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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May 13. 2025

물과 마음이 함께 끓는 자리에서 — 소엽 박경숙 선생님

김왕식








물과 마음이 함께 끓는 자리에서




시낭송가 김윤미




나는 차를 마시며 시를 낭송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이 문장의 시작은 결코 나 자신이 아니었다.
그 중심에는 한 분의 스승, 소엽 선생님이 계신다. 그분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차를 ‘마시는 것’이라고만 알았고, 시를 ‘암송하는 것’이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선생님 곁에 앉아 찻물을 올리는 법을 배우며, 나는 비로소 ‘마신다’는 것이 곧 ‘느낀다’는 것이고, ‘낭송한다’는 것이 곧 ‘살아낸다’는 것임을 깨달았다.

소엽 선생님은 차를 삶처럼 대하셨다.
그 어떤 자리에서도 허투름 없이 다기를 다듬으시고, 찻물을 데우는 시간마저 고요한 시선으로 감싸 안으셨다. 스승의 손길은 조용하되 엄정했고, 따스하되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 찻자리에는 항상 정결한 기운이 돌았고, 제자들은 누구나 그 분위기에 스스로를 다듬게 되었다. 삶의 태도는 잔에 먼저 스며들고, 향기는 마음에 가장 늦게 사라진다. 그것이 선생님께 배운 첫 번째 진리였다.

“차는 기다림이야. 기다릴 줄 아는 사람만이, 향기를 마실 수 있어.”

선생님의 이 한마디는 그 어떤 문장보다 깊고도 긴 울림으로 내 안에 남아 있다.
뜨거운 물이 찻잎에 닿아야 비로소 향을 내듯, 사람도 제 삶의 뜨거움을 지나야 비로소 시가 되고, 진심이 되는 것임을 선생님은 차로 가르치셨다. 나는 수십 편의 시를 외우고 있었지만, 스승의 한 잔의 차 앞에서는 그 어떤 언어도 조용히 고개를 숙여야 했다.

차문화 지도를 받는 동안, 선생님은 단 한 번도 높은 목소리를 내신 적이 없다.
그러나 그분의 찻상 앞에서는 누구도 소란하거나 게으르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한 눈빛 하나에 마음이 저절로 다스려지고, 찻잔을 건네는 손끝 하나에도 예가 깃든 것을 보며 우리는 배웠다. 차란 결국 사람을 향한 예이고, 인격이 담긴 물이며, 삶을 비우고 채우는 순환이라는 것을.

어느 날, 선생님은 낡은 백자 다완 하나를 내게 보여주셨다.
“이게 제일 좋아.”
나는 그 다완을 바라보았다. 번지듯 흐르는 물빛 유약, 곳곳에 닳아 생긴 틈.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그릇은 어떤 찻잔보다 빛났다. 선생님의 눈빛처럼, 상처가 많은 그릇일수록 향기는 더 오래 머문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사람도, 시도, 차도 그렇다. 멀쩡한 잔에는 담기지 않는 마음이 있다. 그날, 나는 한 그릇의 차 안에서 선생님의 인생을 본 듯했다. 고요하지만 단단하고, 부드럽지만 허투름이 없으며,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존재.

나는 종종 시낭송 무대에 오른다.
관객 앞에 선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선생님의 목소리다.
“시는 네 안에서 오래 데운 물이어야 해. 흘러나오는 게 아니라, 우러나오는 것이어야지.”
그 말씀은 무대 위 내 언어를 단단하게 붙들어주는 중심줄이 되었다.
나는 그 가르침 덕분에, 차를 마시듯 시를 낭송하게 되었다.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내는 것. 그것이 선생님이 내게 가르쳐주신 두 번째 진리다.

차를 지도받는 동안, 스승은 단 한 번도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셨다.
그러나 우리는 알았다. 그분의 겸허 속에는 견고한 철학이 있고, 그분의 침묵 안에는 무수한 문장이 숨어 있다는 것을. 내가 선생님을 존경하게 된 것은, 그분이 높은 분이어서가 아니라, 깊은 분이셨기 때문이다.
깊은 사람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다만, 오래 향기를 남긴다.

