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작가
“당신이 내 돈 훔쳐 갔잖아. 빨리 돌려달라고!”
보풀이 일어난 연분홍색 카디건을 걸친 백발의 노인이 버스터미널 매표소 앞에서 핏대를 세우며 소리치고 있다.
“아니, 어르신. 여기 티켓 드렸잖아요. 남해로 가신다면서요. 뒤에 손님들 기다리십니다. 계속 이렇게 행패 부리시면 경찰 부를 수밖에 없어요. 얼른 가세요.”
공경할 경(敬,) 계집종 애(娭) 한카지노 게임.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1957년 국민학교 2학년 때 처음 한자를 배우면서, 본인의 이름 뜻이 “공경하는 계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남 6녀 중 일곱째로 태어난 그녀의 언니들 이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순애, 미애, 희애, 지애, 승애.
“사람은 말이야. 자고로 이름 뜻 따라 살게 된다. 딸꾹. 내 이름이 뭐야. 솟을 용(聳), 범 호(虎) 범처럼 용맹스럽게 솟아오르는 인생이란 말이야. 딸꾹. 이번에 장씨네 가면 내가 싹쓸이 해올 거야. 딸꾹. 너희 아부지 무시하지 말어. 응?”
술만 마시면 자식들을 모아 앉혀놓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던 아버지. 카지노 게임 그의 눈길을 피해 코끝에 침을 묻혀가며 근근이 그 시간을 버텨냈다. 옆에 앉은 승애언니와 눈길을 주고받다가 실수로 키득 소리를 낸 바람에 아버지에게 뺨을 맞은 적도 있었다. 유난히도 볕이 좋았던 어느 날, 어머니와 단둘이 마루에 앉아 콩나물 머리를 다듬으며 경애가 물었다.
“아버지는 왜 만날 일도 안 하고, 돈만 축낸대요. 그놈의 노름이 뭣이 좋다고. 그리고 덕표오빠랑 창용이놈 이름에는 표범도 있고 용도 있는데. 내 이름 뜻은 이게 뭐래요.”
어머니는 미동도 없이 계속해서 나물을 다듬으며 답했다.
“카지노 게임 너. 아부지 흉보면 못써. 덕표랑 창용이는 나중에 우리 집을 이끌어갈 기둥이란 말이여.”
카지노 게임 이부자리에 빨간색 꽃을 피워낸 16살의 봄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일찌감치 언니들의 초경을 경험했음에도, 빨간 핏자국을 바라보고 있자니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카지노 게임야 축하헌다. 저녁에 어무이가 계란푸라이 해줄 것이여.”
환하게 미소 짓는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며, 카지노 게임 생각했다. 백 점 맞은 시험지를 들이밀었을 때도, 교내 경시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을 때도 언제나 쌀쌀맞았던 아버지가 본인을 향해 처음으로 웃고 있다는 사실을. 그날 저녁, 덕표오빠나 창용이 도시락에서나 볼 수 있었던 계란후라이를 먹으며 카지노 게임 이 집을 떠나겠노라 다짐했다.
어머니는 딸들이 초경을 한 날 저녁이면 어김없이 계란후라이를 해주셨다. 순애언니는 우리 중 가장 먼저 그것을 먹으며, 얼마나 따뜻하고 부드러운지 맛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사흘 후, 순애언니는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 다른 언니들도 마찬가지였다. 계란후라이를 먹고 난 뒤 일주일 안에 모두 집을 곁을 떠났다. 어머니 심부름으로 장에 가던 날, 카지노 게임 거리에서 우연히 희애언니를 마주쳤다. 언니는 부르튼 손으로 황급히 얼굴 한편을 가리며 그녀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나 얇고 가녀린 손가락으로 새파랗게 수 놓인 멍 자국을 가릴 수는 없었다. 그 순간 카지노 게임 깨달았다. 시집은 몸종으로 팔려 가는 일이라는 사실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계란후라이를 맛본 그날 새벽, 카지노 게임 남몰래 짐을 꾸려 집을 나섰다. 그녀가 마지막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마당에 터를 잡은 덕구 뿐이었다.
“덕구, 너 절대로 짖으면 안돼. 아무 소리도 말어.”
