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단발카지노 쿠폰 소녀
무슨 소리야? 이미 쓰고 있으면서...
국민학교 6학년 때 흑백사진이 한 장 남아 있다. 그동안은 늘 긴 머리를 아침마다 양갈래로 엄마나 언니가 따주었는데, 6학년 가을 들어 어느 날 엄마가 아침마다 머리 따 주는 게 힘들다며 미용실 가서 머릴 자르게 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기분이 그랬을까? 안 깎겠다고 버텼지만 따줄 카지노 쿠폰 힘들다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몇 달 후면 중학교에 들어가니까 미리 맛보기로 자르려고 하셨던가?
내키지 않았던 나는 궁리 끝에 안 잘라 보려고 혼자 거울을 보고 낑낑대며 머릴 땋아도 보았지만 어설픈 손으로 지푸라기 꼬면 나올만한 모양새였다. 도저히 탄탄하고 매끄러운 꼴이 나오질 않아 결국 머리칼 도살장 행. 집에 와서도 거울을 들여다보며 한참을 닭똥 같은 눈물 뚝뚝 흘렸지만 쉽게 단발카지노 쿠폰에 익숙해지진 않았다. 뻥 좀 보태면 라푼젤 비스무리한 나의 긴 머리칼은 마을을 오가거나 할 때 여자 어른들이 내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아유 숱도 참 탐스럽다’ 했기에 더 아까워했다. 앉으면 엉덩이에 집힐 정도였으니 길긴 길었다.
그런 단발카지노 쿠폰를 하고 안방 자개장 안에 앉아 있다. 당시 자개장이 유행이던 때였을 테고 엄마도 어렵사리 자개장을 하나 들였나 보다. 앉아서 책을 읽고 있던 나를 누가 찍어주었을까? 13살 차이 나던 언니나 큰오빠 둘 중 누군가가 찍어주었을 사진속 눈썹이 짙은 단발카지노 쿠폰 소녀. 흑백사진 속나는 고개를 수그리고 목까지 채운 카라가 있는 긴팔 면남방과 체크무늬 바지를 입고 무릎을 옆으로 눕힌 채 책에 빠져 있다. 분명 흑백이지만 나는 그 남방이 오렌지색이고 바지가 밝은 고동에 검은 체크무늬라는 것까지 기억난다. 하도 교복만큼 닳도록 입고 다녀서일까?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는 채 기억에 없다.
어렸을 적부터 엄마 아버지가 밥상카지노 쿠폰에서 자주 말다툼을 했기 때문에 어느 때부턴가 말수가 사라져 갔다. 나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안전한 책으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닥치는 대로 읽어댔다. 한국 단편 소설집은 물론이고 당시 흔하던 민음사, 정음사 등 작은 문고판 책들부터 박경리의 초기작품이며 토지에 이르기까지 중고등학교 다니면서 거진 다 훑었다. 아니, 빠져들었다는 표현이 맞다. 책이 나를 빨아들였는지 내가 책을 그랬는지 블랙홀처럼 빠져 들어간 책 속에서 길을 찾고 책 속에서 길을 잃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 책 숲을 헤매고 돌아다녔다. 박경리의 초기작품들은 어린 내가 봐도 어설펐지만 토지에 이르러서의 완성도는 어마무시했다. 대하소설가가 되는 꿈을 감히 품기도 했지만 토지를 다 읽고 책을 덮으면서 내 꿈도 같이 덮어버렸다. 읽는 걸로 충분했고 가닥 없는 꿈이었음을 알게 되었으니까.
중고등학교 때 시험 때마다 저녁밥을 먹고 나면 초저녁 7, 8시만 되어도 잠이 쏟아졌다. 다른 때보다 더 무거워진 눈꺼풀은 잠을 불렀고 맥없이 쓰러져 취한 듯 잠을 잤다. 그렇게 자다가 시험 끝나는 바로 그날부터 소설이고 뭐고 닥치는 대로 읽어 재끼며 날밤을 새곤 했다. 잠은 이때를 위해 저축해 둔 셈이었고 공부 못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시험 기간 내내 괴롭지만 즐거웠던 까닭은 요 관문만 치르면 바로 코앞에 책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때문. 내게 책은 말 앞의 당근, 토끼 앞에 던져주는 풀이었다. 시험이 끝나기만 해 봐라, 벼르며 시험 땡 치는 소리와 더불어 속에서 해방이다! 외치며 혼자 도서관을 향했다. 중학교 때는 사직공원 안에 있던 사직도서관이 내 단골 도서관이었다. 학교에서 걸어서 기껏해야 20여분(지금은 찾아봐도 성정여자중학교가 없으니 아마도 어느 결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가 보다.) 걸리는 거리였다. 나무 향기 그윽한 숲 속 도서관을 찾아가는 발길은 언제나 뿌듯했다. 공부보다는 책을 읽으러 가는 걸음이었다.
도서관에만 가면 코를 쿰쿰하게 찔러오는 묵은 책 냄새는 향기로웠고 책 등과 날개를 보며 스치는 인연은 바람을 잡아다 주저앉히듯 나를 정박케 하는 배였다. 책 인연 속에 나는 차츰 자라났다. 엄마 아버지의 밥상카지노 쿠폰 싸움이 짙어질수록 나는 입을 다물고 눈을 책에 박곤 했으니까. 말수 없이 반항하고 ‘싫어’를 좋아하며 부모들과 멀어졌다.
쓰지는 못하나 허기진 쓰기를 읽기로 때우는 헤엄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