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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클디 Apr 23. 2025

우리는 무언가에 쓸려가고 있다

이종 간 하이브리드 공간 증식에 대한 비평

누가 감히 경계를 말할 것인가. 패션인가, 미술인가? 아니, 이건 '세계-되기'의 현장이다.

요즘 서구의 패션 대기업들이 미술관을 차리고, 미술관은 패션쇼를 열고, 그 무대는 또 카페가 되고, 쇼핑몰이 되는 광경을 보며 나는 문득 조선 후기 시전(市廛)을 떠올렸다. 거긴 그저 물건만 팔던 곳이 아니었지. 소문이 오가고, 책이 돌고, 인연이 만들어지던 '삶의 바다표'였다. 그런데 지금의 이 현상은 좀 다르다. '윗물'에서 벌어지는 일이니까. 그러니까 이것은, '자본의 세계화'가 '문화의 세계화'라는 탈을 쓰고 나타난 세련된 현상이다.

그런데, 흥미롭지 않은가?



경계가 무너진 자리에서 펼쳐지는 잔치


루이비통 재단의 유리 건물을 보라. 자본의 힘이 만든 예술의 포장이다. 미술관인가, 브랜드 신전인가? 둘 다다. 그것도 아주 뻔뻔하게! 이것은 예전에 우리가 알던 '돈과 예술은 서로 거리를 둔다'는 위선적 경계를 날려버린 것이다. 좋다, 솔직해졌으니. 하지만 그 솔직함의 뒤편엔 새로운 신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브랜드는 문화다'라는.


프라다가 뇌과학 전시를 여는 광경은 또 어떤가? 이건 그냥 '학문적 호기심'이 카지노 게임 추천다. 브랜드가 '사유의 주체'로 변신하는 전략이다. 옷 파는 회사가 카지노 게임 추천라, '생각하는 집단'으로 자기 정체성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메트로폴리탄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들'... 참 묘한 제목이다. 죽었던 옷이 현대 기술로 다시 살아난다고? 이건 그저 전시가 카지노 게임 추천라 시간을 가지고 노는 실험이다. 죽은 물건들에게 '현재성'을 부여하는 마법. 한국의 '고고학'이 카지노 게임 추천라 '발굴학'처럼, '죽음'이 카지노 게임 추천라 '되살림'의 문화다.


그리고 스와로브스키의 서울 전시! 아, 이건 한국인의 '흥'과 서구 자본의 '쿨'이 만난 절묘한 판이다. 이 전시장에서 '보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사는 사람'이거나, '찍는 사람'이거나, '즐기는 사람'이다. 전시와 쇼핑과 놀이가 하나로 꿰어진 '현대판 놀이터'인 셈이다.



흐름의 정치학, 그것은 '삶의 방식'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이런 공간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바로 '고착된 의미'의 종말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양반'과 '상놈'을 구별하던 것처럼, 현대인들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구별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 경계가 무너졌다. 아니, 무너진 것이 아니라 '흐르고' 있다.


이것은 바우만이 말한 '액체근대'의 한 징후다. 고체였던 것들이 액체로 변하고, 그 액체들이 서로 섞이면서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낸다. 이런 유동적 정체성의 시대에, 공간도 '유동적'이 된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공간들이 만드는 '시간성'이다. 이제 전시는 '한 번 가면 끝'이 카지노 게임 추천다. 계절마다, 시즌마다 다시 찾게 만드는 순환의 리듬을 갖는다. 이것은 조선 후기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열리는 장을 찾아다니던 모습과 묘하게 닮았다. 다만 지금은 계절이 카지노 게임 추천라 '마케팅 캘린더'가 그 리듬을 결정한다는 점이 다르지만.



이름 없는 공간, 그곳에서 우리는 무엇이 될 것인가?


자, 우리는 지금 명명할 수 없는 장소에 서 있다. 그런데 이건 꼭 나쁜 일만은 카지노 게임 추천다. 조선 후기의 새로운 시대를 연 '실학자'들도 처음엔 그랬다. 주자학도 카지노 게임 추천고, 양명학도 카지노 게임 추천고, 서학도 아닌 그 '이름 없는 학문'이 결국 '실학'이라는 이름을 얻었듯이.


우리가 지금 직면한 이 혼종적 공간들도 언젠가는 이름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는 이 공간들이 던지는 질문들에 답해야 한다.


"이 공간들은 정말 '민주적'인가, 카지노 게임 추천면 새로운 계급의 놀이터인가?"
"이 공간들이 만드는 경험은 '진정한 경험'인가, 카지노 게임 추천면 '패키지된 감각'인가?"
"이 공간들에서 우리는 '주체'인가, '소비자'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질문.

"이 공간들은 '삶을 바꾸는가', 카지노 게임 추천면 '삶을 포장하는가'?"


나는 이 모든 질문들을 안고, 이 이름 없는 공간을 '공감각적 수행의 장'이라 부르고 싶다. 여기서 우리는 단순한 관람객이 카지노 게임 추천라, '공동 창작자'로서 존재한다. 물건을 사면서도 문화를 만들고, 전시를 보면서도 소비를 한다. 이것은 양면적이면서도 양가적인 경험이다.


하지만 이런 혼종적 경험의 시대에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문화는 '어떤 경험을 했느냐'가 카지노 게임 추천라, '그 경험을 통해 어떻게 변화했느냐'에 있다는 것을.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이 새로운 지식을 통해 세계를 바꾸려 했듯이, 우리도 이 새로운 공간들을 통해 세계를 읽고, 쓰고, 바꾸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바로 '무명(無名)'의 장소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이름붙이지 말고, 살아내자. 질문하면서, 변화하면서, 창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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