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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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OB Jan 31. 2025

고요한 선, 매력적인 악

당신의 빛이 빛나는 이 밤


괜히 좀 걸었습니다. 가까운 커피집을 두고 괜히 좀 걷고 싶어 먼 커피집으로 발을 돌렸습니다. 딱히 다른 커피를 마시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딱히 다른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좀 걷고 싶었습니다. 겨울 찬 바람에 신선함을 느끼고 싶었고, 내리쬐는 햇빛에 따사로움을 느끼고 싶었고, 여전히 우직한 나무에게서 초록을 느끼고 싶었고, 횡단하는 사람들에게서 뜨거운 숨결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생명을 키우고 싶었습니다. 생명을 북돋고 싶었습니다. 제 안에 있는 생명을 돌보고 싶었습니다. 오늘은 그러고 싶었습니다. 오늘은, 그래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드리우다.


금년 역시 빡빡하고 딱딱한 공간에서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곳에서 세상을 환히 밝혀주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축복도 누리고 있지만, 정작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보단 빡빡하고 딱딱한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과히 깁니다. ‘이 정도면 행복이 아니라 쾌락이다’ 싶을 정도로 빈도의 격차가 아주 극심합니다. 의도적으로 아이들에게로 가 생명을 쐬고 있으면 빡빡한 이들이 저를 못마땅히 여기며 굳이 저를 딱딱한 곳으로 되부릅니다. 그러면 제 발은 결국 또 제 원치 않는 곳 위에 어김없이 서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뜩 메신저 속 오늘의 제가 작년보다 빡빡하고 딱딱해진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속해 카지노 가입 쿠폰 공간에서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변한 걸까요. 제 원하든 제 원하지 않든 이미 제 몸에 묻은 먹이 시나브로 까맣게 물들이는 저를 보여주었습니다. 오싹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먹이 종이를 전부 삼키는 건 시간문제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자칫 이곳과 위화감이 없어질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제 몸에 먹이 얼마나 묻어 카지노 가입 쿠폰 것인지 감이 안 왔기 때문입니다.


공간이 주는 힘은 실로 대단합니다. 공간이라는 것이 공통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하나둘 모이다 보니 자연스레 세워지고 만들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특정한 목적을 위한 공간을 먼저 정하고 그에 맞는 사람을 채워 만들어내는 것인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결국 하나의 공간 안에는 공간에 맞는 사람과 공간에 맞는 사람이 되어가는 사람만 남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간을 보고 살아있다 표현하는 걸까요. 공간은 우리 예상보다 영향력이 뛰어납니다. 사실 이전에는 공간이 개인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크게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알고 싶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습니다. 저와는 절대 어울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속해 카지노 가입 쿠폰 사이 어느새 제 몸에 그 공간의 체취가 고약하게 묻어있기 때문입니다.


불쾌한 것인지 허망한 것인지 주고받던 메신저를 급히 끄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아직 낮의 빛이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초저녁, 쿵쾅대는 가슴을 억누르지 못해 급히 잠을 청했습니다. 잠을 통해 고요함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지금도 꿈이었는지 사색이었는지 모르겠는 그 긴 씨름이 고요함을 찾고자 감았던 제 눈 위에서 시작됐습니다.


세상에 선이 많을까요. 악이 많을까요. 세상을 선이 지배하고 있을까요. 악이 지배하고 있을까요. 세상은 선으로 흘러갈까요. 악으로 흘러갈까요.


