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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전기지민 Jan 20. 2025

'수'의 인생으로 당신을 비추는 순간 3

단편소설 3

심리치료 선생님 'June'은 50대 초반의 심리치료학 박사였고 잘은 모르지만 가정이 있는 것 같았다. 외모는 나이에 비해 젊어 보였지만 말이나 행동이 중년답게 단아했다. 선생님에게 수는 자신의 고민을 말하려고 했지만 어디서부터 무엇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선생님은 수에게 간이 심리검사를 진행했고 수가 불안도가 높고 강박도 있으며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해 자신의 마음을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수의 생각은 어떤지 물었다. 수는 가만히 대답했다.

"저는 저를 잘 몰라요. 그러니까 누구에게도 제 마음이나 상태를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설사 말한다고 해도 그게 제가 아닐 수 있으니까요."

심리치료 선생님이 다시 물었다.

"제일 마음을 두는 사람, 안전기지는 누구예요?"

"제 자신이었다가, 남편이었다가, 또.. 다시 제 자신인 것 같아요."

"안전기지는 언제든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곳이에요. '수'에게 가장 편한 사람, 마음 놓고 나를 다 보여줘서 걱정하지 않을 대상이 누구인지 한번 알아와 볼래요?"


이 대화 말고도 선생님이 말한 몇 가지가 희미하게 생각이 났다.

"'수'는 어떤 사람 같아요? 최근에 가장 행복한 기억은 뭐였어요? 하루 중 어떤 시간을 가장 기대해요?" 등 살면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질문들에, 아, 이래서 상담에 돈을 쓰는구나 생각카지노 쿠폰. 1시간 상담이었지만 1년 중에 가장 말을 많이 한 날 같았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가장 임팩트 있는 말은 이거였다.

"감정을 표현한다는 건 자유로운 기분을 들게 해요. 미숙해도 괜찮아요. '수'씨가 앞으로 조금씩 해 볼 용기가 있다면 좋겠어요."


수는 집으로 돌아와서 가만히 한 단어를 되뇌었다.

"안전기지.. 감정표현.. 편하고 안락한 공간. 내게 그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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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였다. 엄마였었다. 엄마는 지금 곁에 있지 않지만 엄마였던 건 분명했다. 그런 엄마는 수가 대학 수능을 치르기 전에 돌아가셨고 그 이후로는 누구도 믿지 못했다. 수는 마음을 닫았다. 누구에게도 그 자리를 줄 수 없었다. 심리치료 선생님이 어릴 적 기억에 대해 다음 시간에 물을 테니 좋았거나 슬펐던 기억들을 알아오라고 했다. 수는 지난 기억을 가만히 꺼내는 시간을 가졌다. 식탁에 앉아 작은 랜턴을 켜고 손에 익은 펜을 들고 가족과 친구들, 살았던 곳에 대해 써보기 시작했다. 수의 기억은 이러했다.


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없었다. 왜 없는지 엄마에게 묻지도 않았고 엄마도 아빠의 존재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물어보면 엄마가 왠지 슬플 것 같아서 수는 궁금한 게 차라리 나았다. 그게 12살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수는 그때에도 엄마의 마음을 자신과 동일시한 것 같았다. 수와 남동생은 엄마와 이모의 손에 자랐다. 수에게 엄마는 전부였고 세상이었다. 엄마는 생활력이 강했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셨다. 크게 화를 내지도 소리 내 울지도 크게 웃지도 않으셨다. 그러나 수에게만은 친절했고 일정한 모습이셨다. 수는 감정의 변화가 크지 않은 엄마와 함께 20년 가까이 살면서 감정을 드러내는 방법을 아예 몰랐던 건 아닐지 생각하게 되었다. 수는 친구가 별로 없었다. 학년을 거듭할수록 두세 명씩 늘긴 했지만 적극적으로 누굴 사귀려고 애쓰지 않았다. 중학생 시절, 한 친구에게 집착하듯 따라다녔지만 그 친구는 자신의 무리에게 가버리고 수는 남겨진 기억이 살짝 났다. 그 기억과 동시에 머리를 흔들며 떨쳐냈다. 수는 자신에게 아픈 기억은 깊게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는 걸, 아니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내가 나쁜 기억도 별로 없는 건가..' 수는 가만히 말카지노 쿠폰. 그리고 갑자기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들려 혼자 사유하는 시간의 끝을 알렸다. 남편이었다. 주말이라 세차하러 간 남편이 저녁거리를 사 오겠다고 카지노 쿠폰.

"수육용 삼겹살이 마트에 세일하네. 사갈 테니까, 아. 집에 월계수잎 있지?"

