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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향 Apr 20. 2025

카지노 게임 살린다 (feat. 파우스트)

관계, 열정, 교류의 카지노 게임

Lieben belebt das Leben eben

-카지노 게임하는 것은 생명을 살린다(Goethe, Faust I)


어제는 참 바쁜 하루였다.

하루 종일 뛰어다녔고, 정신없이 다음 일을 해야 했다.

미국 학교 야구팀은 모든 것이 자원봉사로 운영된다.

한 경기를 개최하는 데도 단지 심판과 선수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회의와 조율, 계획,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길들이 쉴 틈 없이 이어진다.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남학생들의 야구 경기, 여학생들의 소프트볼 경기.

내 역할은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학교 매점에서 다른 학부모가 그릴에서 구워온 햄버거 패티와 소시지를 받아 포장하고, 스낵과 함께 판매하는 일이었다.

뜨거운 공기와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 냄새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경기장으로 걸어갈 때쯤, 나는 이미 기진맥진 상태였다.

아들의 경기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자 이내 힘이 솟았다.

목청껏 응원하고 박수를 치며, 야간 조명이 환하게 켜진

스탠드에서 모두 한마음으로 선수들의 이름을 불렀다.

재학생들까지 가세한 응원의 함성은 하늘을 찌를듯했다.


그리고 경기 후, 밤 10시가 가까워졌을 무렵.

주차장으로 향하던 내 뒤로 누군가가 걸음을 재촉해 오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캐빈 할머니가 계셨다.

두 손엔 보기에도 묵직해 보이는 커다란 선물 상자가

들려 있었다.

“오늘 경기 정말 멋졌어요. 축하해요.

아들 부상 소식 듣고 마음이 계속 쓰였어요.

이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면 좋겠어요.”


이건 단순한 ‘선물’이 아닌 마음이 담긴 위로였다.

분명히 바쁜 하루를 보냈을 그녀가, 내 아들의 부상과 복귀를 응원하기 위해 경기를 보러 온 것이다.

진심으로 기뻐해주고 마음을 담은 선물을 건넸다.

나는 포옹하며 속삭였다.

“당신 덕분에 오늘이 내게 특별한 날이 되었어요

(You made my day).“


‘카지노 게임 살린다‘고 말한 괴테의 구절이 떠 올랐다.

존재를 움직이고, 의미를 부여하며, 삶을 재생시키는 힘.

카지노 게임.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은, 나 혼자의 의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내 어깨에 살며시 얹어주는 손, 아무 말 없이 건네는 한잔의 물, 그리고 “당신 힘들었겠다”는

눈빛 안에 깃든 카지노 게임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짊어지고 산다.

각자의 속도, 무게, 결을 가진 짐들.

그렇기에 타인의 슬픔이나 불안을 살핀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어제의 그 순간이 더 귀하게 느껴졌다.


누군가의 하루를 밝혀주는 말 한마디.

그 카지노 게임 우리를 살린다. 오늘도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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