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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상 Apr 22. 2025

쓰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 되기까지

17. 남의 편에서 내편으로

죽기 전 내 마지막 소원이 글쓰기라고 하소연했을 때도 남편은 아직 남의 편이었다.

일 년을 통으로 집 비워 본 적이 없는 나. 몇 년 전 환갑 때 나 자신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며 혼자 제주에서 한 달 반 살이를 할 때, 남편은 가을 수확철이라 한창 바쁜 시기였고 갈무리할 게 많다 보니 힘들어했다. 고달파 비썩 말랐다며 친구며 이웃들은 전했고 도대체 언제 올 거냐며 남편보다 나를 더 기다렸었다.

이번엔 더군다나 일 년이라니...


아찔했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선뜻 흔쾌히 다녀오라 말이 입밖에 떨어질 수 없다는 걸 잘 알았기에 나도 이 나이에 뭔 만용인가 싶기도 했다. 뭐 대단한 걸 길어 올린다고 일 년씩이나 집을 비우고 살림을 걷어치운다는 말인가 했겠지. 나 같아도 많이 망설이고 가지 말라 했을 거다. 하지만 그는 모르는 거 빼고 나를 젤 많이 겪어보았으니 안다. 저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일단 마음먹으면 고삐를 쥘 수 없다는 것을.

애들이 아직 초등학교 다닐 때 마을에서 독서모임을 한 적이 있다. 부부가 4, 부부 중 혼자 오는 이들 서넛이서.책을 읽고 나누고 지금은 사라진 계룡문고로 함께 책나들이 간 적도 있다. 남편한테 옆구리 찔러 정현종 시인의 책을 선물로 받았는데 책 안쪽 날개에 '자유로운 영혼 조유상에게'라고 써 주었다. 좀 뭉클했던 기억이다. 아, 어떻게 알았지? 이 사람, 내 영혼에 들어왔다 나갔었군, 하며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자유로운 영혼'이라..., 혹시'제멋대로'의 다른 표현 아닐까.


겉으로 나긋해 보이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사람 뚜껑 열리게 하는 고집(이건 완전 승복이 안 된다만)에다 숙맥이고 맹탕에다 대책 없는 선머슴아. 엄마는 고분고분하지 않고 뭔 생각 하는지 도무지 알수 없던나를 '선머슴아'라고 불렀고, 친한 고등학교 친구 아버님은 나에게 '유상이는... 야생마야'라 하셨다. 난 나처럼 별 말도 없고 사고도 안 친 아이한테 뭔 야생마?라고 하셨는지 지금도 살아 계신 그분께 여쭤보고 싶지만 그 별명이 이상하게 나쁘진 않았다. 적어도 주야장천 듣던 일관된 별명 '울보'보단 나았으니까. 물론 속으로 살짝, '들켰다'는 느낌은 들었으니 내 안에 야생마 있는 걸 스스로 조금은 인정했나 보다. 결혼해 나에게 남편이 적어준 자유로운 영혼까지, 말하자면 나는 누군가에게 길들여지기 힘든 그렇고 그런 사람 아닐까? 울보- 야생마-선머슴아-자유로운 영혼,그 별명들 안을 들여다보면 공통점은 누군가에게 사로잡히기보단 그냥 누군가로 살아가는 걸 더 좋아한다'는 교집합이 나온다. 왜 그렇게 많이 울었을까.


제가 카지노 게임 사이트 싶은 게 있는데 뜻대로 되지 않고 오빠들에게 선수를 빼앗기니까 울고 욕심나는 게 있는데 이루어지지 않으니 울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싶은 걸 못해서 울고 억울해서 울고 서러워 울고 서글퍼 울었다. 여자로 태어난 게 싫고 분해서 울고 고추 하나 달고 나오지 않았다 차별당해 울고 또 울었다. 니가 평강공주냐? 싶게 울음은 뒤끝 있게 달꾹질까지 하며 울었다. 아참, 부끄러워 울기도 많이 했다. 뭐가 그리 매번 부끄러웠는지. 얼굴도 뻑하면 귀까지 새빨개지고. 누가 옆에서 '운다 운다'카지노 게임 사이트 놀리면 진짜로 울어버렸다.


그렇게 부끄러움 많고 억울함 많던 내가 충남 홍성군에 있는 홍동 마을에 풀무학교에 근무하게 되면서 만나고 만난 지 두 달 만에 결혼하게 된 남자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은근히 꿰뚫어 보고 있었는 모양이다. 나의 숱한 단점에도 그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감싸 안았고 나는 그에게서 관용을 만났다.


그가 30년 같이 살던 나를 일 년간 놓아주었던 건 아마도 저 꺾을 수 없는 자유영혼 덕 아닐까? 아주 떠나보내진 못하겠고 잠시 놓아주면 제 자리로 돌아오리라는 밥 같은 믿음이 깔려 있었을 테니까. 그는 나를 만나 어땠을까? 곧이 곧대로라 답답하기도 했을 거고 엉뚱하니 재밌기도 했겠지. 속상하기도 했을 거고 왜 저럴까 오해도 했을 거다. 미워하기도 했겠지만 사랑하기도 했을 거고. 놔주고 싶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을 남편이 나를 놔주기로 하면서 젤 두려워했던 건 뭘까? 밥을 안 해 줄까 봐? 집을 아예 나가버릴까 봐?

때론 내편인지 남의 편인지 알쏭달쏭하기도 했지만, 일단 결심을 하고 떠나온 나의 빈자리 안에서 남편은 차츰 부엌살림을 하나씩 익혀가고 있다(고 한다). 밥하고 설거지야 기본이니 잘하고 시금치나물을 무쳤다고 아들이 톡을 보내왔다. 아빠가 시금치나물을 고추장으로도 무치고 소금으로도 무쳤단다. 오홋! 그게 시초였다. 그 뒤로는 감잣국도 끓이고 김치찌개도 끓이고 된장찌개도 끓인단다. 차차로 할 줄 아는 영역이 늘어난다는 건 좋은 신호다. 이번에 제주에 왔을 때 그랬다. '먹고살라니까~' 싱긋 웃으면서 농협마트에 가면 뭐든 반찬거리 한 두 가진 사 오게 된다고. 다른 사람들 만나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며 웃는다.


자랑스럽다. 반찬을 하는 건 오로지 나의 몫이었는데, 그가 최초로 직립인간이 된 것만큼이나 반갑고 놀랍고 경이롭다. 그는 차츰 나의 든든한 아군이 되어가고 있다. 함께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흰머리 성성해지고 푸르름이 사라졌어도 깊은 정과 믿음이 울타리뿐 아니라 튼튼한 다리가 되어 나를 버텨주고 있다. 고맙고 뿌듯하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내가 대단한 게 아니라, 나를 놓아준 그가 훌륭하다. 남들이 입을 모아 그렇게 말하고 있고 그 말은 사실이다.


내가 아끼고 정성 들여 가꾸던 꽃들도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사진을 찍어 보내주며 마음 기울이는 걸 보며 절로 마음이 따뜻해 온다. 살다 보면 깨질 것 같은 아슬한 순간들을 지난다. 아찔하게 헤어질 결심도 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 결심을 해체하기도 했으니 지금도 만나면 '폭삭 속았수다'의 관식이랑 애순이 같이 두 손을 꼭 잡고 다닌다. 그는 내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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