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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Mar 24. 2025

페트라솁스키 사건 진술조서

도스토옙스키의 해명 : 「벨린스키와 고골의 왕복서한」을 낭독한 죄

[페트라솁스키 사건 진술조서]
by 도스토옙스키
-이병주의 책 『허망과 진실』¹ 에서 발췌.
루이 필립 왕을 폐위시킨 프랑스의 2월 혁명은 러시아 황실을 긴장시켰다. 황제 니콜라이 1세는 정권 유지를 위해 감시와 검열을 강화했다. 심지어 위험한 서구 사상의 유입을 막기 위해 대학의 철학 과목을 폐강하고 심리학, 논리학, 심리학은 신학과로 강제 통합하는 무리수를 뒀다.

이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페트라솁스키 서클 사건이 일어났다. 페트라솁스키는 페테르부르크 대학 법대를 졸업하고 외무부(外務部)에서 통번역을 하던 관리였다. 프랑스식 사회주의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몇몇 지인들을 집에 불러 토론하는 모임을 매주 열었다. 당시 스물여덟 살의 소설가 도스토옙스키도 이 서클의 일원이었다.

1849년 4월 23일 새벽 도스토옙스키는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다. 페트라솁스키 사건에 연루됐다는 혐의였다. 당시 서유럽의 새로운 사조에 고취된 젊은이들이 모임을 만들어 공상적 사회주의에 대해 토론하고 전제정치를 비판한 것을 누군가 밀고한 것이다. 도스토옙스키가 받은 혐의는 이 모임에서 불온한 편지인 「벨린스키와 고골의 왕복 서한」⁹을 낭독했다는 것이다.
카지노 게임청년 도스토옙스키
진술조서

나(도스토옙스키)는 카지노 게임에 관해서, 또 그의 집에 금요일마다 드나든 사람들에 관해서 모든 것을 쓰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최초 신문을 곁들여 생각한 결과 나는 다음의 사항에 관해 명확한 답을 하라는 것으로 결론짓는다.


1. 일반적 인간으로서 또는 정치적 인간으로서 카지노 게임가 어떤 인간이냐는 점.

2. 내가 고발한 그 집의 모임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가. 그 모임에 관한 나의 견해.

3. 카지노 게임 모임엔 무슨 비밀 목적이 있었던가. 카지노 게임는 유해(有害)한 인간인가. 또 사회에 대해서 그는 어느 정도로 유해한가.


금요일마다 나는 그의 집을 찾았고 그도 종종 내 집을 찾는 일이 있곤 했지만, 나와 그는 극히 친한 사이라곤 할 수 없다. 내가 그의 집에 자주 드나든 것은 거기에 가면 서로 잘 알기는 하지만 만날 기회가 없는 그런 친구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를 만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카지노 게임를 항상 성실하고 고심(高深)한² 인간으로서 항상 존경해왔다.


그가 특이한 사람이란 것은 그를 알고 있는 모두가 말하고 있는 그대로다. 카지노 게임는 분별력보다 지성이 뛰어나다는 말을 나는 종종 들었다. 그런 그의 기벽(奇癖)을 설명하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항상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대단한 독서가여서, 특히 푸리에³의 이론 체계에 관해선 세부에 이르기까지 통달하고 있었다.


이상이 그에 관해서 내가 아는 전부라고 할 수가 있다. 그의 성격을 안다고 하기엔 나는 너무나 부족한 자료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되풀이하거니와 나와 그는 친밀한 사이가 아니다.


정치적 인간카지노 게임 보았을 때 나는 그가 일정한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할 수 없다. 내가 그에 대해 인정한 것은 하나의 이론 체계에 대한 일관성이다. 그것도 자기의 이론 체계가 아니고 푸리에의 그것이다. 그러나 그는 푸리에의 이론 체계를 그대로 우리나라의 사회생활에 적용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보진 않는다. 이 점만은 단언할 수가 있다.


그의 집에 금요일마다 모이는 사람들은 거의 전부가 그의 친구였다. 가끔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긴 했지만 그건 드문 예에 속한다. 거기선 갖가지 의견이 나오기도 했는데 나는 한 번도 의견의 일치가 있었던 것을 본 적이 없다. 카지노 게임의 모임엔 어떠한 의견의 일치도, 하나의 경향도, 항차 공통 목적 같은 것도 없었다. 어느 문제를 두고 세 사람 이상이 같은 의견을 갖는 예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항상 토론이 치열했고 견해의 대립이 있었다. 나도 이러한 토론에 종종 참여했다.

카지노 게임벨린스키

그러나 무슨 까닭으로 그러한 토론이 생기고, 그 토론에 내가 참여했는가를 말하기 전에, 나의 죄상으로 되어있는 사실에 대해서 몇 마디 하고자 한다. 나의 죄상은 페트라솁스키의 집에서 토론에 참여하여 자유주의적인 발언을 하고 문학 논문 「벨린스키와 고골의 왕복 서한」을 읽었다는 것으로 되어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자유주의, 또한 리버럴리스트란 말을 정의하는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냐. 법에 반대하는 주장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 "머리가 아프다"라고 한 소리를 위법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못할 소리가 없게 지껄이는 사람들도 보아왔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내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는가. 내가 페트라솁스키의 집에서 얘길 한 건 꼭 세 번이었다.


