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감독님 워너랑 작업하느라 많이 힘드셨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봉준호 감독 작품들 중 가장 실망스럽습니다. 관람하면서 고개를 계속 갸우뚱하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기생충은 정말 완벽하게 짜여진 오케스트라 공연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각본, 편집, 음악, 프로덕션 디자인, 연기 등 모든 영화적 요소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고 조화를 이루며 1막, 2막동안 착실히 쌓아 올려서 3막에서 빵 터뜨리는 쾌감이 엄청났던 작품이었습니다. 흐름이 굉장히 리드미컬 하기도 했고요.
이번 <미키17은정확히 그 반대였다고 생각합니다. 정재일 작곡가의 음악은 왠지 모르게 따로 놀고, 비주얼 적으로도 기억에 남는 부분이라곤 청문회가 이뤄지던 공간을 제외하면 전무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편집인 것 같습니다. 뭔가 삭제해서는 안될 장면이 삭제된듯한 느낌이 강합니다. 1막과 2막이 3막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작품이 세 토막으로 분리되어 붙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3막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너무나 갑작스럽고 어색합니다. 각 캐릭터들이 내리는 결정들에 있어서 인과관계가 부족하고 캐릭터 간의 케미스트리도 약합니다. 특히 "카이"라는 캐릭터는 비중에 비해 (성소수자를 대변하는 것 외엔) 극에 기여하는 바가 딱히 없고, 배우의 연기도 굉장히 튑니다. 명백한 미스캐스팅 같습니다.
그래도 긍정적인건 각 캐릭터들 개개인은 매력이 뚜렷합니다. 연기파 배우들의 탁월한 소화력도 있겠지만 봉준호 감독 특유의 확실한 캐릭터 빌딩은 여전합니다. 이 캐릭터들이 융합이 안되서 그렇지 하나 하나 보면 매력적인데, 그래서 더 아쉬움이 크게 남는 것 같습니다.
사실 작품 전체가 그렇습니다. 휴먼 프린팅이라는 컨셉과 2054년의 모습, 과장되었지만 정감 가는 빌런들과 선과 악이 불분명한 매력적인 캐릭터들은 존재하지만,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의 전개 방식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습니다. 사실 흥미를 떠나서 좀 삐그덕거린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과연 여기서 어떻게 흘러갈까 하는 기대와 흥분이 아닌, 도대체 극이 어디로 가고 있는건가 싶은 의문과 혼란이 더 큽니다.
https://www.indiewire.com/news/general-news/bong-joon-ho-mickey-17-final-cut-delay-1235058210/
1년여의 개봉 연기의 가장 큰 원인은 (배우/작가조합 파업과 더불어) 편집 과정이 예상보다 길어져서라고 밝혀졌는데, 이 때문에 작품의 퀄리티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시선도 많았습니다. 워너와 봉준호 감독 사이의 의견차가 커서 최종 편집 과정이 원활하지 않았다는추측도나오기도 했죠.봉준호 감독이 직접 부인하긴 했지만작품을보니 어느 정도 사실이 아니었나싶은 생각이 듭니다. 감독에게 편집에 대한 전권이 있더라도 제작사에서 특정 부분을 푸시할 수는 있는 것이니깐요. 그게 런닝 타임이든 특정 테마적 요소이든 뭔진 모르겠지만요.
만약 그게 아니라면 봉준호 사단과 워너 제작진의 문화적 차이로 인한 어쩔 수 없는 톤의 불일치가 원인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설국열차와 <옥자에서 느꼈던 묘한 어색함이 한껏 더 강조된 듯한 느낌입니다. <설국열차는 CJ가 제작/배급 했고, <옥자는 감독에게 거의 전권을 주는 것으로 유명했던 당시 넷플릭스가 총괄했습니다. 따라서 이번 작품이 메이저 제작사와의 첫 협업이었던 만큼 여러 시행착오가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예상해 봅니다.
결론적으로 전작들에 비하면 감독 본인이 진입 장벽을 많이 낮춘 노력이 뚜렷합니다.반대로 얘기하면 주제의식들이 필요 이상으로 뚜렷하고 레이어가 부족해 울림이 적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봉준호 감독의 역량을 아는 영화팬들의아쉬움이 더 큰게 아닐까싶네요. 포텐셜은 굉장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무난했던, 봉준호 감독의 필모에 아픈 손가락 같은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