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박완서 작가에게 시작점이 된 '무료 카지노 게임'
박완서 작가. 그녀는 마흔의 나이에 [나목]으로 등단했다. [그 많은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거기 있었을까] 같은 교과서에 실린 그녀의 대표적인 소설 말고도, 평생 동안 숱하게 많은 소설과 에세이를 쓴 그녀의 글을 이제 와서 읽다니 그녀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최근에 읽었던 '노란 집'이라든지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같은 에세이는 삶을관조하는 노련하고 완숙한 글이었다면,[무료 카지노 게임]은 그녀의 첫 등단 소설이니만큼 젊은 시절의 싱그러웠던 그녀의 시선과 시각이 담긴 생생한 글이다. 소설 자체는20대 여성이 성장하는 이야기지만 마흔의 중년 여성 나름 깊이 있는 마음이 함께 담겨 있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박완서 작가의 초기작은 그녀의 삶과 경험을 많이 담겨있다. (고) 박완서 작가가 생전에 '나목을 언급하면서 (고) 이수근 작가와의 관계를 소설로 재탄생시킨 것은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했는데 그런 사실관계는 사실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마흔이 된 시기에 이 소설을 읽어서 그런지 많은 부분을 곱씹게 된다.
"무료 카지노 게임": 잎이 다 떨어진 나무를 뜻함.
전쟁으로 인해 정신적, 물질적으로 헐벗은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무료 카지노 게임'은 전쟁의 상처로 남겨진 사람들이 살아남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작가는 실제로 PX에서 근무하면서 알게 된 이수근 작가의 유작전 소식을 듣고 이 소설을 썼다고 했다. 그래서 아마 소설 속 '옥희도'와 '이경'의 관계를 현실화시키고픈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녀의 남편이 '태수'였을 거라며 많은 추측들을 했지만 그런 추측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랬든 아니든 결국 그녀는 그녀의 나목 같았던 삶을 떠나보내고 나서 새로운 삶을 살았고, 이수근 작가는 그 '나목'을 기록하며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었으니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닌가.
"나목은 어디까지나 소설이지 전기나 실화가 아니다. '나목'을 소설로 쓰기 전에 (고) 박수근 화백에 대한전기를 써보고 싶었던 건 사실이지만, 내가 그를 알고 지낸 게 내가 가장 불우했던 전쟁 중, 1년 미만의 짧은 기간이었기 때문에 전기를 쓰기엔 그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었다. 그렇지만 예술가가 모든 예술가들이 대구, 부산, 제주 등지에서 미치고 환장하지 않으면, 독한 술로라도 정신을 흐려놓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었던 암담한 불안의 시기를 텅 빈 최전방 도시인 서울에서 미치지도, 환장하지도, 술에 취하지도 않고, 화필도 놓지 않고, 가족의 부양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살았나, 생각하기 따라서는 지극히 예술가의 삶의 모습을 증언하고 싶은 생각을 단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된 게 '나목'이었다는 걸 밝히고, 이야기 줄거리는 허구이니 어디까지나 소설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1976년 12월 박완서 작가의 말)
이 소설은 1950년대 전쟁이 한창이던 서울 한복판, PX에서 근무하는 20세 여성 '이경'의 이야기이다. 그 시절에 학업을 어느 정도 이어가던 신여성, 전쟁으로 잃은 가족을 대신해 취직하고 경제적 자립하려는 젊은여성의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1931년 생인 '이경'이 마음에 담고 있는가장 큰 상처는 고명딸을 애지중지 사랑해 주셨던 아버지의 죽음도 아니었고, 집안의 두 기둥이던 두 오빠들이 전쟁 때문에숨어있다가 폭탄을 맞고 사망한 사건도 아니었다. 집안 남자들의 죽음을 통해 삶의 의지를 잃은 어머니가 남긴 한마디였다.
"어쩌다 계집애만 무료 카지노 게임았노."
1980년대 생인 나로서는 1930년대 여성들의 삶을 가늠하긴 힘들겠지만 가부장제 중심인 사회를 경험했기에 그들의 상처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하지만 더불어 나도 아들과 딸을 둔 어미가 되어보니 엄마와 아들 관계, 엄마와 딸의 관계는 개인별로 조금씩 달리 설정됨을 느낀다. 70년 전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대를 이을 아들을 모두 잃은 어머니가 무료 카지노 게임왔던 시각으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소리다.
"어쩌다 계집애만 무료 카지노 게임았노."
그러나듣는 딸 입장에서 너무도 큰 상처가 되었을것이다. 나도 부모에게는 그런 소리를 들은 적 없었으나 내 조부모에게는 비슷한 말들을쉬이 들었으니 말이다. "손녀딸이야, 시집가고 나면 그만인걸"이라며, 남동생과 나를 대하는 태도는 분명히 달랐다. 그리고 2024년 현재의 상황을 보면, 과거보다야 많이 나아졌다지만 아들과 딸, 여성과 남성에게 대해는 기준은 여전히 기울어져 있다.