두 번은 문학에 관한 얘기였고 한 번은 개인의 에고이즘에 관한 얘기였다. 내 말 가운데 정치적인 내용이 있었는지, 자유주의적인 것이 있었는지는 지금 기억할 순 없다. 그러나 나에 대한 비난이, 어쩌다 귀에 담은 조각조각의 말을 종이쪽지에 적어놓은 밀고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전후의 관계를 생각지도 않고, 어떠한 의도로 누구를 상대로 말한 것인지도 개의치도 않고, 남의 말을 훔쳐 듣고 조각조각의 말을 임의대로 엮어 그것을 토대로 남을 비난하려는 노릇처럼 위험한 짓은 없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알고 있으므로 그따위 비난 같은 것은 겁내지 않는다.


가령, 보다 나은 것을 바라는 마음이 자유주의라고 한다면 그런 뜻카지노 게임서 나는 자유주의자다. 조국에 대한 사랑을 지니고 아직 한 번도 조국에 대해 죄를 지은 적이 없다는 자각을 마음속에서 발견한 까닭에, 나에게 시민의 권리가 있고 조국에 대해 선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면 누구나 자유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다는 똑같은 의미로 나는 자유주의자다.


내가 미움과 분노를 자아내어 폭력적, 혁명적 변화를 바라고 있었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 있다면 제시해 봐라. 그러나 나는 그런 죄 따위를 겁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어떤 밀고도 나에게서 무엇 하나 빼앗을 수 없고 보탤 수도 없기 때문이다. 어떠한 밀고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다른 나로 바꿀 순 없다.


다른 사람이 침묵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런 화제에 관해 내가 말했다고 해서 그것이 나의 자유주의를 증명한단 말인가. 나는 이러한 사고방식이야말로 정부를 모욕하는 것카지노 게임 생각하고 분함을 금할 수가 없다. 왜 바르게 살고 바르게 행동하려는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을 겁내야 하며, 그 때문에 자기의 입장을 걱정해야 하는가. 법이 개인을 보호하지 않기 때문에, 한마디 오해를 받는 말로써 패가망신할 수도 있으므로 이런 결과가 있게 된 것이 아닌가.


나는 모든 사람이 정부에 대해서 솔직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언제나 나는 슬픈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이지만 우리는 왠지 본능적으로 무엇인가를 겁내고 있다. 공공(公共)의 장소에 모이기만 하면 서로를 불신하는 눈초리로 보고 괜히 주변을 살피곤 한다. 어쩌다 정치 얘기를 꺼낼 때면 공화제 같은 건 그 인간의 사상으로선 프랑스보다도 먼 곳에 있는 화제인데도 불구하고 반드시 소리를 낮추어 비밀스럽게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필요 이상의 침묵과 공포는 우리들의 생활을 어둡게 칠한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가 정부를 신경질적으로 만들고 거꾸로 민중을 불안하게 하는 작용으로 이어진다.


한 자락의 바람에 흔들리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무의식의 신념보다는 의식적인 신념이 훌륭하고 튼튼하다는 것을 나는 믿어왔다. 그런데 침묵하고 있어선 의식이 형성될 까닭도 없고 생명을 가질 수도 없다.


부득이 사람과의 교류를 피해 소그룹카지노 게임 세분화하든지 고독 속에서 무감동한 존재로 굳어버리든지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태는 누구의 죄인가. 우리 자신의 죄다.


나는 항상 이렇게 생각해왔다.


나 자신은 열변가(熱變家)가 아니다. 나는 극히 적은 수가 모인 자리에서도 오래 얘기하길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친구는 극히 적다. 내 시간의 반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 때문에 쓰인다. 나머지 반은 병든 지 3년이나 되는 우울증의 발작카지노 게임 채워진다. 독서할 시간, 세상일을 알기 위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세상 일반의 관례라고 할 수 있는 침묵과 도회(蹈晦)⁴의 방식을 어기고 무엇인가를 썼든가, 말했든가 했으면 그것은 나 자신을 지킬 목적카지노 게임서가 아니라 나의 신념을 토로할 목적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도대체 나는 무슨 까닭카지노 게임 무엇에 대해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일까. 정치에 관해서 서구에 관해서 검열에 관해서 내가 한 말이 못마땅하다는 얘길까. 그런데 오늘날 그러한 문제를 두고 말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일까. 만일 내게 나 개인적인 의견을 말할 권리가 없고, 그 자체가 권위가 되어있는 듯한 의견에 반대하는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하면, 도대체 나는 무엇 때문에 배우고 학문에 의한 지식욕을 소중히 하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우리나라의 검열이 지금에 와서 무법할 정도로 가혹하다고 말하기도 했고 한탄도 했다. 그 까닭은 이러한 검열 때문에 엉뚱한 오해가 생겨 그것이 문학에 있어서 아주 곤란한 무질서의 원인이 되어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현대에 있어서 작가의 사명은 부당한 혐의로 인해 손상을 받고 있다. 검열자는 작가가 무엇을 쓰기도 전에 당연한 정부의 적(敵)처럼 작가를 취급하고 노골적인 편견카지노 게임 원고를 분석하려고 든다. 이런 일이 나는 슬펐다. 내용에 아무런 나쁜 점도 없는데 작품의 결말이 비극적이란 바로 그 점만카지노 게임 어떤 작품의 발표를 금지했다는 소식을 듣는 것은 내게 있어선 너무나 슬펐다. 내가 이미 쓴 작품을 검토해 보라. 그것이 검열에 제출되기 전의 원고를 보라. 도덕과 질서에 반한 말이 단 한 단어라도 있었으면 그걸 지적해 주기 바란다. 그런데 나는 너무나 어두운 색채로 정경을 묘사했다는 이유로 작품 발표를 금지당한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발표가 금지된 작품의 저자가 얼마나 암담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가는 아마 상상도 못 할 것이다. 그 작가는 실업(失業)보다 더 나쁜 상태에 석 달 동안이나 놓이게 된다. 그러나 먹고살아야 하니까 궁핍과 슬픔과 절망 속에서 밝고 아름다운 장밋빛 빛깔로 새로운 문학 작품을 쓸 시간을 억지로 만들어내야만 한다. 이런 소릴 한다고 해서 내가 위험 사상의 소유자인가.


