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1
푸른 발에 걸린 삽화
박래여
성탄절이다. 해마다 성탄절이 돌아오면 기억의 창고에 깊숙이 숨어있던 그것이 발아를 한다. 잊은 줄 알았지만 아직도 서늘하다. 병치레 잦았던 나는 연약했고 또래보다 작았지만 재잘재잘 까르르 까르르 잘 웃고 잘 뛰어다니는 참새 같은 아이었다. 그랬던 내가 그날부터 애어른이 되어버렸다. 벙어리는 아니었지만 조용하고 말이 없어졌다. 누구에게나 슬픔이나 고통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천사였던 때가 있다. 기억하지 못할 뿐이지. 대략 네다섯 살 전후까지 아닐까.
우리 집 뒤란은 온통 굵은 대카지노 게임 사이트 밭이었다. 동네에서 대카지노 게임 사이트집으로 통했다. 대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바람이 흔들어줄 때만 울었다. 사그랑사그랑, 우우우우우. 대카지노 게임 사이트 우는 소리는 슬펐다. 할머니는 억울하게 죽은 영혼이 대카지노 게임 사이트 속에 스며서 그렇다고 했다. 대카지노 게임 사이트에 든 영혼은 밤에 슬그머니 대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빠져나와 칭얼거리는 아이를 잡아간다고 했다. 대카지노 게임 사이트 영혼은 밥투정 하는 아이, 부모 말씀 안 듣는 아이, 거짓말 하는 아이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대카지노 게임 사이트 숲에는 육이오 동란 당시 피난처로 파 놓은 깊은 방공호도 있었다. 입구를 솔가리묶음으로 막아두었지만 방공호에는 할머니가 빚은 밀주가 들어 있곤 했다. 방공호를 지나 올라가면 언덕 밑에 푹 꺼졌지만 편편한 터가 나왔다. 텃밭으로 활용하던 자린데 대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울창해지자 쓸모를 잃어버렸다. 붉은 황토 땅이었다. 아버지는 언덕 아래의 황토를 파내 구들도 고치고 굴뚝도 고쳤다. 언덕의 아랫부분을 깊이 파내다보니 둥그스름한 반원형의 굴이 형성되었다. 언덕은 반원형의 지붕이 되었고 그 아래는 평평한 바닥이 되었다. 반달모양의 굴은 비가 올 때도 그 속에 들어가 앉으면 비를 피할 수 있었다. 우리들 아지트였다. 대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바람도 막아주고 언덕이 추위도 막아주었다. 겨울에는 굴 안쪽에 모닥불도 피울 수 있었다. 봄가을에는 아늑하고 따뜻했지만 여름에는 습하고 모기가 많았다.
우리는 틈만 나면 그곳으로 모였다. 소꿉놀이를 했다. 굴 입구를 온갖 나뭇가지와 대카지노 게임 사이트가지로 울타리를 만들고 사립문도 만들었다. 문을 열면 굴 한쪽에는 대카지노 게임 사이트 잎 위에 낡은 거적때기를 깐 포근한 방이 있었고,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벽 쪽으로는 사금파리나 옹기 깨어진 것들을 차려놓은 부엌도 있었다. 꿈의 집이었다. 언니들은 그곳에서 동화책을 읽고, 학교 숙제도 하고, 공부도 했다. 흐린 날에는 낮에도 귀신이 나올 것 같았지만 촛불을 켤 수 있는 굴집을 우리는 좋아했다. 우리들의 겨울옷이라는 게 신기하다. 할머니가 솜을 넣고 누벼준 무명 저고리와 속곳, 까만 치마에 버선이었지만 따뜻했다. 작은언니는 단발머리, 큰언니는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카락을 땋아 늘어뜨렸다. 나는 엄마 같은 큰언니를 작은언니보다 더 따랐다.
종소리가 들렸다. 은은하다 못해 들리는 듯 마는 듯 했다. 오리정도 떨어진 초등학교 옆의 교회에서 치는 종소리였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할머니는 두 언니를 교회에 못 다니게 했다. 서양 귀신에게 잡혀 간다고 했다. 아무리 어른이 말려도 아이들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설렜다. 교회에 가면 떡도 주고 예쁜 장갑이나 공책, 동화책을 선물로 받았다. 다른 아이들은 선물을 받기 위해서라도 기를 쓰고 교회에 갔지만 우리는 어림도 없었다. 할머니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으면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대나무 숲의 우리 아지트에 들어가 예수님의 탄생을 연기하는 것이었다. 아기예수 탄생은 학교에서 배웠는지, 할머니 몰래 친구 따라 교회를 들락날락했던 큰언니였는지 모르지만 우리들에게 성탄절은 행복한 날이었다. 더구나 그날은 할머니도 없었고, 우리 아지트에는 따뜻한 불도 있었다.
