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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Apr 11. 2025

지하로부터의 수기(VIII)

비(非)유클리드의 세계와 자유의지

『러시아 문학의 넓이와 깊이』

주제로 읽는

새로운 러시아 문학사 by 조주관

인간 존재의 수수께끼: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 (VIII)

비(非)유클리드¹의 세계와 자유의지

현대철학의 쟁점들 가운데 가장 근본적이며 핵심적인 것은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담론이다. 전통적으로 이성은 하나의 보편적 원리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이성을 원리로 하는 시도들, 즉 인간, 사회, 역사에 대한 이해는 각기 하나의 이념과 보편성을 지향했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는 하나의 이성을 불신하고 합리성 자체에 새로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철학에세이를 사용하지 않고 독특한 장르를 사용하여 이성을 부정하고, 그 대안으로서 감성, 생명, 비합리성, 열정 등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면서 인간과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원리를 제시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세계관에서‘지상적·유럽적·유클리드적’이라는 말은 동의어다.

도스토옙스키는 수학을 인간 이성의 정점으로 간주했다. 지하인간의 주장은 세계는 반드시 수학공식인 ‘2×2=4’라는 법칙만 있는 것이 아니라 ‘2×2=5’가 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전자는 이성을 바탕으로 한 합리주의의 세계요, 후자는 이성의 세계를 넘어선 비합리주의 세계이다. 은유적으로 전자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세계요, 후자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세계인 것이다.² 유클리드는 항상 ‘제한적인 이성’, ‘유클리드적 이성’, ‘지상적인 유클리드적 지혜’라는 말들과 공존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세계관에서 ‘지상적·유럽적·유클리드적’이라는 말은 동의어다. 여기서 유클리드적 이성이란 무엇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평행선 공준(공리)을 알아야 한다. 두 평행선은 만나지 않는다는 공준이다. 그러나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두 평행선이 만난다. 즉 기하학이란 유클리드 기하학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합친 것이 된다. 다른 말로 두 기하학이 공존하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유클리드 기하학을 유럽적 세계로 본다. 유럽적 이성을 대표하는 사람은 평행선이 만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당시 유럽은 기하학에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더 있음을 몰랐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유럽의 한계를 지적하고자 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포함한 더 넓은 세계가 러시아적 세계란 말이다. 실제로 로바쳅스키³라는 러시아 수학자가 유럽 기학학의 허점을 지적하고 새로운 기하학인 비유클리드 기하학 체계를 세웠다. 이를 알게 된 도스토옙스키는 ‘유럽 대 러시아’를 유클리드 기하학 대 비유클리드 기하학’으로 변주하여 사용한다. 그에게 있어 유럽은 이성의 부분(작은 이성)만을 대변하지만, 러시아는 폭넓은 이성(큰 이성)을 대변한다. “유럽은 러시아를 이해할 수 없지만, 러시아는 유럽을 이해할 수 있다”라고 한 도스토옙스키의 말은 가능한 담론이다.


유클리드의 세계에서는 행복이 보장되는 수정궁의 세계를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세계는 유클리드의 세계가 아니다. 인간 세계는 유클리드 세계와 비유클리드 세계가 공존하는 장이다. 인간은 행복만을 보장하는 유토피아의 세계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욕망이 그러한 수학적 진리를 거절하기 때문이다. 비유클리드의 세계는 고통이 수반되는 디스토피아의 세계이다. 인간은 어리석게도 고통 없는 행복을 원하지 않는다. 인간의 자유 의식은 가장 큰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 고통을 가장 값지게 여기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체르니솁스키를 위시한 당대 주류 사상가들이 주장한 합리주의⁴와 결정론⁵을 통렬하게 반박했다. 그 반박의 중심에는 지하인간을 통해 개진되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있다. 자유의지는 인간 생명의 본질로서 소설의 핵심이다. 합리주의자들의 지식 모델은 자명한 공리를 토대로 이루어지는 연역이다. 그렇다면 연역적 지식체계에서 공리와 같이 자명한 진리의 역할을 하는 지식이 어떤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수학 공식처럼 자명한 이론이 체르니솁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에 나타나며, 그 이론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의 이상과 동일시 된다. 지하인간은 이상사회를 수정궁카지노 게임 추천 부르면서 냉소를 퍼붓는다. 만약에 수정궁이 건설되면 인간은 수학의 대수표⁶처럼 논리적카지노 게임 추천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그는 이러한 공리주의적 이론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이론에 대해 거칠게 항거한다. 그에 따르면 그러한 수정궁이 실현된다 하더라도 인간의 자유 본능은 수정궁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또 그런 합리적인 생활 속에 갇히게 되면, 인간은 권태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유의지에 따라 살고 싶어 대수표를 찢어버리거나 수정궁을 벗어나고자 할 것이다. 결국, 인간의 개성을 무시하는 제도는 무슨 제도이건 스스로 붕괴할 것이다. ’2×2=4‘는 기존 체제가 물들어 있는 기성질서를 상징하고, 지하인간은 기성질서에 대해 변화와 개혁을 주창하는 사람들을 대변한다.