문학은 아무리 얕잡아도 국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이러한 긴장된 정황 속에서 문학이 존속하기란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이 말살될 지경에 있다. 현재와 같은 검열 하에선 그리보예도프도⁵, 폰비진⁶도, 푸슈킨 같은 작가도 존재할 수 없게 된다.


문학이 조소하는 건 악덕이다. 특히 선의 가면을 쓴 악이다. 그런데 현재 조소가 가능한가? 검열관은 기를 쓰고 작가가 특정한 인물, 또는 질서를 빈정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살펴 댄다. 그들은 무해(無害)한 문장 속에서까지 어떤 악의를 찾아내려고 한다. 그리고는 있지도 않은 위험 사상을 상상으로 만들어내서는 한 작가의 고심한 결과인 작품을 그의 환각과 더불어 매장해 버린다. 악덕과 인생의 어두운 면을 은폐함으로써 악덕과 인생의 어두운 면의 존재를 독자의 눈으로부터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밝은 빛깔만카지노 게임는
그림이 되지 않는다.

작가란 어두운 면까지를 제시하고 자신이 독자에 대해 불성실하지 않도록 조심할 뿐이다.


밝은 빛깔만카지노 게임는 그림이 되지 않는다. 어두운 면 없인 밝은 면이 나타날 까닭이 없다. 빛과 그늘이 혼재되어 있지 않은 그림이 있겠는가. 덕과 선만을 그리라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악덕이 없으면 선은 없다. 선악은 동거하고 있는 게 보통이다. 나는 악덕과 인생의 어두운 면만으로 묘사하는 것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의 가능성을 얘기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문학과 검열 사이에 오해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오해는 하루바삐 해소되어야 한다는 얘길 친구들 사이에서 했다. 이것이 위험한 사상의 소유자란 증거가 될 수 있는가.


나는 페트라솁스키의 모임에서 「벨린스키와 고골의 왕복서한」을 읽었다고 해서 비난받고 있다. 그 사실이 내가 저지른 죄상 가운데 끼어있다.


나는 그 편지를 읽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문학적 기념비로서 읽은 것이지 청중을 유혹할 목적으로 읽은 것은 아니다. 문학에 대한 깊은 조예(造詣)로써 씌어진 논문으로 해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는, 그리고 이미 작고한 걸출한 인물에 대한 존경심으로 나는 일체의 평론을 섞지 않고, 그 왕복 서한의 전문을 읽은 것이다. 폐트라솁스키의 집에 모이는 사람들 사이엔 사상의 경향에 있어서 일치점이 전연 없었다는 것은 이미 말한 그대로이다.


그 모임에 무슨 비밀의 목적이 있지 않았냐, 라는 질문에 대해선 그 의론백출(議論百出)의 상태, 갖가지의 개념, 개성이 혼란스럽게 뒤섞인 상태를 설명함카지노 게임써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 한다. 나는 그 혼돈 상태 속에 무슨 비밀 목적이 있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오해가 아니란 자신도 있다.


드디어 최후의 질문에 답할 차례가 되었다. 카지노 게임는 해로운 인물인가. 유해했다면 사회에 대해서 어느 정도로 유해했는가의 질문이다.


첫째 카지노 게임를 해로운 인물이라고 할 땐 그가 푸리에주의자이기 때문에 유해하다고 하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나는 해석한다.


카지노 게임셰프스키가 푸리에의 이론 체계를 존중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푸리에주의자로서 그가 사람들의 공명을 바라지 않았을 까닭은 없다.


