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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이 Apr 27. 2025

카지노 게임-4

카지노 게임을 넘을 것인가

치료자와 환자 사이에 경계선(boundary)이 있습니다. 경계선 안에는 영역이 있습니다. 나의 영역과, 너의 영역. 그 테두리에 경계선. 원 안에 서서 서로 마주 보는 두 사람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나요?

각자의 영역 안에는 각자의 생각, 감정, 신체가 들어 있습니다. 각자의 영역을 구분 지어 주는 것은 경계선 입니다. 경계선은 각자의 역할을 알게 해주고, 너의 것과 나의 것을 구분할 수 있게 해줍니다.

저희는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살아갑니다. 그것은 상대방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본인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경계선을 넘으면 상대방의 것들을 변화 시키기도 하지만, 자신의 것도 변합니다.

치료자와 환자의 관계는 특별합니다. 치료자에게는 환자의 경계선을 넘나들 권한이 주어지는 듯 합니다. 환자도 자신의 경계선을 허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상 생활의 관계와 다르기 때문에 어디까지 자신을 드러내고 어느 정도로 감정을 표현할지, 자신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 경계가 모호해집니다.

따라서 치료자는 환자와의 관계에서 경계를 새로 논의하고 정해야 합니다. 경계의 대표적인 예로는 면담 시간이 있습니다. 면담 시간은 정해져 있는 것이 좋습니다. 더 오랜 시간 이야기를 하고 싶을 수 있고반대로 빨리 끝내고 싶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치료자는 정해진 시간을 지키려는 역할, 환자는 치료자의 시간을 존중해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또 다른 예로는 어느 정도로 감정을 표현 할 지에 대해서는 이전의 Warm and Firm 에피소드에서 봤던 것처럼, 물리적인 방식은 허용되지 않는 다는 점 입니다. 그것이 공격성이든, 성적인 욕구든지 간에 신체적인, 물리적인 방식은 안된다는 경계선을 설정 해주는 것입니다. 경계선을 지킴으로써 환자는 안전함을 느낍니다. 치료자 또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으며 너무 과하게 노력하는 것도 방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카지노 게임을 넘기도 합니다.중요한 주제로 이야기 하고 있으면 정해진 시간을 조금 초과할 수도 있겠지요. 또는 환자가 치료 마지막 날에 작은 선물을 주려는 것을 받아 줄수도 있겠지요. 외국에서는 가벼운 신체적인 접촉도 문화적 배경에 따라서는 허용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카지노 게임 횡단(boundary crossing)이라고 부릅니다. 경계선을 넘어갔지만 다시 돌아올 수 있고, 오히려 치료에 잘 활용한다면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카지노 게임 침범(boundary violation)은 환자를 착취하거나 해를 입히는 행위입니다. 예를 들어 환자와 사교적인 만남을 가지는 것, 가볍지 않은 신체 접촉을 하는 것, 치료비 이외에 금전적인 거래나 큰 선물을 받는 것 등이 있습니다. 이는 환자의 치료를 위한 것이 아니고, 치료자의 욕구를 충족 시키기 위한 행위 들입니다.


crossing 과 violation 사이에는 미끄러운 비탈길이 있다고들 합니다. crossing은 언제든지 violation 으로 변질 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crossing 이 반복된다면 치료자는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환자분에게 저는 어떤 crossing 을 했는지, violation 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겠습니다.


먼저 면담 시간입니다. 환자분과 처음부터 면담 시간을 정해 놓지는 않았습니다. 환자분을 처음 만난날 보통은 2,30분 정도씩 면담을 한다고만 이야기 했습니다.저 나름의 경계선은 정해 두었지만 환자분에게 명확하게 해주진 않았던 것입니다.그래서 매번 4,50분씩 면담을 할때마다 스스로는 경계선을 넘어다고 생각이 들었고, 스스로 지치게 했습니다. crossing 을 계속 반복 했고, 어쩌면 다른 환자들과 다르게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저의 욕심을 채우고자 violation 을 한 것일 수 있겠습니다.


다음으로 역할입니다.치료자와 환자의 역할에 대해서 정해 놓지 않았습니다. 치료자는 환자와의 면담에는 최대한 집중하고, 했던 이야기를 최대한 기억하는 것, 환자의 치료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역할 입니다. 환자의 역할도 면담 시간에 최대한 집중을 하고, 치료에 성실히 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치료를 하기 보다는 일상적인 대화만 하게 되었고, 환자는 평소의 인간 관계나 내면의 성장을 이룰 기회를 잃었던 것입니다. 치료자와 환자가 합심해서 문제를 회피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 치프 선생님의 말도 떠오릅니다.


다행히 신체적인 접촉이나 퇴원 이후의 만남은 없었습니다. 환자분이 연락을 달라는 메모를 남겼지만 연락을 아예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후로 치프 선생님과의 이야기를 통해 경계를 명확히 설정하고 환자와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경계선을 설정하고 그것을 지키려고 서로 노력하는 것이 치료자와 환자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혼자서 경계선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도 알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경계선을 설정 하는 것이 선을 긋는 것처럼 느껴질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과 자신을 지키면서, 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관계를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등장인물들에대한 정보와 이야기는 모두 지어낸 것이며 실제 인물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각 에피소드마다 마지막에 제가 느끼고 배운 점들만 실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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