오늘날 도스토옙스키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19세기 소설가이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현대인들을 괴롭히는 도덕적, 종교적, 정치적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극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의 한 비평가는 마르틴 루터 다음으로 독일에 가장 큰 정신적 영향을 끼친 인물은 도스토옙스키라고 했다. 그가 서구 지성사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 프랑스의 소설가 앙드레 말로와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 등 무수히 많은 지성인이 그를 경배했다. 손창섭, 이문열, 최수철, 박영한, 김춘수 등 한국 작가들 역시 도스토옙스키의 영향 아래 상호텍스트성⁷의 문제와 관련해 자주 거론된다. 자신의 이상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독자들의 체험을 변형시키는 능력이 작가의 위대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면 도스토옙스키는 세계문학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의 작품들은 늘 독자에게 예지(insight)와 무지(blindness)를 동시에 느끼게 해 준다. <끝


[옮긴이 註]

1) 비유클리드 기하학(non-Euclidean geometry)은 직선 밖의 한 점에서 직선에 평행한 직선을 두 개 이상 그을 수 있는 공간을 대상으로 하는 기하학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의 제5공리 "직선 밖의 한 점을 지나면서 그 직선에 평행한 직선은 단 하나 존재한다"가 성립하지 않는 공간을 다루는 기하학으로, 쌍곡기하학, 타원기하학, 택시기하학 등이 있다. 19세기에 제5공리를 부정해도 다른 공리와는 아무런 모순이 없음이 밝혀지면서 등장하였다. 연구한 수학자로는 니콜라이 로바쳅스키·보여이 야노시·베른하르트 리만이 유명하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타원기하학(elliptic geometry)과 쌍곡기하학(hyperbolic geometry)의 총칭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베른하르트 리만 등이 있다. 리만은 “구 위에서는 한 직선과 그 직선 위에 있지 않은 점이 주어졌을 때, 그 직선과 평행하고 그 점을 지나는 직선은 없다.”고 말했으며, 가우스는 반대로 “지구 위에서는 한 직선과 그 직선 위에 있지 않은 점이 주어졌을 때, 그 직선과 평행하고 그 점을 지나는 직선은 둘 이상이다.”고 말했다. 이는 각각 타원 기하학과 쌍곡 기하학의 기초가 되었다.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인 유클리드 기하학과는 달리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가 아니라 이보다 크거나(타원 기하학) 작다(쌍곡 기하학).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역사적으로는 공리론적으로 구성되지만 현대적인 견해로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리만 기하학의 특수한 예 또는 고전적인 모델로 간주한다. 그리고 현재까지 13개 이상의 기하학이 탄생되고 체계화되었다.

역사

유클리드 기하학

유클리드 기하학(Euclidean geometry)은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Euclid, BC330?~BC275?)에 의해 구축된 수학 체계로, 그의 《원론》은 기하학에 관한 최초의 체계적인 논의로 알려져 있다. 유클리드의 방법은 직관적으로 인지되는 공리를 참으로 간주함에 바탕을 두며, 그것들로부터 연역적으로 명제(정리)를 이끌어낸다. 이러한 공리론적 구성법에서는 직선 · 평면 등의 기본적인 개념이 무정의(無定意) 요소이다. 2천년 동안 유클리드의 공리는 어떤 정리도 유도해 낼 수 있을 만큼 직관적으로 매우 명백한 것으로 보였고, 절대적인 의미에서 참으로 간주되었다.

유클리드 공준

①임의의 점과 다른 한 점을 연결하는 직선은 단 하나뿐이다.

②임의의 선분은 양끝카지노 게임 추천 얼마든지 연장할 수 있다.

③임의의 점을 중심카지노 게임 추천 하고 임의의 길이를 반지름카지노 게임 추천 하는 원을 그릴 수 있다.

④직각은 모두 서로 같다.

⑤두 직선이 한 직선과 만날 때, 같은 쪽에 있는 내각의 합이 직각(90˚)보다 작으면 이 두 직선을 연장할 때 2직각(180˚)보다 작은 내각을 이루는 쪽에서 반드시 만난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탄생

유클리드의 다섯 번째 공준인 평행선 공준은 다른 네 공준이 자와 컴퍼스를 이용해 경험적카지노 게임 추천 이해될 수 있는 것과 달리 복잡하고 직관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몇몇 수학자들은 이 공준이 다른 명제들로부터 증명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연역법). 또한 다른 몇몇 수학자들은 이 공준의 부정을 가정하여 모순을 이끌어내려고 하였다(귀류법).