그러나 그가 자기 사상을 보급하기 위해 추종자를 만드는 등 노력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나는 그런 일은 전연 모른다고 할밖에 없다. 그는 학교의 교사를 모임에 끌어들여 그들을 통해서 푸리에주의를 보급하려고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이것 역시 모른다고 할밖에는 없다. 그의 지인 가운데 토오리라고 하는 교사가 있었다고 최근에 들었지만 토오리에 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또 야스트로 젬프스키란 교사가 있었지만, 그가 교사라는 것을 안 것은 그로부터 정치 경제에 관한 얘기를 들었을 때였다. 이밖엔 카지노 게임의 지인 가운데 교사가 있었다는 소린 듣지 못했다. 내가 판단하건대 야스트로젬프스키는 최신학파의 순수한 경제학자이며 엄격한 경제학 교수들이 인정하고 있는 정도로 사회주의를 인정하고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회주의는 나름대로 비판적 연구와 통계 부문에 의해 많은 학문적 이익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야스트로젬프스키는 푸리에주의자가 아니었고, 따라서 카지노 게임에게 새삼스럽게 배울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푸리에주의를 그가 보급했느냐 하는 문제는 추측을 통해서밖엔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러니 추측으로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신문관(訊問官)으로부터 그때까지 그 존재조차 몰랐던 원고를 제시받았다. 그 일절엔 푸리에주의의 승리를 열렬하게 희망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만일 원고 전체가 전부 그런 내용이고 그것을 페트라솁스키가 쓴 것이라면 당연히 그는 사상의 보급을 히망하고 있었던 것으로 된다. 그러나 그가 실제적으로 무슨 수단을 강구하고 있었던가 하는 문제에 관해선 아연 나는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의 비밀을 모른다. 나와 카지노 게임가 친밀한 사이라는 것을 증언하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내가 그를 금요일마다 방문한 지인의 하나로서였지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그의 계획도 모르고 그 원고를 본 것도 처음이고 그 내용도 아까 들먹인 그 일절 이외엔 전연 아는 바가 없다. 그러니 그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무슨 수단을 강구하고 있었는가에 관해선 전혀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나 자신의 판단을 말해보겠다. 이 판단은 내 확신에 바탕을 둔 것이며, 깊은 생각 끝에 이루어진 것이다. 결국, 이러한 판단 때문에 카지노 게임의 죄상에 관한 최초의 심문엔 확실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책이라든가 원고 또는 단편적으로 기록된 대화라든가 하는 증거물은 카지노 게임를 재판하는 사람의 눈엔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나는 안다. 그러나 나는 카지노 게임에 관해 질문을 받은 이상 이 사건 전체에 대한 나의 견해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와 벨린스키는 한때 아주 친한 사이였다. 그는 인간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그러나 그를 무덤으로 끌고 간 병이 그의 내부의 인간까지 왜곡해버렸다. 병은 그의 마음을 황폐화하고 냉혹하게 하고 마음에 분노를 쏟아 넣었다. 긴장된 채 혼란을 일으킨 그의 상상력은 모든 것을 거대한 규모로 과장하고 그에게만 보이는 사물을 보이게 했다. 건강할 때 흔적조차 없었던 결점과 단점이 갑자기 나타났다.


극도로 신경질적이 되기도 하고 터무니없는 자존심을 부리기도 했다. 그가 동인으로 되어있던 잡지의 편집인들은 그에게 중요한 문제를 다룬 논문을 쓰지 못하도록 제동을 걸기조차 했다. 이러한 상태에서 그는 고골에게 편지를 쓴 것이다. 나와 벨린스키와의 결렬은 이미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다. 불화의 원인은 문학의 방법에 대한 의견의 대립이었다. 나는 그가 문학의 본질과는 어긋난 사명을 주장하는 점을 공격했다.


그는 문학을 산문 기사적인 사실과 스캔들적인 사실의 묘사로 끌어내리려고 했다. 나는 분노만으로는 사람을 설득하지 못한다는 것과 길 가는 사람을 붙들어 세워 아무리 설법을 해보았자 모멸만을 살 뿐, 보람이 없을 것이라고 논박했다. 벨린스키는 성을 냈다. 때문에, 우리는 그가 죽기 1년 전엔 서로 얼굴을 대하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고골과의 왕복 서한은 내 눈으로 보면 기막힌 문학적 기념비였다.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는 푸리에를 믿고 있다. 푸리에주의는 평화적인 이론의 체계다. 그것은 그 우아함으로 사람의 마음을 매료하고 인류애로 사람을 자극한다.


푸리에주의는 정치적 개혁을 의도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경제적인 개혁이다.

그리고 그 인류애는 푸리에가 자기의 이론 체계를 엮어내어 그 정연한 조화로 사람들의 지성을 감탄시켰을 때 그의 마음에 정열의 불길로 화한 것이다. 그것은 노여움에 찬 공격에 의해서가 아니고, 인류에 대한 애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이론 체계엔 증오란 없다. 푸리에주의는 정치적 개혁을 의도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경제적인 개혁이다. 그리고 그 개혁의 의도는 정부에 대해서도, 사유재산에 대해서도 위험한 건 아니다.


프랑스의회의 최근의 회의에서 푸리에주의자의 대표자인 빅토르 콘시데랑⁷은 푸리에주의가 족벌, 문벌에 대해 추호도 위험스러운 점이 없다는 것을 당당하게 주장했다. 결국, 푸리에주의는 탁상의 이론 체계에 불과한 것이지 결코 대중적인 것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저 2월 혁명의 변혁기에서도 푸리에주의자는 한 번도 가드에 나온 적이 없고 이미 20년 동안 팔랑지(공동생활촌)³의 미래를 꿈꾸며 시간을 소비해 왔던 그들의 잡지 팔랑지의 편집부 내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이 이론 체계는 모든 이론이 위험하다는 뜻카지노 게임선 위험하다.


