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큼 담을 넘었을 땐
뺨을 살며시 때리던
빗방울들이 굵어져
우산을 두드리고
개울이 되고
강으로 거세게 달려가
넘쳐오르듯
불씨는 모든 본능을
풀섶과 나무들로 향해
검은 손으로 당기고 조여
자비를 기대할 수 없는
소멸의 칼이 깊이 찔러오는
그 곳
연약한 생명들이 달려간다
얇은 피부가 녹아질 듯
얇은 폐가 찢어질 듯
마른 뼈 같은 걸음으로
지니고 가는 물
거친 호흡으로
들숨을 당기고
희고 검은 날숨을 하늘로
뿜어내며
타들어가는 것들
어느 뜨겁던 지옥의 시작은
작고 아름다운
손 안의 불씨 하나로 부터였다고들
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