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카지노 게임 추천지옥에서 만난 이웃
어제 새벽녘, 자면서도 귓가에 속살거리는 빗소리를 들었다. 자장가처럼 감미롭다.
누군가는 소음이 괴로울 때 백색소음으로 빗소리를 듣기도 하잖은가?
내가 빗소리를 싫어한 적이 있던가? 어렸을 적 운동회 때도 운동을 좋아하지 않던 나는 비를 기다렸지만 김밥은 포기할 수 없었다. 소풍 때도 동당거리긴 했었지. 비 올까 봐 조마조마했고.
커서 빗소리는 늘 나를 꾀어내는 음악이어서 비만 오면 우산 쓰고 슬그머니 나가 문산행 시외버스를 타고 보광사라는 절로 향했다. 문산 가는 중간쯤에 있던 절을 향해 버스에서 내려서 터덜터덜 걷다가 절 추녀 끝에 서서 하염없이 독경소리를 듣다가 비에 조금씩 젖다 보면 나중엔 아예 우산을 접고 쫄딱 맞기도 했다. 비는 우울한 내 20대에 친구 같은 존재여서 비만 오면 나는 빗속을 서성거렸다.
제주에 와서 눈 오는 날이 많았고 겨울비도 여러 차례 겪었다. 여기 옛 이름이 수망리니 물 하고는 인연이 깊은 동네다. 그제와 어제는 오매불망 기다리던 고사리장맛비였다. 어제 빗소리는 고사리꾼이 다 되어 버린 우리 숙소 사람들에게 역시 쉬는 날이렸다. 나 역시 요샌 미친 듯이 꺽지 않는다. 배가 불렀다. 한 번 우리 농산물꾸러미를 받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보낼 양만큼은 얼추 되어가니 이제 천천히 산책하다 어쩔 수 없이 눈에 띄는 운 나쁜 놈들 조금씩만 끊어도 충분하다. (말은 이렇게 해 놓고 욕심이 도지면또 작정하고 뜯으러 가는 함정에 자주 퐁당한다.)
여기, 제주에 와서 1월 중순, 고사리 얘기를 수없이 사장님으로부터 들어도 실감 나지 않았건만 몇 달 사이 뭔 일이 있었던가? 사장님과 언니 동생 먹은 거부터 시작해 고사리 끊으러 다니면서부터는 산책은 끊고 고사리만 끊었다. 20여 일 중 보름은 다닌 거 같다. 이게 끊으면 끊을수록 선수가 되고 날이 따뜻해지자 자라는 속도가 장난 아니니 필사적으로 나오는 만큼 사람들도 깔맞춤으로 더 그악스레 필사적이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고사리지옥에 빠지고야 만다. 감귤 농사짓는 친구 어머니 말에 의하면 4월 10일이 기점이란다. 그전까지 고사리는 말하자면 ‘아아 마이크 테스트’ 정도다. 어르신들의 촉이 명확하다. 10일이 넘자 고사리가 쏟아져 나온다. ‘고사리 하나에 사람 하나’라는 말도 듣게 되고 덕분에 고사리 관련 어휘까지 배우게 된다. 고사리를 키우는 고사리비, 고사리장마철이 바야흐로 닥쳐 있고, 고사리를 따기 위한 장비발이 또 장난 아니다. 고사리가방이며 고사리앞치마, 차광막네 귀퉁이에바이어스를 대어 만든 고사리 펴 너는 깔개까지 수없는 정보를 듣고 나누고 배운다. 어르신들이 하고 다니는 앞치마는 육지에서 쌀농사 짓는 우리로 말하자면 왕겨 담는 가벼운 마대자루 비슷한 걸로 만든 것도 있다. 오래되었겠지만 요새는 장에서 아예 고사리앞치마를 파는데 디자인이 기가 막히다. 하나둘 고사리를 따기 시작해 처음엔 모르지만 점차 무거워지면 세상 버리고 가고 싶은 게 고사리일 정도로 무게가 느껴지기 때문에 소재가 최대한 가벼워야 한다. 가벼우면서 앞으로 갈 때 할퀴거나 잡아채는 찔레랑 멍개(청미래덩굴)처럼 가시로 뎀비는 녀석들한테 잘 찢기지 않아야 한다. 아주 얇은 갑바천이나 잘 찢어지지 않는 천으로 만드는데, 무게가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게끔 가운데를 갈라 주르륵 박고 아래에는 지퍼를 달았다. 묵직하게 따고 나면 가서 차에나 다른 부대에 담을때 지퍼만 열만 주르륵 아래로 쏟아지니손으로 일일이 한 주먹씩 꺼낼 필요가 없다.이거야말로 신박한 발명 아니겠는가? 특허품에 등재하고 싶을 만큼 상큼하다. 난 아직 정식 고사리꾼에 들지 않아요 특허 고사리앞치마는 없다. 장화는 요즘 슬슬 출몰하시는 뱀도 피해야 하고 가벼우면서 고사리밭에 수없이 깔린 찔레를 사뿐히 지르밟고 갈 수 있게 바닥이 튼튼해야 한다. 장갑과 모자도필수다. 겉옷으로 말하자면 가시에 쉽게 뜯기는 옷은 노노! 웬만하면 뜯기지 않고 가시가 옷을 질벅대다가도 지나가면 살짝 비껴 가시지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청기지나 긁히지 않는 천으로 된 걸 입어야 한다. 장비발은 여기서도 중요하다.
