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이게 뭐지?'
어쩌다 한번 차를 청소하기 위해 핸들을 만지다가 조그마한 레버를 발견했다. 자그마하니 처음 보는 녀석이다. 자세히 보니 영어로 크루즈 cruise라고 쓰여있다. 순간 놀라움과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아니 크루즈라니, 속도를 미리 세팅해 놓으면 가속페달을 밟지 않아도 그 속도를 유지하는 엄청난 첨단 기능이 설마 내 차에 있단 말인가? 혹시 폼으로 달아놓은 페이크 레버는 아닐까? 만일 있다면 도대체 나는 그동안 왜 이런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을까?
이렇게 좀 호들갑을 떠는 이유가 있다. 내 차는 코란도 스포츠, 8*로 시작되는 번호를 지닌 화물차다. 적당한 승차감에 비교적 넓은 화물적재함, 거기에 4륜 구동까지 되다 보니 레저활동을 하는 사람이나 나처럼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많이 타는 실용적이고 저렴한 모델이다. 첨단 기능하고는 애초부터 거리가 멀다는 말이다. 연식으로 봐도 그렇다. 2012년 9월에 태어난 녀석을 4년 전에 중고로 입양했다. 10년이 다 된, 한 마디로 어디 부딪혀 찌그러져도 그리 안타깝지 않을 농촌 트럭이다. 이런 오래된 차에 크루즈 기능이라니, 눈에 보고도 금방 실감이 나질 않는 이유다.
마침 아내와 처갓집에 가려던 참이다. 아무 일도 없는 척, 아내에게는 별다른 설명 없이 길을 나섰다. 괜히 호들갑을 떨었다가 실패하느니 먼저 확인을 하고 서프라이즈로 알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다. 좁은 동네를 벗어나고 구불구불 고갯길을 지나서 제법 쭉 뻗은 국도를 만나서 조심스럽게 크루즈 버튼을 누른다. 가속페달에 발을 떼니 마치 누군가 차를 밀듯이 혼자서 쑥쑥 나간다. 어 어, 된다 된다. 이리저리 조물딱 거리며 나름대로 크루즈의 공식과 매뉴얼을 만들었다.
우선 크루즈는 굴곡이 많은 고갯길이나 복잡한 도시가 아니라 곧은 외곽도로나 고속도로에서 주로 쓰이고 가끔은 완만한 오르막길에서도 유용하다. 이런 길에서 어느 정도 속도를 유지한 채 크루즈 기능을 선택해 놓으면 액셀을 밟지 않고 오른발을 브레이크 위에 올린 채 쉴 수 있으니 편하다. 속도는 주로 제한 속도 부근에 맞추어 놓는다. 조금 빨리 가고 싶으면 크루즈를 켠 상태에서 가속페달을 밟으면 되고 천천히 가고 싶으면 가속페달에서 발만 떼면 제한속도로 떨어진다. 평소 운전할 때 가끔씩 과속 카메라 앞에서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일이 없다. 딱지 떼일 가능성이 확 줄어들었다는 말이다. 거기에 연비까지 높아진다고 하니 돈 못 버는 백수에게 꼭 필요한 기능이 아닐 수 없다.
크루즈를 켜고, 아내와 드라이브를 나선다. 몇 년째 몰던 내 농촌 트럭이 마치 새로 뽑은 신차처럼, 비행기 조종간을 잡은 느낌이다. 처음에는 그깟 액셀 가끔씩 밟아주는 게 뭐 그리 대수랴 싶은데 막상 오른발을 쉬고 보니 훨씬 더 편하다는 느낌이 든다. 끊임없이 오른발을 쓴다는 것, 불편한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 불편했나 보다. 뭐 이런 예는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스마트폰이 없어서 불편했던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이게 생기고 나니 일상생활이 확 바뀔 정도로 편해졌다. 자동차도 전기도 증기기관차도 모두 마찬가지다. 없어서 불편하지는 않지만 막상 생기고 나면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 바로 새로운 기술들이다. 주절주절 자랑을 하는데 아내는 시큰둥, 한마디로 뭐 별것도 아닌 일로 호들갑을 떤다는 반응이다.