대표적으로 이탈리아의 수학자 사케리(Girolamo Saccheri, 1667~1733)는 다섯 번째 공리를 부정해 모순을 증명하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사케리는 새로운 정리를 많이 얻었으나 새로운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섯 번째 공리의 모순을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연구한 것을 모두 버렸다. 결국 19세기에 이탈리아의 수학자 벨트라미(Eugenio Beltrami, 1835~1899)에 의해 이 공준은 증명될 수 없음이 밝혀졌고, 또한 이것의 반대 상황을 가정해도 모순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1829년 러시아의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로바쳅스키(Nikolai Ivanovich Lobachevskii, 1792~1856)는 평행선 공리를 도입하지 않은 새로운 기하학을 한 러시아 저널에 발표하였다.


독일의 가우스(1777~1855)는 제5공준 대신 평행선을 몇 개나 그을 수 있다는 공리에서 출발하여도, 모순이 없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쌍곡기하학)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비유클리드 기하학 연구는 발표되지 않았고 1831년 가우스의 친구 보여이 퍼르커시의 아들인 헝가리의 보여이 야노시에 의해서 연구되어 그의 아버지의 논문에 발표되었다.


1854년 가우스의 제자인 베른하르트 리만(1826~1866)은 기하학의 기초에 관한 강연을 했다. 그는 곡률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다섯 번째 공리가 성립하는 공간은 곡률이 0인 공간(유클리드 기하학)이고 평행선 공리 없이, 곡률이 1이면 구면처럼 평행선이 없는 공간(구면기하학 또는 타원기하학), 곡률이 -1이면 평행선이 무수히 많은 공간이 된다는 것을 이론으로 발표했다. 나아가 곡률이 정해진 수로 나타나지 않는 공간에 대한 이론도 세워 곡면 위의 기하학으로 일반화하였다.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유클리드 기하학의 차이점

공리론적 구성법에서는 직선·평면 등의 기본적인 개념이 무정의(無定意) 요소인 데 비해 리만 기하학의 입장에서는 이것들이 구체적카지노 게임 추천 정의된다. 예를 들면 직선은 두 점을 연결하는 가장 짧은 선, 즉 측지선(測地線)카지노 게임 추천 정의된다. (중간 생략)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중요성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과학사에 중요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되었다.


공간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유클리드 기하학은 수학적 모델로서 2천년간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의 사고 역시 유클리드 공간 내에서만 사고하는 데에 그쳤다. 여기에 철학자 칸트(Kant, 1724-1804)는 산술과 유클리드 기하학은 선험적인 것이지, 분석적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을 하였다. 경험에 의하지 않고서, 이성에서부터 발생되는 관념의 존재를 인정하여, 이것은 경험적인 관념보다 우월하며 보편타당적이고 또한 필연적이라고 하였다.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공간의 성질에 대한 이해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유클리드 기하학의 관점은 크게 흔들리게 되었고, 논리와 산술에서 논쟁의 주제로 남게 되었다. 로바쳅스키는 자신의 신기하학(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천문학 연구 및 미소(微小) 현상의 범위 연구에 주어진다고 생각하고, 통상의 유클리드 기하학은 지구상의 차원에 적용된다고 했다. 이 견해는 칸트의 인식론에서 얘기되는 공간의 아 프리오리설에 큰 타격을 가했다. 로바쳅스키에 의하면, 인식은 지각을 통해 획득되는 것이며, 의식에 선천적으로 부여된 무엇인가의 작용에 의한 것이 아니다.


새로운 기하학이 발표된 지 약 60년 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은 우주가 평평하지 않고 중력에 의해서 휘어 있음을 보였다. 그리고 일반상대성이론은 공간에 대한 기초 이론을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찾았다. 이처럼 유클리드의 다섯 번째 공리에 관한 의심에서 출발한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미시공간과 극대 공간을 해석하는 이론으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나는 기하학의 이러한 해석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일 내가 그 기하학을 몰랐다면 나는 결코 상대성 이론을 만들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참고자료]

·로바체프스키가 들려주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이야기, 성정화 지음, ㈜자음과모음

·기하학 - 유클리드 기하학 비유클리드 기하학-윤갑진 지음 2009 교우사

·비유클리드기하학 제2판 고석구 지음 2006 경문사 <위키백과 발췌 인용


2) [原註31]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아(Academia)의 출입문에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 이 문 안에 들이지 말라”라는 말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요컨대 이는 기하학을 지성의 척도로 보았다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2,500여 년이 지난 요즘 세상이라면 어떤 학문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지 궁금하다.


카지노 게임 추천로바쳅스키의 초상화. by 레프 크류코프

3)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로바쳅스키(Никола́й Ива́нович Лобаче́вский, 1792~1856)은 러시아의 수학자이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일종인 쌍곡 기하학을 발견했다. <위키백과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로바체프스키는 1792년 12월 1일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하급 관리의 3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7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사망하고 가세가 기울어 가족들과 함께 카잔카지노 게임 추천 이주하였다. 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지 하에 카잔 대학교에서 계속 공부하여 졸업 후 시간 강사직을 얻고 교수와 학장을 거쳐 카잔 대학의 총장이 되었다.