고사리 종류도 수없이 많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을 수 있는 종류는 줄기가 갈색 섞인 진녹색 먹고사리와 땄을 때 연녹색이지만 흰털이 많은 백고사리, 붉은빛이 도는 고비 정도다. 연초록을 띤 고사리는 연하디 연해 거의 뜯지 않는다. 고비는 굵기도 나무젓가락 뺨치게 굵은 데다 그 굵은 줄기를 밍크코드처럼 두툼한 털옷을 입고 에헴하고 나타난다. 여차한 추위도 까딱없게 털모자까지 단단히 뒤집어쓰고 올라온다. 어르신들에게 물어보면 이건 털을 벗겨버리라고 알려주시며 삶을 때도 쓴맛이 배니까 젤 나중에 따로 삶으라 알려주신다.
요런 꿀팁은 정말 유용하다. 안 그러면 고사리 전체에 쓴맛이 배지 않겠는가? 정말 그런지 끊은 다음에 혀에 대 보겠다는 한 친구가 있어, 아이고 참으세요, 말린다.
고사리는 끊어와 일반적으로 날씨가 좋으면 바로 삶아 너는데 너무 무르게 삶으면 물크러지니 모냥 빠져 나쁘다. 아랫부분이 살짝 휘어지는 정도가 좋고 중간에 한 번 뒤집어 주며 삶는다. 삶다 보면 바글바글 끌을 때 거무죽죽한 거품이 부글부글 인다. 이건 뜰채로 다 건져내는데 고사리 대가리에 붙었던 털이고 제법 수북하다. 이렇게 삶은 걸 사람들은 대체로 플라스틱 바구니에 쏟는데, 나는 좀 반대. 뜨거운 걸 바로 플라스틱에 냅다 부으면 그 환경호르몬 어쩔. 과정이 중요하지 않은가. 여기엔 커다란 스텐 바구니가 없으니 나는 뜰채와 집게로 건져 일단은 뜨거움을 견딜 만한용기에 건진 뒤 한 김 나가면 밖에 내 넌다. 제주 햇살과 바람은 운 좋으면 하루나 이틀이면 고사리를 바싹 말려주는 마법을 부린다. 그제와 어제처럼 고사리장마가 계속 되면 많이 하는 사람은 건조기를 쓰겠지만 우리는 잠시 냉장보관을 하거나 밖에 대기시켰다가 햇빛 예보가 있으면 이때다 싶어 바로 삶는다. 정 안 되면 삶아서 물기만 날린 뒤 냉동보관하는 수밖에. 근데 이건 냉동실 자리를 많이 차지하니 비추다.
우리 숙소에 한달 살기를 하며 고사리를 집중적으로 따는 이들이 몇 팀 있다보니 아침마다 따오면 커다란 냄비에 물부터 끓이며 고사리 삶느라 줄을 서야 한다.흐흠, 여기도 카지노 게임 추천맛집?!고사리를 삶아 건져 밖에다 너는 모습도 제각각이다. 나는 보통 식당 주변 시멘트 계단 참에 바로 펴 넌다. 이미 10여년 전에 지어진 건물이라 시멘트 독은 없다. 다른 이들도 근처 바닥에 깔개를 깔고 널기도 하고 소쿠리에 널기도 한다. 꼼꼼한 남자 덕구 2씨는 고사리가 하나라도 겹칠세라 일일이 한 개씩 펴 널고 어이구 허리야 한다. 누가 그리 꼼꼼하랬슈? 저 저 성격나온다 나와~ 하며 놀려 먹는다. 해가 반짝 나고 바람까지 찰지게 불어주면 이틀이면 바삭바삭하다. 반나절이면 벌써 그 통통하던 모습이 온데간데 없고 가냘갸냘해진다. 중간에 뒤집어 주면 더 잘 마르는 건 당연한 이치. 바람이 강하게 분다 하는 날은 얼른 중간쯤 말린 상태에서 소쿠리에 담아 돌로 꾹 눌러 놓아야 홀딱 뒤집어지거나 날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 알아서 고사리 품앗이로 뒤집어주기도 하고 비오면 누구 거 따지지 않고 비 맞지 않게 얼른 들여놓는다. 슬그머니 공동체가 되고 어느 틈에 이웃사촌이 되어 내남적 없어지니 냅두고 외출해도 걱정이 없다.
매일 그렇게 산다. 오늘도 햇살 고대하고 널었다가 빗방울 오락가락하는 통에 사람들 마음도 오락가락, 발길이 고사리 말리는 데서 떨어지질 못하고 서성였겠지. 나는 모처럼 살던 동네 홍동마을 친구가 오는 바람에 사려니숲길에 갔었는데 이웃 덕분에 역시 무탈했다.
그렇게 따고 말리고 고사리 얘기와 고사리육개장이며 고사리고등어찜을 먹고 고사리 이야기꽃을 피운다. 고사리가 없었음 무슨 이야기하고 살 뻔 했는가? 우리를 깔깔거리게 하고 이어주는 고사리가 너무 고마워 딸 때마다 고사리에게 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