옛적부터 참 어려웠습니다. 생명에 일조하는 모든 것을 ‘선’(善)이라 정의할 때, 선으로 향하는 길이 고되다는 사실이 제게 참 어려웠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 속에 모두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고, 생명을 예찬하는 마음이 있고, 옳음으로 향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더불어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고, 웃음이 넘치는 밝은 세계를 선망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심기어 있는데, 그 심긴 선을 따라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심기어 있는 그 밝은 길을 가기가 어렵습니다. 생명과 함께하는 길이 힘겹습니다. 생명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길이 피곤합니다. 생명을 키우는 사랑의 길이 너무 고단합니다. 생명을 죽이는 것이 정당화되는 전쟁이 아무리 옳지 않다 말해도, 영화 속 밝은 세상을 만드는 영웅을 향해 모두가 박수를 보내도, 우리 사는 현실은 여전히 선의 편에 서 있지 않습니다. 이상합니다. 선을 향하여 사는 사람들은 고군분투를 해야 합니다. 선을 향하여 사는 사람들은 피를 흘려야 합니다. 선을 향하여 사는 사람들은 거스르는 길을 가야 합니다. 선을 향하여 사는 사람들은 더 이상 악에게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합니다. 이상합니다. 이상한 겁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세상은 악이 지배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세상은 악으로 흘러가고 있는 게 아닐까요? 사실 악이 선보다 강한 게 아닐까요? 만약 선이 지배적이라면, 만약 세상이 선으로 흘러가고 있다면, 만약 선이 악보다 강하다면, 오늘날 선으로 향하는 길이 이렇게 힘들 이유가 있을까요?


앞서 공간에 영향받는 개인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공간이 처음 어떤 형태로 만들어지든 간에 공간 안에는 그 공간에 맞는 사람이 남거나 그 공간에 맞는 사람이 되어가는 사람만 남는다고 얘기했습니다. 여기서 어떤 한 공간을 지배하고 카지노 가입 쿠폰 속성을 간단히 알 수 카지노 가입 쿠폰 방법이 한 가지 있습니다. 어떤 한 공간 안에서 지낼 때, 그 공간 안에서 지내기 쉬운 방향이 곧 그 공간을 지배하고 카지노 가입 쿠폰 속성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거듭 말하지만, 공간 안에는 그 공간에 맞는 사람이 남거나 그 공간에 맞는 사람이 되어가는 사람만 남게 되는 법이니까요. 혹 공간과 맞지 않는 사람이 그 공간에 있다면, 그 사람은 여지없이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혹 공간이 가지고 카지노 가입 쿠폰 속성을 거부하는 사람이 그 공간에 있다면, 그 사람은 여지없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공간은 살아있어 공간과 맞는 사람만을 품거나, 공간 안의 사람을 공간과 맞는 사람으로 만들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여기서 물어볼 수 있겠습니다. 오늘날 어렵고 불편한 길은 어떤 길이고, 쉽고 빠른 길은 어떤 길일까요. 노력하지 않고 애쓰지 않으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까요. 가만히 있으면 생명을 존중하고 생명을 사랑하게 되는 세상을 살고 있을까요. 아니면 맘몬(Mammon)의 법칙 속 생명보단 이윤이, 사랑보단 욕망이 증폭하게 되는 세상을 살고 있을까요.

다시, 우리 사는 세상은 악이 지배적일까요. 선이 지배적일까요. 세상의 인력은 우리를 악 쪽으로 당기고 있을까요. 선 쪽으로 당기고 있을까요. 선으로 향하는 길이 거스르는 길일까요. 악으로 향하는 길이 거스르는 길일까요.


옳고 그름을 떠나 솔직하게 선을 향한 걸음은 쉽지 않습니다. 세상의 인력이 우리를 대체 어느 쪽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것인지, 선을 향한 걸음은 매우 무겁습니다. 반면에 악으로 향하는 길은 쉽습니다. 편합니다. 심지어는 매력적입니다. 악은 항상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합니다. 악이 다수고, 악이 강하고, 악이 멋지고, 악이 큽니다. 그래 보입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이상하지만 그렇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는 길목에서 그렇게 느낍니다.


‘선은 강하지 않은 걸까. 세상은 악이 지배하고 있는 걸까.’ 사색이었을까요. 꿈이었을까요. 저는 어둠이 완전히 드리운 밤이 되어서야 눈을 떴습니다. 창밖에 희미하게 남아있던 낮의 빛은 이제 보이지 않습니다.