자기 차에도 크루즈 기능이 있지만 한 번도 안 써 봤단다.
며칠 뒤, 이번에는 지인을 만나 드라이브를 하면서 내 차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 엄청난 기능을 이제야 알아낸 나에 대한 자책과 함께 말카지노 게임. 그런데 지인의 반응이 재미있다.
"4년? 그거 빨리 알아낸 거요, 내가 아는 분은 폐차장 가는 길에
자기 차에 모르는 기능이 있다는 걸 알았는데 뭐.
거기에 비하면 양호한 거지"
깔깔깔 웃으며 참 너무했다고 맞장구를 치다 보니 엉뚱한 생각이 든다. 혹시 내 차에 크루즈 말고 내가 모르는 다른 기능이 있는 것은 아닐까? 크루즈는 어쩌다가 우연히 발견했지만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기능들이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혹시나 요리조리 살펴보는데 뭐 눈에 띄는 새로운 건 없다. 그렇다면 대상을 차에서다른 물건들로 확대하면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아마 많은 기능들을 못쓰고 있을 것카지노 게임. 웬만한 전자제품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스마트 폰 한 가지만 해도 몰라서 못쓰는 기능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말카지노 게임.
대상을 사람, 바로 나 자신에게까지 확대하면 어떨까? 기계는 아니지만 나 자신에게는 내가 미처 모르는 기능이 없을까? (아니, 기능이라는 말이 적절치 않다면 가능성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좋겠다.) 사실 나이 들어가면서 조금씩 나 자신에게 숨겨진 기능들을 카지노 게임하곤 했다. 나는 뜻밖에 몸으로 때우는 막일도 즐기는 편이고, 손으로 뚝딱뚝딱 목공일도 좋아한다. 커피를 볶거나 차를 덖고 내려 마시는 일, 아무 생각 없이 터덜터덜 걷는 일, 이렇게 브런치에 두서없이 글을 쓰는 일도 좋아한다. 모두들 우연히 카지노 게임한 나의 기능들이다. 그 말은 어쩌면 아직도 많은 기능들이 카지노 게임되지 못한 채 내 속에 숨겨져 있다는 뜻 이리라. 마치 폐차장으로 가면서 새로운 기능을 알았듯이 뒤늦게 카지노 게임할 수도 있고 어쩌면 영원히 모르고 폐차시킬 수도 있으리라. 차와 사람의 삶이 어찌 같을까, 어차피 모든 기능과 가능성을 실현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위로해보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올라오는 대목이다.
내 나이가 이제 61, 유행가 가사대로라면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이며 UN이 정한 기준에 의하면 졸업을 몇년 앞둔 청년카지노 게임. 차로 치자면 10년쯤 된 중고차, 적당히 길이 나서 고민 없이 쌩쌩 달리는 농촌 트럭일것카지노 게임. 아직 폐차장 갈 시기는 덜됐고 10년 동안 이미 본전은 찾았으니 이제부터 타는 기간은 보너스, 공짜로 타는 시기다. 아까울 것도 기대도 없으니 굴러만 가도 고마울 지경이다. 그런 올드카에서 사소한 기능이라도 새로 카지노 게임한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랴? 어차피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는 백수가 자신의 고물차 좀 만지작 거리며 논다고 흉볼 사람도 없지 않겠는가?
오랜만에 농촌 트럭을 세차해 본다. 군데군데 녹이 나고 지저분하던녀석이씻기고 나니 초록색 마당을 배경으로 붉은 광채를 번쩍번쩍, 마치 새 차같다. 믿음직하다. 앞으로도 최소한 10년은 멀쩡하게 달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