윤기가 흐르는 연갈색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지막 당부를 전했다. 이후 카지노 게임 아버지 지갑에서 훔친 3천 원을 손에 쥐고, 서랍 안에 있던 낡은 손전등을 켜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새벽 동이 터서 버스가 다니기 시작할 무렵, 터미널로 향하는 첫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카지노 게임 매표소 직원에게 물었다.
“여서 제일루다가 먼 곳이 어디여요? 그짝으로 가는 표를 사고 싶은디요.”
잠시 후 그녀의 손에는 서울행이라고 적혀있는 표가 쥐어져 있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백화점에서 판매원으로 근무하던 카지노 게임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넥타이를 사러 온 그에게 마음을 내주었다. 그의 이름은 박경수. 은행원으로 성실하고 책임감 있어 보이는 그와 백년가약을 맺고, 슬하에 1남 2녀를 출산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아버지의 말씀은 틀림이 없었다. 밝을 경(暻)에 셀 수(數). 그는 이름처럼 셈이 빠른 사람이었다. 집안일을 경시하며, 걸핏하면 생활비를 주지 않겠다며 협박하기를 일삼았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고 했던가. 그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부모와 인연을 끊고 지내는 그녀를 무시하고, 하대했다. 기분이 울적한 날이면 카지노 게임 눈을 감고, 남해를 떠났던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고는 했다.
카지노 게임의 얼굴에 늘어나는 주름처럼 수많은 세월이 흘렀다. 2024년 4월의 어느 날, 그녀는 다시 터미널 매표소 앞에 서 있다. 과거와 다른 점이라면 그녀의 왼손에는 단돈 삼천 원이 아닌 딸 명의의 신용카드가, 반대 손에는 서울이 아닌 남해행 티켓이 쥐어져 있다는 점. 그녀는 더 이상 열여섯 청춘이 아닌 일흔여섯의 노인이 되었다. 매표소에서 한바탕 소통을 일으킨 후, 대합실에 앉아 그저 멀뚱멀뚱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소녀 같은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엄마!”
경찰 제복을 입은 남자와 함께 익숙한 얼굴이 카지노 게임에게 다가왔다. 윤혜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트릴듯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엄마. 진짜 왜 그래! 도대체 왜!”
카지노 게임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딸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경찰의 부축을 받아 딸의 오래된 승용차 조수석에 앉은 경애에게 딸이 물었다.
“엄마, 내가 엄마를 왜 미워하는지 알아? 엄마는 예전부터 그랬어. 늘 오빠 먼저. 학예회, 운동회, 심지어 졸업식까지 오빠네 학교랑 행사 날짜가 겹치는 날에는 나는 늘 혼자였어. 민혜도 마찬가지야. 학교 다닐 때 소원이 학부모 참관수업 날 오는 거였대.”
딸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근데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오빠는 지금 어딨어. 사고나 쳐서 아버지 유산 다 까먹었잖아. 큰언니도 그래. 자기 새끼 다 키워준 시어머니, 치매라고 무시하기나 하고 말이야. 결국 지금 엄마 곁에는 나랑 민혜뿐이잖아.”
이윽고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깐 엄마. 다시는 그러지 마. 참사랑 요양원만큼 밥도 잘 챙겨주고, 선생님들도 친절한 곳이 어디 있다고. 경찰에서 그러는데, 치매 노인이 실종되면 못 찾는 경우가 허다하데. 그놈의 망할 핏줄이 뭐라고. 암만 미워도 엄마는 내 엄마니깐. 다시는 그러지 말어.”
그 순간 꺼져있던 스위치가 번쩍이며 켜지는 강렬한 느낌을 받은 카지노 게임가 입술을 떼어냈다.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가 잠시 길을 잃었어. 그래서 그랬어. 다시는 안 그럴게. 얼른 돌아가자.”
카지노 게임 과거의 다짐을 떠올렸다. 엄마 같은 부모가 되지 않겠다고.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언니들처럼 살지 않겠다고. 그녀는 운명 따위는 믿지 않았으나, 시대와 환경을 거스르는 것은 결단코 쉽지 않았다. 그런 경애의 옆자리에는 엄마와 다른 삶을 선택한 어린 경애가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