큰언니는 성탄절 이브라고 했다. 나는 큰언니 등에 업혀 우리들의 비밀아지트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미 나랑 동갑내기 상후랑 상후의 사촌 누나 순이를 비롯해 동네 아이들이 대여섯 명 모여 있었다. 둥그스름하게 파낸 언덕 밑에 장작불도 타고 있었다. 언니들이 들떠서 소리 질렀다.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야. 예수님이 오늘 밤 태어나실 거야. 옥아, 니는 아기 천사다. 아기 천사는 구시에서 잠을 자는 거야.’ 나는 얌전한 아기천사가 되었다. 헛간에 방치해 놨던 타원형의 대나무 소쿠리가 구유로 변했다. 나는 타원형의 커다란 대나무 소쿠리에 뉘어졌다. 아기천사처럼 소쿠리에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새파란 하늘이 대나무가지에 걸려 나풀거렸다.
“자 구시를 빙 둘러 앉아 기도하는 거야.”
큰언니는 아이들을 통솔했다. 아이들은 나를 가운데 두고 빙 둘러 앉아 두 손을 모우고 눈을 감았다. 기도가 시작되었다. 큰언니의 목소리는 댓잎 흔들리듯 사락거렸다.
“하나님 아버지 거룩하시니 우리를 복되게 하소서. 아멘”
고요하다. 나는 살그머니 실눈을 떴다. 쭉 뻗은 대카지노 게임 사이트들이 일렁거렸다. 순간 대카지노 게임 사이트 끝에 시커먼 그림자가 앉아 내게로 쏟아졌다. 숨을 쉴 수가 없다. 고함을 지를 수도 없다. 나는 끅끅 숨이 넘어갔다. 대카지노 게임 사이트 소쿠리에서 일어나려고 애를 썼다. 대카지노 게임 사이트소쿠리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때마다 내 목에서는 쇳소리가 났다. ‘으악 으악’ 헐떡거렸다. 대카지노 게임 사이트 소쿠리가 나를 꼼짝 못하게 옳아 맸다.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나를 옭아맸다.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렸다. 언니들이 눈을 떴다. 모두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큰 언니가 뒤뚱거리는 소쿠리를 꽉 잡았다. 작은 언니는 내 손을 잡았다.
“가시나가 와 이라노? 옥아, 옥아. 가만히 좀 있어봐라. 누가 니 잡아 묵는다나.”
“이 가시나 병이 또 도진기다.”
눈을 번쩍 떴다. 상후가 넋 나간 표정으로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었다. 소름이 쫙 돋았다. 상후를 외면하고 큰언니를 봤다. 큰언니는 나를 일으켜서 품에 안았다. 그제야 나는 헐떡임을 멈추었다. 언니를 꽉 끌어안았다. 언니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엉아야, 누가 죽을 끼다. 무서워. 할매한테 가자.”
“할매는 고모 집 갔다 아이가. 니 또 헛소리 하모 니만 냉기고 우리는 교회에 가끼다. 아기 예수님 만나러 가끼다. 그랑께내 할매 찾지 말고 우리끼리 놀모 된다.”