1832년엔 나이 차이가 있는 영주의 딸과 결혼해서 많은 자녀를 두었지만, 대부분은 요절했다. 총장직에서 파면된 이후 '범기하학 원론'을 편저했지만, 스트레스와 노환카지노 게임 추천 인해 시력은 실명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 제자가 대필했다. 이후 대학 행사에 참여했지만, 딱히 그가 한 것은 없고 그의 저서를 대학 측에 기증한 게 전부라고 한다. 1856년에 기아로 사망했다.


업적

'평행선 공준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더라도 모순이 없다는 점을 발견하여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창시했다. 사실 그의 논문은 발표되고 나서도 묻혀 있었는데, 3년 후 보여이 야노시가 같은 내용을 발표하면서 그의 업적도 드러났다. 그래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한 종류인 '쌍곡 기하학'은 이들의 이름을 따서 '보여이-로바체프스키 기하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학자이자 저술가인 E.T 벨은 자신의 저서 '수학을 만든 사람들'에서 그를 '기하학의 코페르니쿠스라고 칭했다.


학생과 시민을 위하는 총장

당시 기준으로 흔한 지잡대에 불과하던 카잔 대학을 러시아의 명문대로 만든 일등 공신 중 한 명이다. 그는 교수로 임명되었을 때부터 총장직을 역임할 때 비용을 대부분 대학교 시설 재정비와 기타 시설 및 장비 신설에 아끼지 않고 썼다. 행동력도 좋아서 도서관에 아무렇게나 꽂힌 책을 직접 분류하고 박물관에 있는 화석과 박제의 먼지를 털어 제자리에 전시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행동력과 혜안은 팬데믹에서도 빛을 발했는데, 러시아에서 콜레라가 유행하자 보균자들은 따로 격리하고 가급적 비감염자끼리 생활할 것을 강제하여 카잔 시민들의 비감염자 비율과 생존율을 높였다.


이외에 배우고 싶으나 돈이 없는 몇 학생들에게 지갑을 털어 책을 사주거나 교통비나 학비까지 지원해서 학교에 오게 해줬다는 등 훈훈한 미담도 있다.


그는 차갑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초상화와는 달리 심각한 반골이자 열혈 타입의 전형이었다. 학창 시절엔 툭하면 '불온서적'을 들고 다녔고, 반항도 잦아서 영구 제적 후 영장을 받고 학계와 영영 이별할 뻔했으나 그를 가르쳐 본 교수들의 변호로 무사히 풀려났다.


그 성격에 그 행동력이다보니 이런 일화도 존재한다. 평소보다 힘든 작업이 많아 웃옷을 다 벗고 일하던 로바체프스키에게 외국 학자가 안내를 부탁했다. 박물관의 전시품부터 잡상식에 대한 것까지 모르는 게 없는 그를 조금 격식있는 청소부쯤카지노 게임 추천 오해한 학자는 금화다발을 팁카지노 게임 추천 챙겨줬지만, 순간 빡친 로바체프스키는 자신을 무시하는 거라 여겼는지 욕을 속사포로 내뱉으며 그에게 금화들을 도로 던져버렸다. 오해가 풀린 건 그날 저녁 연회에서 서로를 만난 후였다고. 소행성 중 로바체프스키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 있다. (참고문헌: E.T 벨 - 수학을 만든 사람들 II/원제 Men of Mathmatics II) <나무위키 인용


4) 인식론에서 합리론(合理論, rationalism), 합리주의(合理主義) 또는 이성주의(理性主義)는 이성을 지식의 제일의 근원카지노 게임 추천 보는 견해를 말한다. 합리론에서의 진리의 기준은 감각적인 것이 아니라 이성적이고 연역적인 방법론이나 이론카지노 게임 추천 정의된다. 합리론자는 우리의 개념과 지식이 감각적 경험에서 독립하여 얻어지는 방법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경험론자는 감각적 경험이야 말로 우리의 개념과 지식의 궁극적인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오랜 논쟁에서 합리론은 경험론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며, 합리론자는 실제는 본질적카지노 게임 추천 논리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합리론자들은 어떤 진리는 존재하며, 지성은 이러한 진리를 직접적카지노 게임 추천 포착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즉, 합리론자들은 근본적카지노 게임 추천 참인 어떤 이성적인 원칙이 논리, 수학, 윤리학, 형이상학에 존재하며, 이를 부정하는 자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합리론자들은 이성에 매우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서 경험적인 증거나 물리적인 증거는 진리를 획득하는 데에 불필요한 것카지노 게임 추천 간주하였다. 다시 말해, 우리의 개념과 지식이 감각적 경험카지노 게임 추천부터 독립적카지노 게임 추천 얻어지는 두드러진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이나 이론을 강조하는 정도의 차이는 "지식을 획득하는 다른 방법에 비해 우월함을 가지고 있다"는 온건한 입장부터 이성은 "지식을 향한 유일한 길"이라는 극단적 입장까지 다양한 합리주의적 관점을 낳았다. 전근대의 이성에 대한 이해를 고려할 때, 합리론은 소크라테스의 질문하는 생애나 권위에 대한 회의주의자의 명쾌한 해설로서의 철학 그 자체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정치에서 계몽주의 이래로 합리론은 공화주의, 세속주의, 무종교 (종교적 또는 무종교적 이념에 관계 없이 실현 가능한 다원론적 합리주의 방법론의 공리주의를 적용하여 수정된 후기 양상의 반신론)에 집중된 "이성의 정치"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철학자 존 커팅햄(John Cottingham)은 방법론카지노 게임 추천서의 합리주의가 세계관카지노 게임 추천서의 무신론과 어떻게 융합되었는지를 강조하였다.