그 뒤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디서부터 차올랐는지 모를 분노를 친구에게 쏟아내기도 하고,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노트에 끄적이기도 하고, 책장을 살피다 괜스레 애도(哀悼)에 대한 책을 꺼내 어서 밤이 지나가라 읽기도 했습니다. 긴 밤은 가히 처연했습니다.


드러나다.


흐리멍덩한 눈으로 맞이한 아침, 시간에 이끌려 어김없이 길을 나섰습니다. 무엇을 위해 다시 발을 내딛는지. 왜 가야 하는지. 어디로 가는 건지. 분명 두 발은 움직이고 있었지만, 걸음은 잃었습니다. 그 어떤 안전망도 제겐 없었던 걸까요. 하루 사이 삶이 벼랑 밑으로 떨어진 것처럼 급전직하하였습니다. 겨울바람은 찼습니다. 차고 또 찼습니다. 저는 걸었습니다. 차디찬 겨울바람을 맞으며 저는 걷고 또 걸었습니다. 제 머리와 생각과 마음과 걸음을 무감각하게 만들기 위해 겨울의 날이 선 추위를 쉼 없이 맞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일은 어제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고요함을 찾고자 감았던 눈 위에서 긴 씨름이 시작되었던 어제처럼, 모든 것을 달관하고자 걸었던 길 위에서 차오르는 생기를 느꼈습니다. 뭘까요. 왜 생기가 차는 걸까요. 갑자기 왜 생명의 기운이 차오르는 걸까요. 가장 당황한 것은 저였습니다. 걸음을 잃은 채 앞뒤로 움직이는 두발 주변으로 모든 생기가 모여들었습니다. 선이었습니다. 선한 힘이었습니다. 고요했지만 분명 생기였습니다. 대체 어디에서 생명의 기운이 흘러 들어오는 걸까요.


찬 공기가 달콤하더군요. 따사로운 햇볕이 눈물 날 정도로 찬란하더군요. 옆으로 줄지어 있는 나무들이 영광스럽더군요. 횡단하는 이들의 웃음이 눈부시더군요. 어울림이 아름답고, 함께함이 창명 하더군요. 공기며 바람이며 햇빛이며 풀이며 꽃이며 나무며 길고양이며 아이며 친구며 웃음이며 대화며 함께함이 세상에 만연하더군요. 이 모든 것에서 생명의 기운이 흘러나오더군요. 이 모든 것이 생명에 일조하는 선이었더군요. 생명의 기운이 이 세상에서 흘러나왔더군요. 이 창조 세계가 모두 생명에 일조하고 있는 선이었더군요. 악이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한 이 세상에 생명에 일조하는 선이 이토록 만연해 있었더군요. 그랬었더군요.


감싸이다.


우리는 지금 생명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숨이 잘 쉬어지네’ 하지 않습니다. ‘오늘 생명이 아주 좋네’ 하지 않습니다. ‘오늘따라 저들이 내 생명을 도와주네’ 하지 않습니다. 그냥 삽니다. 그냥 숨을 마시고, 그냥 바람을 맞고, 그냥 햇볕을 받으며, 그냥 초록을 느낍니다. 그냥 웃으며, 그냥 어울립니다. 세상 모든 천지 만물이 선의 모습으로 나의 생명에 일조하고 있는데, 우리는 고요하게 찾아오는 그 섬세한 선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앙상하게 남아있는 겨울나무에서도 생명의 고동을 느낄 수 있고, 날이 선 겨울바람에서도 시들지 않는 생기를 느낄 수 있고, 틈새로 내리쬐는 따사로운 햇볕에서도 다정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데, 우리는 의식하지 않습니다. 횡단하는 이들의 눈빛과 웃음 속에서도 생명의 무늬를 마음껏 느낄 수 있는데, 우리는 의식하지 못합니다. 천지 만물에 선이 가득한데 우리는 의식하지 못합니다. 흐리멍덩한 눈 때문에 세상에 만연해 있는 선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그럼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다고 그들이 생명의 기운을 내뿜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세차게 내어 보내고 있습니다. 세상 만물이 서로의 생명을 위해 자신들 안에 있는 생기를 밖으로 세차게 내어 보내고 있습니다. 내가 그 천지 만물의 생기를 마시며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그 천지 만물의 생기가 나의 생명에 일조하고 있는 겁니다. 나는 놀랍게도 선한 힘에 감싸여 살아가고 있었던 겁니다. 선이 언제나 함께하고 있었던 겁니다. 선에 감싸인 세상을 살고 있었던 겁니다.