그리고 이 이론 체계는 그것이 제아무리 세련되어 있건 실현 불가능한 유토피아 사상에 불과하다. 이 유토피아 사상에 무슨 해독이 있다면 그것은 공포의 대상이라기보다 희극적인 것이다. 서구에 있어선 푸리에의 이론 체계처럼 놀림감이 되고 조소의 대상이 된 사회사상은 달리 없다. 아득한 옛날 그 사상은 이미 생명을 잃고 있었는데 그 지도자들은 살아 있는 시체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란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 특히 프랑스에선 지금 이 순간 모든 이론 체계가 위험한 것으로 되어있다. 굶주린 프롤레타리아가 절망적으로 설치며 어떤 사상이라도 그것을 수단으로 해서 반란의 깃발을 만들려 하는 정세이다. 그 땅은 지금 극한의 순간에 있다. 굶주림이 사람들을 가두로 내모는 것이다. 그런데도 푸리에주의는 깨끗이 무시를 당하고 있는 형편이며, 우열하기 짝이 없는 카베⁸의 유토피아 사상조차 푸리에주의 이상의 공감을 얻고 있는 정도이다.


우리 러시아, 특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사정을 말하면 거리를 20보만 걸어도 푸리에주의가 우리들의 토양 속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책 속에나, 세상 모르는 몽상 속에나, 24편으로 된 서사시 같은 시 속에나 끼어있을 정도라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다. 푸리에주의가 심각한 해독을 초래할 까닭이 없다. 첫째 그것의 보급 자체가 유토피아에 속하는 일이 된다. 왜냐하면, 믿기 어려울 만큼 그 사상이 유장한 까닭이다. 푸리에주의는 완전한 하나의 학문이어서 그것을 이해하려면 철저한 연구가 필요하고 그렇게 하려면 열 권 이상의 책을 독파해야 한다.


이러한 이론 체계가 언제 일반적인 것으로 될 수 있을까. 교사들을 통해 교단에서 보급할 수 있는단 말인가? 그것은 푸리에의 학설 규모로 봐서 우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되풀이하거니와 내 생각으론 푸리에의 이론 체계가 무언가에 해독이 될 까닭도 없고, 설령 해독이 된다고 하면 그런 사상을 가진 자기 자신에 대해서 뿐일 것으로 안다. 이건 또한 양식이 있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견해이기도 하다.


내가 그것을 최고의 희극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상이 아무런 보람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푸리에주의를 비롯한 서구의 이론 체계는 우리나라의 토양에는 맞지 않고 우리 민족의 성격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서구의 사상이란 결국 그러한 정도의 것이며 프롤레타리아의 문제와 어느 정도의 대응 관계를 맺고 있을 뿐이다. 프롤레타리아가 존재하지 않는 현재의 우리나라로서는 푸리에주의의 필연성이나 그 영향력은 말할 나위조차 없이 미소한 것이며 희극적인 의미 이상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카지노 게임는 내가 짐작하기로는 현명한 사람이다. 그런 현명한 사람이 이와 같은 사정을 모를 까닭이 없으니 나는 카지노 게임를 서재 안에서만 푸리에를 존경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카지노 게임가 어느 정도 이상으로 푸리에주의자였다고는 결코 생각할 수가 없다. 만일 그렇지 않았더라도 나는 그를 불행하긴 하지만 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에선 근 1년간 거의 모든 이론 체계가 차례로 붕괴했다. 간단한 실험적 사건에 부딪히자마자 제풀에 넘어져 버린 것이다. 이것은 또한 무른 이론 체계라는 것이 지닌 본연적인 취약성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사정을 종합해서 생각하면 카지노 게임가 어떠한 조소라도 감수하면서까지 설혹 그가 푸리에주의를 선전 보급하기에 애썼다고 해도(그럴 리는 만무하지만) 그가 해로운 인간이라거나 해로운 짓을 했다거나 하는 말을 나는 할 수가 없다. 첫째 푸리에주의를 선전한 카지노 게임가 어째서 나쁘단 말인가 그것이 어떻게 위험하단 말인가.


이런 판단은 나의 이해를 넘는다. 카지노 게임가 정녕 푸리에주의의 선전을 했다고 해도 비록 그것은 희극적인 일은 될망정 해로운 짓, 위험한 행동이 되지는 않는다. 나는 그의 해독을 결단코 믿지 않는다. 믿을 수가 없다.


이상이 내게 주어진 질문에 대한 나의 양심적인 대답의 전부다. 그러나 마지막카지노 게임 내 마음에 하나의 판단이 생겨났기 때문에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오래전부터 카지노 게임가 모종의 자존심에 사로잡혀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 자존심 때문에 그는 금요일마다 자택에 사람을 모았고, 그 자존심 때문에 그 모임을 지속해 왔다. 그리고 그 자존심으로 해서 그는 많은 양의 장서를 갖고 있었고, 진귀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친구들이 알아주는 것을 흡족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나의 관찰과 추측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은 아니다. 되풀이하거니와 카지노 게임에 관해서 내가 알고 있는 바는 충분한 것도, 완전한 것도 아니다. 내 견문에 바탕을 둔 추측일 뿐이다.