과거에 특히 17세기와 18세기에 합리론자라는 용어는 종종 반성직자적인, 반종교적인 관점을 가진 자유로운 사상가를 말하기 위해 사용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 단어는 뚜렷하게 경멸적인 의미를 얻었다. (그래서 1960년에 샌더슨(Sanderson)은 '순전한 합리론자, 즉 보통의 영어에서 후기 판형의 무신론자'라고 얕잡아 말했다.) 초자연적인 것을 위한 공간이 없는 세계관을 특징짓기 위하여 합리주의자라는 딱지를 사용하는 것은 오늘날 더욱 흔하지 않게 되었고, 인본주의자나 유물론자같은 용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카지노 게임 추천 보인다. 그러나 이 오래된 용법은 아직 살아 있다.


(고대와 중세 합리론 부분 생략)


근대 합리론

르네 데카르트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는 최초의 근대적 합리론자이자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를 뒤따르는 서양 철학의 다수는 그의 저술에 대한 응답이다. 데카르트는 영원한 진리에 대한 지식은 오직 이성 단독으로 얻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다른 지식인 물리학에 대한 지식은 과학적 방법의 도움을 받은 세계에 대한 경험을 요구한다. 그는 또한 꿈은 감각적 경험처럼 진짜처럼 나타나지만 꿈은 사람에게 지식을 제공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의식된 감각적 경험은 환상의 결과일 수 있기 때문에 감각적 경험은 그 자체로는 의심받을 수 있다. 이러한 결과로 데카르트는 합리적인 진리를 추구하려면 모든 실제에 대한 믿음을 의심해야 한다고 연역하였다. 그는 이러한 믿음을 《방법 서설》 등에서 자세히 설명하였다. 데카르트는 지성 또는 이성으로 인식될 수 없는 것은 지식으로 분류될 수 없다는 것에 따라 진리를 얻기 위한 방법을 개발하였다. 이러한 진리는 데카르트에 따르면 어떠한 감각적 경험도 없이 얻어진다. 이성으로 얻어진 진리는 순수한 연역적 과정을 통하여 직관으로 얻을 수 있는 요소로 쪼개질 수 있다.


데카르트는 그의 방법의 결과로서 이성은 단독카지노 게임 추천 지식을 결정할 수 있으며, 감각카지노 게임 추천부터 독립적카지노 게임 추천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예를 들어, 데카르트의 유명한 선언인 코기토 에르고 숨은 물질에 대한 어떤 종류의 경험에 앞서서 도달한 결론이며, 어떤 것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은 내가 사고하기 위해서 존재한 것을 증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어떤 것이 의심하는 것을 의심하는 것은 터무니가 없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에게 이것은 모든 형태의 지식이 어떤 것에 근거를 두어야 할지에 대한 의심할 여지 없는 원리였다. 데카르트는 몸의 본질과 마음의 본질을 구별하는 형이상학적 이원론을 견지하였다. 데카르트의 체계에서 몸과 마음의 본질은 서로로부터 독립적이기 때문에 이 중대한 구분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았으며, 정신-육체 문제를 야기하였다.