1929년생이 나의 할머니는 현재 아흔다섯이고, 약간의 치매 증상이 있긴 하지만 건강히 살아계신다. 하지만 그녀 곁에서 그녀를 지켜줄 남자는 없다. 남편은 이미 십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아들은 십여 년 전 사고 이후 아내와 자식들의 돌봄을 받고 있다. 그녀에게는 네 명의 딸도 있었는데 그중 둘은 해외에서 살고 있고, 큰 딸은 70대로 지병이 있고, 둘째 딸(나의 어머니)은 아들을 편애했던 할머니와는 대면 대면하다. 하나뿐인 손주가 몇 년간 할머니와 함께 거주했지만 현재는 사정상 그러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할케어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할머니와 거주지가 가까워진 나는 종종 도움이 필요한 할머니에게달려가곤 했다. 그렇게 1여 년간 옆에서 할머니를 도왔지만결국 그녀가 원하는 결론은 사랑하는 내 아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딸의 부양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딸들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본인의 재산을 아들에게만 주고 싶은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고 계신다. 본인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도 않으면서, 그 돈 아들에게 주려고 하는 저 마음이 얼마나 슬프고 허무한가 말이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 동안, 어그러진 모녀의 관계는 이미 신뢰와 존중을 잃어가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딸이란 내 집에 있는 것을 훔쳐 가기 바쁜 존재고(실제로는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지만), 딸들에게 할머니는 욕설만 내뱉는 모진 존재였다. 어쩜 이럴까. 누구보다 가까운 관계인데! 아, 너무 가까워서 그럴 수 있는 건가?
소설 [무료 카지노 게임]에서 많은 이들은 주인공인 '이경', '옥희도' 그리고 '황태수'의 관계에 주목했겠지만 나는 '이경'과 그녀의 어머니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유독 마음에 남았다. 그건 아마도 지금 내가 비슷한 관계의 상황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죽음에 이른 어머니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무료 카지노 게임 집이 불편해서 아들들 곁으로 가셨구나."
헛소리처럼 웅얼거리는 말속에 가끔 여보라든가 욱아, 혁아 하는 낱말을 골라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어머니의 표정은 무료 카지노 게임가 아주 즐겁던 날의 표정을 닮아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지금 꿈속에서 고인들과 더불어 있는 것일까. 나는 문득 어머니가 회복돼가고 있다는 게 두려웠다. (...) 무료 카지노 게임는 분명히 살려는 의지 없이도 회복돼가고 있고, 나는 죽음보다도 살려는 의지 없는 삶이 더 두려웠다. (P.341)
가끔 생각한다. 할머니를 바라보며. 그녀가 임종하는 순간 그녀는 어떤 기억을 떠올릴까. 혹은 나는 그녀를 떠올리게 되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하고.. 때로는 너무 오래 무료 카지노 게임가는 것이 행운이 아니라 형벌이라는 것을 나의 할머니를 보며 하게 되었다. 멀쩡하지 않은 정신에 멀쩡하지 않은 육체. 가끔씩 정신이 멀쩡하게 돌아올 때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육신에 갇히는 그 끔찍한 형벌을 견딜 수 있을까? 나를 알고, 내가 아는 사람들은 다 죽어서 사라졌는데무료 카지노 게임가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나와의 기억과 추억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는데 무료 카지노 게임가는 것은 지옥이 아닐까? 그럼에도 살고 싶을까? 내 새끼들 보고 싶어서?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할머니 덕분에, 내 나이 마흔에 죽음을 고민할 수 있게 되어서...
"같이 갈까 봐."
문득 남편이 겸연쩍은 듯이 내 옆을 따르고 있었다.
(...) "하루쯤 아이들 좀 보시면 어때서."
"나도 그분의 그림이 보고 싶군."
"그뿐이에요?"
"당신이 오늘은 좀 더 예뻐 보이는군. 달갑게 에스코트하고 싶게 말이야."
"고맙군요." (P.375)
마지막 부분에서고인이 된 '옥희도' 유작 전시회에 가는 경이를 따라나서는 태수의 모습이 나온다. 소설을 보다 보면 경아가 사랑한 '옥희도'는 정말 자기밖에 모르는 기혼의 환쟁이였고, '태수'는 경아를 깊이 있게 채워주진 못 할지언정 진심으로 바라보고 사랑하는 남성으로 나온다. 경아는 어찌 보면 어장관리를 꾸준히 하는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결국 결혼을 하고 잘 살아가게 모습을 보니 사랑이란 것은서로 신뢰를 지키는 관계가 아닐까 하는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 자꾸 마음이 끌리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국 그런 설렘은 일정기간 후 사라지니 말이다.
마흔이 된 나는 12년째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결혼생활을 하다 보니 한 사람과 사랑을 하고, 그 관계를 이어간다는 것은 지속적인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개인적으로는 태수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남편을 많이 떠올렸다. (굳이 밝히자면나에게는 옥희도 같은 인물은 없었다.) 처음 나에게 관심을 주고, 말을 걸어주고, 다가와 준 모습이 태수의 어수룩하면서도 진실된 태도와 닮았기에 소설 속 태수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렸달까? 사실 나도 처음에는 남편을 어장관리하듯 적당히 만났기에 더 찔렸을 수도 있겠다. (결국 우린 지금 함께 하고 있지만) 사실, 내가 태수에게 감명받은 부분은 태수가 옥희도와 아내의 과거를 알면서도, 그녀가 그의 유작전을 혼자 보러 가겠다고 선언했을 때 그는 화를 내거나 하지 않고 온화하게 그녀를 에스코트하고 싶다고 말한 부분이었다. 그런 남편을 어찌 뿌리칠 수 있을까. 아마 진심으로 남편을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랑하자면 나의 허물도 이해해 주고, 심지어 품어주기도 하는 그런 태수 같은 사람이 바로 내 남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