그때 할머니는 계시지 않았다. 할머니는 우리가 대밭에서 노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아침 첫차를 타고 고모 집에 가셨다. 큰언니 말에 의하면 고모가 해산을 했단다. 고모는 다섯 번째 딸을 낳았다. 손자를 학수고대하던 고모의 시어머니는 고모가 또 딸을 낳자 해산구완도 작파 했다는 소문이 날아들었다. 할머니는 미역국을 끓여 딸을 보러 갔다. 안사돈과 쌈질을 할 것이다. 할머니 성질에 그러고도 남았다. 고모가 딸을 낳을 때마다 할머니와 안사돈 간에 시비가 붙었다. ‘이판사판이다. 한 번 붙자. 니가 사돈이모 다냐. 내 딸 너거 집 귀신 안 맹글끼다.’ 그러면서 고모를 끌고 오려고 했지만 번번이 고모부 때문에 실패했단다. 이번에도 실패할 것이 빤하다. 고모부는 칠삭둥이다. 고모가 잠깐만 안 보여도 ‘우리 색시 오데 갔노. 옴마, 우리 색시 오데 갔노.’ 징징 짜는 바람에 고모 시어머님은 며느리가 아무리 미워도 쫓아낼 수가 없다. 고모가 딸을 낳을 때마다 한번 씩 난리를 쳤지만 할머니는 사돈끼리 한바탕 하고 또 의좋게 한 이불 덮고 자고 새벽같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할매 올 기다. 고모 집에서 벌써 나왔다.”
나는 언니의 품에 묻었던 얼굴을 들었다. 하늘을 봤다. 파란 하늘 끝에서 대카지노 게임 사이트 우듬지가 한들거렸다. 나를 덮칠 것 같던 시커먼 그림자는 없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이들은 다시 의기투합해서 예수님의 탄생을 기도했지만 나는 웅크렸다. ‘가시나가 겁은 많아서. 괜찮다니까.’ 언니가 달랬지만 소용없었다. 구유 속에는 나대신 헝겊인형이 뉘어졌다. 나는 여전히 언니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엉가, 집에 가자. 무서워.”
나는 큰언니에게 자꾸 보챘다. 내게 할머니의 빈자리는 넓었지만 언니들에게는 꿀같이 달았다. 방학도 했겠다. 학교 갈 일도 없는 겨울, 아버지는 겨울동안 지리산 골짝의 산판에 가서 산다. 화전민촌에 기거하면서 벌목 작업을 한다. 봄에 해동을 해야 집에 올 수 있다.
“가시나야 할매는 낼 온다카이. 자꾸 그라모 니 혼자 냉기고 우리는 교회 가끼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상후가 다가와 손을 잡았다. 나는 상후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상후는 입속으로 들어가는 코를 소맷부리로 쓱 문지르며 바보처럼 웃었다. 멍텅구리. 나는 상후를 째려봤다. 도톰하게 솜을 놓아 만든 상후의 누비옷 소맷부리는 콧물로 반질반질했다.
“옥아, 쪼매만 있다 고매 꾸 주게. 니는 방에 들어가 누라. 이불 덮고 누 있으모 따시다. 상후야 니는 옥이랑 방에 들어가 놀아라.”
“싫어. 아기 예수도 싫고, 상후도 싫어. 집에 갈기다. 할매한테 갈기다.”
나는 토라져서 언니들 곁을 떠났다. 아무도 잡지 않았다. 대카지노 게임 사이트밭에서 집까지는 비탈길이었고, 대카지노 게임 사이트 잎이 깔린 길은 미끄러웠다. 나는 몇 번이나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픈 궁둥이를 털고 일어나며 울었다. 내 울음소리가 커지자 ‘옥아, 옥아’ 언니들이 합창을 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명저고리 소맷부리로 눈물을 쓱 닦고 대밭을 벗어났다. 언니들이 등 뒤에서 시시덕거렸다.
“가시나가 순 고집쟁이다. 놔도삐라. 집에 갔다가 심심하모 올라올 기다.”
“우리 고매 꾸 무까? 불에 묻어 놓고. 상후 니가 아기예수 해라.”
우리 집 안방에는 고구마 가마니가 가득 차 있었다. 고구마는 겨울 양식이다. 겨울이면 고구마는 삶아서도 먹고, 구워서도 먹고, 말려서도 먹었다. 보리쌀에 쌀 한 줌 섞어 고구마만 잔뜩 올려 지은 고구마 밥을 먹었고, 고구마 죽도 먹었다. 모두가 가난했지만 아무도 가난한 줄 몰랐다. 고구마가 밥인 줄 아니까. 겨울밤이면 화로 속에서 고구마가 익고, 생고구마를 깎아 먹으며 허기를 채웠고 고구마 가마에서 고구마가 썩어가며 풍기는 냄새는 우리랑 동고동락 하는 익숙한 냄새였다.
집에 왔다. 나는 방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내가 잠을 깼을 때는 밤이었고 할머니가 내 곁에 누워계셨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