어느 날 무료 카지노 게임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차는 혼자 마셔도 좋지만, 누구와 함께 마시면 기억이 돼.”
나는 지금 그 ‘기억’을 안고 이 글을 쓴다.
무료 카지노 게임과 마주 앉아 마신 수많은 차,
그 한 잔 한 잔이 내게는 고요한 울림이었고, 따뜻한 가르침이었다.

앞으로 내가 어디에서 어떤 찻자리에 앉더라도,
나는 언제나 소엽 무료 카지노 게임을 떠올릴 것이다.
그분의 손끝에서 배운 다기의 온기,
그분의 음성에서 들은 시의 물결,
그분의 눈빛에서 느낀 사람됨의 향기를 잊지 않을 것이다.

삶이란 결국 누군가로부터 받은 향기를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차를 따른다.
그리고 스승의 이름을 속으로 조용히 불러본다.

소엽 무료 카지노 게임.
그 찻자리의 향기는 오래도록 제 삶 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향기보다 먼저 마음이 우러나는 글
— 김윤미의 ‘물과 마음이 함께 끓는 자리에서’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한 편의 글이 한 잔의 차처럼 우러나는 경우가 있다.
읽는 이의 마음을 덥히고, 가슴속에 향기를 남긴 채 조용히 사라지는 글.
시낭송가 김윤미가 쓴 「물과 마음이 함께 끓는 자리에서」는 그런 글이다. 이 글은 차를 배우며, 삶을 배운 제자가 한 스승에게 바치는 진심 어린 예찬이자, 시가 말하지 못한 감정까지 차로 건넨 선생님에 대한 고요한 찬미다.

우선, 글의 구조는 다도를 닮았다.
겉으로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는 겹겹이 시간이 우러나 있다.
표현 하나, 단어 하나가 뜸을 들이고, 격식을 따르며, 깊이를 품는다. 마치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시간처럼, 김윤미의 문장은 조급하지 않다. 문장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우러나며, 묘사는 눈앞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비춘다. 차를 마시며 시를 낭송하게 되었다는 자기 고백은, 겸손한 문장 속에서도 문학적, 인간적 성숙의 증거로 빛난다.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스승의 한마디,
“차는 기다림이야. 기다릴 줄 아는 사람만이, 향기를 마실 수 있어.”
이 문장은 단지 다도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삶과 예술의 본질에 닿아 있다.
그리고 김윤미는 그것을 흘려듣지 않았다. 그녀는 그 말을 자신의 시낭송의 태도로 가져왔고, 결국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러나게 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처럼 이 글은 기억의 회고가 아니라, 정신의 전승이다.

또한 스승의 백자 다완을 바라보며 “상처가 많은 그릇일수록 향기는 더 오래 머문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이 글은 차 이야기를 가장한 인격 예찬이며, 단순한 감사의 표현을 넘어 ‘배움의 방식’에 대한 성찰이다. 김윤미는 단 한 마디도 스승을 미화하지 않는다. 다만 관찰하고, 느끼고, 배운다. 그래서 이 글은 감동적이다. 찻물처럼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고, 오래도록 따뜻하게 식지 않는 감동을 남긴다.

김윤미는 ‘스승이 높은 분이어서가 아니라, 깊은 분이었기 때문에 존경한다’고 썼다.
이 문장은 곧 이 글 전체의 철학이자 중심선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글이 단순한 찬사로 그치지 않고, 한 인생을 비추는 다도의 시학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편의 글이 삶의 예절이 될 수 있을까?
이 글이 그 가능성을 증명한다.
이 글을 읽는 순간, 우리는 단지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넘어,
'존재를 조용히 덥히는 법'을 배우게 된다.

김윤미의 문장은 말하지 않고 향기 나고, 설명하지 않고 전한다.
그것이 곧 스승의 가르침을 닮은, 진정한 제자의 문장이다.
그리고 이 향기는, 오래도록 남는다.

—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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