내달리려 한다. 이 시간만큼은 위대함을 추구하려한다. 작은 위대함을 가진 사람들은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작은 위대함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정도의 차이있겠지만 무료 카지노 게임함은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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