이상이 나의 답변이다. 나는 진실을 전했다.

-도스토옙스키

카지노 게임와 도스토예프스키는 사형 직전에 황제의 사면령으로 목숨을 건졌다. 이는 그들을 겁주려고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연극이긴 했지만, 도스토옙스키에게는 죽음에 대해 5분간 맛본 극한의 경험이었다.

이후 카지노 게임는 험한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노역형으로 고생을 하다 1866년 12월 8일 마흔다섯의 나이에 급사했다. 그는 도스토옙스키라는 전도유망한 작가의 앞날을 걱정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래서였을까, 도스토옙스키는 페트라옙스키보다 15년을 더 살면서 위대한 작품들을 남겼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의 일생은 가난과 병마 때문에 불행한 삶이었다.

[옮긴이 註]

1) 시대를 초월한 동서양 최고의 지성, 그들이 남긴 살아 있는 고전의 향기와 삶의 진실을 꿰뚫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저자 이병주가 만난 서양 지성 3인, 즉 알퐁스 도데·표도르 도스토옙스키·프리드리히 니체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따뜻한 프로방스의 서정과 아름답고 소박한 향수의 미학을 알려주는 알퐁스 도데와 시대의 고뇌와 인간 내면의 깊은 천착카지노 게임 근대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은 비극적 천재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신과 전통에 맞서, 유럽 근대 문명의 폭력성과 그 빈곤함을 질타한 생의 철학, 실존주의의 선구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세계를 자세히 살피고 있는 이 책은 시대를 초월하여 영원한 고전카지노 게임 살아 있는 세계 지성들의 작품과 삶에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하며 이름난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넓은 눈카지노 게임 조망할 수 있게 도와준다.


2) 고심(高深) : (학문·기술의 조예가) 수준이 높고 깊다.


3) 프랑수아 마리 샤를 푸리에(François Marie Charles Fourier, 1772년~1837년)는 19세기 초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자이다. 급진 자코뱅의 사상을 이어받은 그는 급진적 사회주의의 이념과 초기 프랑스 유물론에 근거한 사회주의 이론 저작물을 내놓았는데, 1837년에 페미니즘(feminism)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철학자로도 유명하다.1837년 샤를 푸리에는 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로 보는 팔랑스테르(phalanstery)에서 전통 가정을 비웃고 광란의 그룹 섹스 파티를 벌여야 인류의 내재적 욕망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사랑과 열정적 매력을 여성의 여성해방론에 의해서 성을 공유해야 하며, 성 학대, 근친상간, 심지어 수간을 포함해 그 어떤 형식의 성만족 이든 모두 허락해야 한다는 엽기적인 주장까지 펼치기도 하였다.


유복한 모직물 상인의 외아들로 프랑스 동부의 브장송에서 출생하였다. 1791년 19세 때 리옹의 어떤 상사(商社)의 외무사원이 되었다. 1793년 부친의 유산카지노 게임 리옹에서 상사를 차렸으나 프랑스 혁명의 소동카지노 게임 상품을 징발당하여 파산한다. 그 후에도 사용인카지노 게임서 상업 실무에 관계하거나 중매인이 된다든가 하여 상업 투기의 기만성을 체험한다. 이 체험에서 사적 소유에 기초를 둔 상업의 무정부성이 그의 자본주의 비판의 요점이 되었다. 1808년에 〈4운동의 이론〉을 발표하였고, 또 1822년 간행한 주저 〈농업가족집단〉(개정 증보판 〈보편적 통일의 이론〉1834년), 기타 저서와 논문카지노 게임 집단 소유에 입각한 팔랑쥬(Phalanstère)라는 명칭의 공동조합 제도를 구상하였다.


사상


공산촌

샤를 푸리에는 우애와 협동에 기반을 둔 사회주의야말로 사회적 성공에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팔랑쥬(Phalanstère)라는 공산촌 계획을 수립하여 노동생산성과 경제적 평등성을 모두 달성할 수 있는 거대한 집산주의 체계를 구축하려고 하였다. 그는 작업지에 원통형 또는 사각 고리 형태의 아파트를 지은 다음, 모든 사람이 평균 이상의 주거 수준을 누릴 수 있게 한 동시에, 생산성 상승을 꾀하기 위하여, 생산성이 제일 낮다고 평가되는 노동자는 1층, 제일 높다고 판단되는 노동자를 제일 위의 층에서 거주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일자리는 각 개인의 희망에 따라 분배하는 동시에, 의무로 지정된 하루 근로 시간은 6시간이며, 일주일 중 하루는 쉬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재화의 경우는, 모두에게 기초적인 재화를 분배하되, 생산성에 따른 약간의 차등을 둔다. 이것 외에도 육아를 위한 탁아소, 그리고 정신적 안정을 위한 건전한 오락을 제공하는 사회복지시설, 교육 시설, 의료 시설, 공동 식당 등을 두어야 하며, 인류애를 증가시키기 위한 이성(logos)의 제단을 만들어서 의무적으로 참여케 해야 함을 설파했다.