바뤼흐 스피노자

르네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를 받아들인 동시에 이원론을 비판하고, 유물론적인 일원론적 합리주의를 주장한 근대 철학자이다.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는 인간과 인간의 정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우주물질의 일부라고 하였으며, 이러한 그의 뜻은 '신 즉 자연'(Deus sive Natura)이라는 말로 대표될 수 있다. 그는 인식되는 모든 사물은 능산적 자연(Natura naturans)인 본질과, 소산적 자연(Natura naturata)인 양태(Modus)로 나뉜다고 보았으며, 이 양태의 변화의 파악 여부에 따라 해당 사물에 대한 이해도가 달라진다고 하였다. 《기하학적 순서로 증명된 윤리학》(Ethica)에 따르면, 정열에 싸인 인간은 사물에 대해 수동적인 입장을 지닐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사물 체계의 인과론적 원리에 귀속되는 삶을 살게 된다. 반면, 한 사물에 대해 데카르트적 회의를 하게 될 경우 이성지(理性知)적 측면이 발달하여, 사물의 진위를 가리는 정관의 상태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다. 《지성개선론》에 따르면, 이 상태에 진입한 경우 사물의 정합성을 따지게 되며, 이는 직관지(直觀知)로 나아가는 수순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신적 상태에 들어서지 않은 모든 인간은 한 사물에 대해서 수많은 인식 상태가 공존하고 있기에 부분적으로 수동적이며, 또한 부분적으로는 능동적인 입장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이성지적 사고에 익숙치 않은 인간일 경우 자연에 대해서 관조적인 입장이라기보단 수동적인 입장을 취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그가 사물에 대한 이성지로부터 나오는 정합적 사고가 완전히 기하학적 원리를 갖고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과 연결되며, 동시에 육체적 감각은 무작위적이며, 임의적인 것이라고 판단한 것과도 연결된다.


그의 사상에 영향을 준 데카르트가 심신이원론을 전개한 것과 달리 그는 심신평행론을 전개하였으며, 정초주의적이라기보단 정합주의적이었다. 그는 육체와 정신은 하나이며, 이 두 가지 모두 우주물질에서 기원된 요소라고 보았다. 또한, 그는 그의 저서들에서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고를 접하는 것, 자신이 행하는 사고를 자신이 다시 접하는 것 등등 수많은 상황을 나눠서 인간의 인식이 어떠한 원리를 갖고 있는지를 규명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인간이 한 사물에 대해서 직관지적 입장을 갖는다는 것이 곧 최고선에 향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키티온의 제논을 포함한 스토아주의자들의 사상과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는 미적분학, 지질학 및 물리학에서 획기적인 업적을 이루어낸 과학자이자 철학자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세계는 무수히 많은 단일불가분(單一不可分) 속성을 갖춘 동시에 능동성을 지닌 보편자에 의해 구성되며, 이를 모나드(Monad)라고 칭하였다.


모나드는 그 표상력이 정도차에 따라 무기적 자연물에서 신에 이를 수 있으며, 이 사이의 간극에서 수많은 감정과 마음이 생겨난다. 모나드는 본래 각각 독립적이고 서로 관계가 없는 보편자이지만 이 모나드들이 세계의 통일을 형성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신에 의한 '예정조화'(豫定調和) 때문이라고 하였다. 세계가 신의 예정조화이며 최선의 질서를 얻고 있다고 보는 것에서, 낙관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으며, '이성'(Logos)이란 이 조화를 정확히 포착해낼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따라서, 그는 인식론에서는 감각을 원천카지노 게임 추천 하는 경험론에 반대하여, 합리론의 입장에서 모나드의 표상작용에 기초를 둔 생득적 합리성카지노 게임 추천부터 진리의 성립을 설명하고, 진리의 기준을 명백성과 무모순성에 두었다. 초시간적인 영원의 진리인 '이성의 진리'의 체득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카지노 게임 추천 충분하지만, 다른 한편 경험적인 자연법칙 등의 '사실의 진리'는 '충족이유의 원리'를 필요로 한다고 했다. 그의 논리학 사상은 수학적 사상의 기초를 수립한 것카지노 게임 추천서 평가받고 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는 임마누엘 칸트의 초월론적 관념론을 비판한 철학자이며, 르네 데카르트의 정초주의적 합리론을 고수 및 계승하려고 한 학자이다. 그러나, 그의 철학은 1809년 《인간 자유의 본질에 관하여》를 낸 기점으로 전기 사상과 후기 사상으로 나눠서 봐야 할 만큼 시기에 따라 그 내용 차이가 심하며, 스스로도 전기 철학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 후기 사상의 경우는 낭만주의와 종교적 신비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에, 본 문서는 그의 전기 사상만 다룬다.


《철학의 원리로서의 자아》에서 그는 그간 철학이 구분했던 주관과 객관을 넘어선 절대적 본질이 존재한다고 봤으며, 따라서 양분론적 입장(피히테의 입장)을 강렬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러한 절대자를 지적 직관카지노 게임 추천 파악하려 했으며, 이 지점에서 합리론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절대자를 절대적인 동일성을 지닌 존재로 설명했으며, 이것은 오로지 지적 직관에 의해 파악되는 완고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우주물질 즉, 자연의 배열과, 이 배열에 따른 모든 정신적 작용은 절대자에서 비롯되며, 어떠한 견해가 오류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이 배열을 주도하는 절대자의 흐름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라고 나눠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스피노자로부터 양태론을 얻고, 그것을 계승하며, 자연은 저마다 다른 잠재성(Potenz)을 갖고 있으며, 이 잠재성이 무한에 가까워지면 그것이 정신을 구성하는 원리가 된다고 하였다. 즉, 그는 물질이 추상적이고 동시에 존재론적인 '정신'의 위치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미(美)와 추(醜)의 개념에도 적용되었다.