걸어가다.


요새 자주 걷고 있습니다. 제 안에 있는 생명을 키우기 위해, 제 안에 있는 생명을 북돋기 위해, 제 안에 있는 생명을 돌보기 위해 자주 걷고 있습니다. 만연해 있는 선의 향기를 맡으며 걸을 때마다 기운이 차오릅니다. 새롭고 산뜻합니다. 보이니 볼 수 있습니다. 선에 감싸여 있는 이 세계를 말입니다. 모든 생명에 일조하는 이 세계를 말입니다. 역시 큰 슬픔이 극복되기 위해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생명으로 밝혀진 작은 촛불 하나가 비추는 선의 힘은 큰 크기의 어둠을 헤치고 몰아내기 충분합니다. 작은 빛이 큰 어둠을 몰아냅니다.


물론 여전히 세상에 악이 강한지 선이 강한지, 세상이 악으로 흐르는지 선으로 흐르는지, 세상을 악이 지배하고 있는지 선이 지배하고 있는지 자신 있게 결론 낼 순 없겠습니다. 세상에 악이 많은 것인지, 작은 선이 큰 악보다 강한 것인지, 세상이 악으로 흐르는지, 선은 흐르는 악도 선으로 바꾸는지, 그밖에 악이 매력적인지, 선이 편재하는지, 애초에 모두 독립적으로 존재할 순 있는지, 작은 제가 알기엔 모든 것이 너무 난해합니다. 우선 과감하고 겸손하게 모두 미지수로 남겨놓겠습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알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만연해 있는 선이 지금 우리의 생명을 키우고 북돋고 돌보고 있습니다. 세상에 만연해 있는 선이 오늘 나의 생명을, 내일 나의 생명을 강하게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은 지금 우리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느낄 수 있는 그 사실은 오늘의 우리에게 진실이 됩니다. 우리는 선한 힘에 감싸여 내일을 걸을 수 있습니다.


함께 세상에 선을 더 만들어 냅시다. 우리 안에 깊숙이 심겨 있는 선을 내어 보냅시다.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생명의 기운을 흘려보냅시다. 배려와 친절, 대화와 웃음, 환대와 존중, 평화와 사랑을 나타냅시다. 그렇게 세상 모두의 내일을 응원합시다. 그렇게 세상 모두의 내일을 기대합시다. 세상천지가 고요히 선에 감싸여 움직이듯, 우리 역시 세상의 생명을 응원하는 선을 더해 나갑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창1:1)


“하나님이 손수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참 좋았다.”(창1:31)

(God saw all that he had made, and it was very GOOD.)

*GOOD = (명사) 선, 착한 사람들(형용사) 좋은, 즐거운, 기쁜, 다행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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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능력으로 - 디트리히 본 회퍼
(Von guten Mächten - Dietrich Bonhoeffer)

지나간 허물 어둠의 날들이 무겁게 내 영혼 짓눌러도
오 주여 우릴 외면치 마시고 약속의 구원을 이루소서

그 선한 힘에 고요히 감싸여 그 놀라운 평화를 누리며
나 그대들과 함께 걸어가네 나 그대들과 한 해를 여네

주께서 밝히신 작은 촛불이 어둠을 헤치고 타오르네
그 빛에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온 누리에 비추게 하소서

이 고요함이 깊이 번져갈 때 저 가슴 벅찬 노래 들리네
다시 하나가 되게 이끄소서 당신의 빛이 빛나는 이 밤

그 선한 힘이 우릴 감싸시니 믿음으로 일어날 일 기대하네
주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셔 하루 또 하루가 늘 새로워


2025년 1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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