근대적 문명 비판

그는 사회적 병리 현상의 주요 원인을 문명의 물질적 발전에 따른 상업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분석하였다. 이 당시 자본주의라는 표현은 없었지만, 그가 비판하는 상업화란 현대의 자본주의와 유사하다. 그는 전방위적인 상업화가 과거 중세 몽매 시기보다 훨씬 높은 생산성을 구축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인간의 정신을 크게 타락시켜 '최고 존재로서의 신'(우주 만물의 이성)에 대한 추구성을 파괴했다고 하였다. 그는 그 자신이 유물론자였으나, 인간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최고의 원리에 기반을 둔 삶, 즉, 정신에서의 고귀함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아동 교육론

그는 아동의 잠재성을 관통했던 교육철학자 중 한 명이었다. 아동을 '어리석고 시끄럽기만 한 존재'라고 치부했던 근대 문명 교육제도의 선구자들을 비판했으며, 오히려 어린 시기에 들어서는 교육 효과가 성인과 비교하면 훨씬 높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아동들의 흥미를 유도하여 그들의 혼재 속성을 파악하는 교육론을 제시하였으며, 아동이 가진 속성을 약 다섯 가지로 요약하였다.


1. 모든 것을 조사하고, 해결하려고 하며,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

2. 모방 본능

3. 산업 및 노동작업 적카지노 게임, 역동적인 형태를 추구

4. 산업 및 노동작업적카지노 게임, 축소된 형태를 추구

5. 연약함 뒤에 숨어있는 강력한 발전성


그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천부적카지노 게임 자신의 속성을 평화롭고 조화로운 방식카지노 게임 추구하고 간직하려는 선함의 특성을 가진다고 봤으며, 사회의 야만성에 함몰되어 결국 성인에 이르게 되면 대부분이 타락한 인간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는 혼란과 무질서, 향락성을 절제하면 인간이 더욱더 자신의 천부성을 조화롭게 이어나갈 수 있다는 관점을 갖고 있었다.


여성 인권

당시 대다수 급진주의자는 장 자크 루소의 낭만주의에 빠져있었기에 여성은 남성의 아래라는 의식에 있어서 보수주의자들과 별 차이를 보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샤를 푸리에는 루소의 낭만주의를 비판했다. 동시에, "(성별로 차별을 가하는 주장들)이 주장은 곧 인류의 반에 해당하는 인간의 욕구를 극도로 억압하자는 것인데, 이러한 주장을 일삼는 자들은 인류애적 가치를 훼손하는 자들이다."라는 주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성도 남성과 다른 바가 없는 인간이며, 일부 비본질적 차이만 존재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여성도 역시 옴니커크가 될 수 있으며, 남자와 비슷한 재산권과 교육권을 획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당시 여성의 욕망(물욕 및 성욕)을 억압하고, 그것을 남성만이 차지할 수 있다는 류(類)의 차별주의자들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을 전개하였다. 그의 여성해방론은 주로 여성이 갖는 욕구를 억압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카지노 게임 전개되었다.


인간론

그의 윤리학에 관련된 저서인 〈4운동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810가지의 고정적인 긍정의 개인성을 갖고 있으며, 이에 대항하는 부정의 개인성도 810가지가 존재한다고 봤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1,620가지 유형의 성격이 혼재된 상태로 살아갈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이러한 1,620가지 속성의 혼재 비중이 자기와 같은 사람과 사랑을 나눌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이는 사랑뿐만이 아닌, 노동에 대한 선호도 또한 포함된다. 그는 노동도 또한 이 1,620가지의 속성에 맞게 갖춰져야 한다고 했으며, 이러한 것이 완벽하게 이뤄진 600만 명 단위의 사회의 단위 지도자를 옴니커크(omniarch)라고 칭하였다. 그는 동성애도 역시 1,620가지 유형의 혼재된 양상 중 하나에 속하기 때문에 특별히 취급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당시 기독교적 사고관이 팽배했던 시대에서 상당히 급진적인 발언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다양한 속성들도 결국 단 하나의 본질에 의해 파생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인간인 이상 행복이란, 이러한 속성을 추구하는 데에 있다고 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의 본질에 일원화시키는 방향보단, 그것이 하나의 본질에 근거한 자연원리에 맞게 운용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그가 바뤼흐 스피노자 이후의 코나투스 개념에 영향을 받았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한계

그의 공산촌 계획은 어디까지나 각성한 부르주아의 선심에 의존한 것이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으로 말미암아 그는 노동자 또는 빈곤층들의 정치세력화와 혁명 전술에 대한 체계적인 고찰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소시아시옹 논쟁

샤를 푸리에의 공산촌 개념은 반체제 언론인이었던 빌헬름 슐츠의 《국가사전》을 통하여 유럽 각지로 퍼지게 되었다. 이 개념은 수많은 사회주의자 사이에서 논란을 일으켰는데, 대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피에르조제프 프루동과 카를 마르크스의 '아소시아시옹 논쟁'이다.