현대 합리론

1960년대 말부터 근대주의에 대한 비판이 심화되면서 오늘날 합리론이라고 단순히 이름 붙이는 것은 희귀한 것이 되었으나, 감각주의의 한계로 인해 1990년대 말부터 오히려 다양한 종류의 특수화된 합리론이 확인되고 있다. 예를 들어 로버트 브랜덤은 《아티큐레이팅 리즌스》(Articulating Reasons)에서 자신의 과정(programme)의 일면을 위한 이름카지노 게임 추천서 합리론적 익스프레시비즘(rationalist expressivism)과 합리론적 프래그머티즘(rationalist pragmatism)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명제의 내용은 "필수적카지노 게임 추천 전제와 추론의 결론카지노 게임 추천서 모두 작용한다"는 주장인 언어적 합리론(linguistic rationalism)을 윌프리드 셀러스의 주요 이론카지노 게임 추천 인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어디까지나 언어철학 내에서의 합리론적 경향일 뿐, 종합적인 의미에서의 합리주의라고 하기 어렵다. 종합적인 의미에서의 합리론적 경향과, 언어철학적인 의미에서의 합리론적 경향 사이의 절충을 시도하는(John McDowell) 흐름도 존재하며, 종합적인 성격을 갖는 합리주의자도 현대철학의 분파에서 소수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절충적 입장

임마누엘 칸트

근대 철학의 핵심적 인물 중 한 명카지노 게임 추천서, 칸트(Immanuel Kant)는 합리론이란 용어를 정립하였다. 칸트는 인간의 인식은 자연법을 구축하며, 이성은 도덕성의 원천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현대의 사상, 특히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정치 철학, 미학과 같은 분야에서 주요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칸트는 자신의 인식론을 초월적 관념론이라 이름 붙이고 자신의 유명한 저작인 《순수이성비판》에서 이러한 관점을 처음 제시하였다. 여기서 칸트는 합리론과 경험론의 도그마에는 둘 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합리론자에게는 순수 이성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 신의 존재, 자유의지, 인간 영혼의 불멸과 같이, 가능한 모든 경험의 영역을 넘는 것들을 인식한다고 주장할 때 오류를 일으킨다고 주장하였다. 칸트는 이러한 객체를 물자체라고 불렀으며, 가능한 모든 경험을 뛰어넘는 객체로서의 그들의 지위는 우리가 그것들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광의의 이성(Vernunft)을 이성의 재판대에 세워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경험론자에 대해서는 경험이 기본적카지노 게임 추천 인간의 지식에 필요하다는 것은 옳은 반면에, 이성은 일관적인 생각카지노 게임 추천 경험을 바꾸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칸트는 이성과 경험은 둘 다 인간의 지식에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같은 방법카지노 게임 추천 칸트는 사유를 오로지 분석카지노 게임 추천만 간주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하였다. 칸트의 관점에서 "아 프리오리"한 개념은 존재하지만, 그것들이 지식의 확장카지노 게임 추천 이어지려면, 경험적 데이터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


5) 결정론(決定論·determinism)은 과거의 원인이 미래의 결과가 되며, 이 세상의 모든 사건은 이미 정해진 곳에서 정해진 때에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다는 이론이다. 결정론에 따르면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운동은 이미 그 전부터 결정되어 있으며, 어떤 법칙에 따라 합리적카지노 게임 추천 움직인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과 라플라스 등은 결정론을 지지했다. 특히, 라플라스는 “우주의 모든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안다면 우주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으며, 초기 결정론의 모태를 만들었다. 또한 결정론은 라플라스 주의라고도 한다. 숙명론과 자주 혼동하지만, 결정론은 인과관계로 말미암아 필연카지노 게임 추천 사건이 일어나며, 숙명론은 인과관계와 상관없이 세상의 사건은 모두 미리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숙명론과는 다르다.


결정론에서 자주 거론되는 것카지노 게임 추천는 자유의지가 있는데, 자유의지란 어떤 이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있을 때, 신이나 자연 따위에서 벗어나 행동할 수 있는 의지를 뜻하는 낱말로, 결정론은 참이라는 입장에서도 자유의지가 있다는 의견과 자유의지가 없다는 의견카지노 게임 추천 나뉜다. 자유의지는 없다는 의견은 심지어 인간의 의지마저 결정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자유의지는 있다는 의견은 인간의 의지가 존재함을 주장한다. 이 문제에 대해 대부분 실존주의 철학자는 모든 상황이 결정되어 있더라도 인간은 영속하고도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9세기 물리학은 결정론에 들어 맞았기 때문에 크게 유행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양자역학이 생겨나게 되자, 모든 것이 미리 정해져 있었다는 결정론에 대한 철학적 반박도 동시에 이어졌다. 그러나, 미시세계에 관한 연구인 양자역학과, 분자 이후의 세계인 거시세계는 원칙적카지노 게임 추천 다른 작용을 가지며, 미시세계의 작용자가 거시세계에 작용하는 순간, 그것은 곧바로 거시세계의 사건이 되어버리기에, ‘양자역학의 성립’이 ‘결정론의 위기’의 관계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란이 존재한다.