피에르조제프 프루동은 1842년에 저술한 《경제적 모순의 체계, 혹은 빈곤의 철학》에서 앙리 드 생시몽과 샤를 푸리에의 공산촌 소유 구조 체계를 '노동자 아소시아시옹'(associations de travailleurs)라는 독자적인 개념으로 해석하였다. 그는 노동자 아소시아시옹이 종래의 국가 체계를 완전히 대체하는 인민의 공동체이며, 이러한 공동체는 과거 국가 체계의 모든 요소가 사라지기에 권력 구조도 종래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구조로 대체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이 아소시아시옹의 형성은 국가에서 비국가로 나아가는 형태이며, 그사이에는 돌이킬 수 없는 장벽, 즉, '국가적인 것'과 어떠한 연쇄성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카를 마르크스는 《철학의 빈곤》을 통하여 그의 주장을 반박하였다. 카를 마르크스는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의 '지양'(Aufheben) 개념을 국가의 발전 양상에 적용하여 앙리 드 생시몽과 샤를 푸리에 등이 주장한 공산촌 구상은 국민국가의 틀에서의 내적 혁명을 통해 발생한 한 사회 구조의 형태라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그는 헤겔적 지양 측면에서 '보존된 것'은 국가라는 구성체이며, '변화된 것'은 낡은 생산 단계(자본주의)를 뒤엎은 새로운 생산 단계(사회주의)에 진입한 경제 구조라고 하였다. 즉, 이 '아소시아시옹'이 종래의 국가 속성에 기반한 상태로 발전해나간 개념이며, 당연히 과거 관념적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했던 아소시아시옹 구상은 하나의 국가 통치 체계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위키백과


4) 도회(蹈晦) : 몸을 낮추어 드러나지 않게 또는 자신을 감춤.


5) 그리보예도프(Griboedov 1795~1829) : 러시아의 극작가로 데카브리스트의 자유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대표작으로 『지혜의 슬픔』이 있다.


6) 폰비진(D. I. Fonvizin 1745~1792) : 제정 러시아의 작가로 귀족사회와 농노제도의 폐습을 풍자한 사실주의적인 작품을 발표했다. 『미성년』은 그의 대표작이다.


7) 빅토르 콘시데랑(Victor Cousin)은 19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교육자다. 그는 주로 신비주의적 철학과 독일 이데올로기를 프랑스로 소개하는 데 기여했다. 콘시데랑은 특히 '정신적 사물'이라는 개념을 중시하며 이는 그가 개척한 능동적이고 실용적인 사고방식의 중요한 요소다. 그의 철학적 기여는 후에 프랑스 사회에서 교육 체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8) 카베 (Cabet, Étienne) : 프랑스의 사회주의자(1778~1856). 공상 소설 <이카리아(Icaria) 여행기를 통하여 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의 건설을 주장하였으며, 미국카지노 게임 이주하여 공산 콜로니의 실험을 꾀하였으나 실패하고 객사하였다.


9) 「벨린스키와 고골의 왕복 서한」은 19세기 러시아 문학과 사상의 중요한 문서로, 특히 페트라솁스키 사건(Петрашевцы дело)과 관련하여 중요한 맥락을 지닌다.


①벨린스키와 고골의 사상 차이

벨린스키는 급진적인 문학 평론가이자 자유주의적·사회주의적 사상을 가진 인물이었고, 고골은 초기에는 현실주의적 비판 정신을 가졌으나 후기에는 종교적·보수적 성향이 강해졌다.


1847년, 고골은 《한 작가의 서신》(Выбранные места из переписки с друзьями)을 출판했는데, 이 책에서 그는 러시아 정교와 차르 체제를 옹호하는 보수적 입장을 보였다. 이에 대해 벨린스키는 1847년 7월, 고골에게 강력한 비판 서한을 보냈다.


②벨린스키의 서한 내용

벨린스키는 고골이 농노제와 러시아 정교를 옹호하는 데 대해 분노하며, 러시아가 필요한 것은 개혁과 진보라고 주장했는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러시아 사회의 현실은 농노제와 전제정 때문에 피폐해졌으며, 개혁이 필요하다. 종교적 신앙보다 계몽과 자유, 인권이 중요하다. 고골이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보수적 이념을 전파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실망스럽다.


③카지노 게임 사건과 관련성

카지노 게임 사건(1849년)은 미하일 카지노 게임(Михаил Петрашевский)를 중심으로 한 급진적 지식인 모임(카지노 게임 서클)이 차르 체제를 비판하다가 처벌받은 사건이다. 이 모임에는 도스토옙스키도 참여했으며, 많은 지식인이 체포되었습니다.


벨린스키의 사상이 이 모임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고, 그의 서한은 러시아 사회주의 사상의 중요한 문헌으로 간주되었다. 나중에 이 서한은 비밀리에 유포되었고, 혁명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④결론

「벨린스키와 고골의 왕복 서한」서한은 19세기 러시아 지식인들의 사상적 갈등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서다. 벨린스키의 비판은 이후 러시아 문학과 혁명 사상에 영향을 주었으며, 페트라솁스키 사건과 연결되어 혁명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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