역사적 배경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

15세기 이전의 유럽에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세계관이 지배하고 있었다. 우주의 중심은 지구이고 달을 경계로 천상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가 구분되며, 천상에서의 자연법칙과 지상에서의 자연법칙은 다르다는 점이 이 세계관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이 내용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자연철학'이라 불리며, 이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서 중세 유럽에 이르기까지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럽인들이 굳게 믿고 있었던 세계관이었다.


뉴턴의 등장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은 16세기에 접어들면서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의 학자들에 의해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하였으며, 17세기 영국의 아이작 뉴턴의 등장으로 인해 큰 변화가 나타났다. 뉴턴은 그의 저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통해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하였는데, '관성'과 '보편중력'의 개념을 통해 우주의 모든 물체 사이의 상호인력을 설명하였다. 이는 기존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이 천상계와 지상계를 구분하던 것을 불필요하게 만들었으며, 그로 인해 자연과 우주를 바라보는 인식에 커다란 변화가 나타났다.


구체적 사례

천체역학의 발전

결정론은 물리학의 발전, 특히 천체역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뉴턴역학의 이론에 근거하여 1675년에 덴마크의 천문학자 뢰머가 광속이 유한함을 입증하였으며, 그 당시에 발견되지 않았던 천왕성과 해왕성의 위치를 예측하여 발견해내는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다루어졌던 주요 논쟁으로는 조수간만의 원인, 태양계의 안정성에 대한 논의, 삼체문제 등이 있다. 천체역학에서 보여준 예측정확성으로 인해 결정론적 세계관이 큰 힘을 얻게 되었다.


라플라스의 악마

18세기 후반에 이르면 결정론과 역학적 세계관이 많은 사람들에게 용인되는 신념이 되는데, 이 시기의 대표적인 인물로 피에르사몽 라플라스를 꼽을 수 있다. 라플라스는 그의 저서 '천체역학'을 통해 천체 관측에서 발견되는 장기적인 불규칙성을 뉴턴역학으로 설명하였고 이를 통해 태양계의 안정성을 분명히 설명하였다. 그의 노력으로 물리학에서는 고전역학을 체계화하는 발판을 마련하였으며, 이를 통해 결정론적 세계관을 확립하게 되었다. 결정론에 대한 라플라스의 확신은 그가 저술한 '확률에 대한 철학 에세이'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후대의 전기 작가들은 이를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표현으로 소개하고 있다.

주요 논쟁

양자역학의 등장

19세기까지 크게 유행했던 결정론은 20세기에 이르러 양자역학이 생겨나면서 새로운 논쟁이 제시된다. 양자역학이론에 따르면 전자와 같은 미시세계의 물체들은 현상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는 우주의 모든 사건이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의 핵심에 대한 의문이며,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아인슈타인 등 20세기 초의 과학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논의된 문제이다. 이 논쟁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들 수 있다.


미래에 대한 예측

결정론의 또 다른 논쟁 중 하나는 '미래에 대한 예측'에 있다. 결정론에 따르면 현상을 정확히 파악하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이는 천체역학의 발전을 통해 증명되었으며, 지표에서도 물체의 역학적 운동의 대부분은 수학적 계산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양자역학 성립 이후 미시세계의 불확정성이 증명된 이후에는 거시세계에 대한 위와 같은 예측을 미시세계의 운동과 합일시킬 수 있느냐가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이러한 문제들은 20세기에 이르러 프랙털, 결정론에 입각한 혼돈 이론 등을 통해 설명할 수 있는데, 이러한 설명 방식도 선형적인 운동만을 설명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오늘날에도 혼돈이론은 계속 연구되고 있으나, 이것이 과학 전반의 개념적 토대들로서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의되고 있다.


6) 대수표 (對數表)는 ‘로그표’의 옛전 용어로 수의 로그값을 정리하여 만든 표를 말한다. 컴퓨터나 계산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로그표(=대수표)를 사용해 로그 값을 빠르게 계산할 수 있었다. 로그표 사용법을 터득하면 로그 값을 계산하거나 큰 숫자들을 곱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다.


7)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은 저자가 선행 텍스트에서 빌리거나 변형하며, 독자가 텍스트를 읽을 때 다른 텍스트를 참조하는 개념이다. 이는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의 모든 상호관계를 포함하며, 작가의 작품들 관계와 서로 다른 작가의 작품 사이의 관계, 그리고 문학작품과 타 예술 텍스트와의 상호 연관 관계를 함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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