수는 남편과 함께하는 오랜만의 저녁 식사라는 생각에 살짝 설레기도 카지노 쿠폰. 7년을 같이 살았지만 아직 생소한 것들이 있으니 수는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분명 해결할 것들이 있다고 자각카지노 쿠폰. 이틀 전에 남편과 얘기를 하려고 조각케이크를 사놨던 기억이 났다. 본인도 잊어버린 그 케이크는 힘이 없어 보였다. 본인이 원하는 타이밍은 아니지만 남편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겨 괜히 좋기도 카지노 쿠폰.


"오늘 낮에 뭐 했어?" 남편이 상추쌈을 싸면서 수에게 물었다.

"응. 심리치료한다고 했잖아. 선생님이 해오라던 숙제를 좀 하던 중이었어."

"무슨 숙제? 근데 심리치료 같은 거.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들이 받는 거 아니야?"

"그냥 가벼운 상담 같은 거야. 비용도 비싸지 않아서 했고, 오래 하진 않을 거야."
"나도 상담 같은 거 해보고 싶다. 한 번도 해본 적 없어."
남편은 속마음을 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수는 남편이 뭘 좋아하고, 뭘 원하는지 7년간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도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지 몰랐다. 수는 입을 열었다.

"우리 참 바쁘게 산다. 그렇지? 나는 당신이랑 같이 식사하는 것도 왜 오랜 기억처럼 느껴질까."
"그러게. 돈 버느라 시간 다 보낸 것 같아. 그래도 둘 다 건강한 게 어디야."
"나는 당신이 회사에서 늦게 들어오는 게 이제는 익숙해서 전화로 늦냐고 묻지도 않아. 이제는. 그런 건 안 서운해?"
"배려해 준다고 생각하고 있어. 근데 내가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우리 둘 다. 서로 배려하느라고 속마음을 얘기하는 일이 많지 않은 것 같아. 당신 생각은 어때?"
"나는 속마음을 말할 줄 몰라. 아빠가 그랬어서 나도 그런가 봐. 근데 또 사는데 불편하지도 않아."
수는 자신과 같이 남편도 혹은 그 누군가도. 자신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하는 것에 두려움이 있는 게 당연할 수 있겠다고 생각카지노 쿠폰. 일부러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 서툰 거라고. 감정불능증처럼 어딘가가 다친 게 아니라면 말이다. 수는 남편에게 다시 물었다.

"당신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해?"

"응? 뭐 그런 걸 물어봐. 알잖아. 축구 보는 거 좋아하고 사람들이랑 시사, 경제 같은 주제로 떠드는 거 좋아하고 누워서 자는 거 좋아해. 그리고 진지하거나 심각한 대화 나누는 건 싫어해."

"지금 심각하다는 건 아니지?"

"어.. 근데 갑자기 왜. 심리치료에서도 이런 거 물어봐? 나 이제 설거지하러 일어날게."

수는 남편과의 대화가 싱겁게 종료되었고 별 소득은 없었지만 7년간 다툼 없이 지낸 것도 서로에게 감정을 통해 말한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툼을 통해서 오히려 서로를 더 잘 알아가는 편이 낫겠다고도 생각카지노 쿠폰. 그렇지만 수는 바른 방법으로 더 나아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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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는 자기 전에 가만히 생각카지노 쿠폰.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어려운지, 어린 시절 기억을 꺼내다 말았지만 유쾌하지 않아서 묻어두고 싶었다. 어린 시절엔 외롭고 심심하고 친구나 엄마, 어른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초조하고 긴장했던 순간이 많았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다는 게 아쉽기만 카지노 쿠폰. 내일 또 출근을 해야 하니까 전등을 껐다. 그리고 하루가 또 시작되고 몸이 피로해 정신이 없는 날이 지나갔다. 밀린 업무를 집에 가져오기도 해서 수영은 일주일에 한두 번 가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도 수는 틈이 날 때마다 생각카지노 쿠폰. 내가 원하는 삶은 내가 만드는 거라고. 지금 이렇게 바빠서 생각할 겨를이 없긴 하지만 분명히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을 거라고 생각카지노 쿠폰. 불안이 수에게 다가올 때마다 수는 피하지 않고 또 왔구나, 하고 담담하려 애썼다.


직장 동료 '유'는 동갑이었고 같은 시기에 들어온 동기이자 팀장이었다. 수가 직장에서 유일하게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둘은 친했지만 적절한 거리가 있었고 사적인 것을 넘나들지는 않았다. 그런 '유'가 승진을 카지노 쿠폰. 과장으로. 수는 유가 부러웠지만 티를 내지 못카지노 쿠폰. 진심으로 축하하지도 않았지만 축하한다고 말하며 선물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카지노 쿠폰. 유는 결혼한 지 3년 만에 아기도 가졌고 육아휴직도 쓰고 돌아왔는데도 책상이 그대로였고 하는 일마다 자신보다 다 잘되는 것 같았다. 근데 승진을 지켜보니 진짜 자신보다 잘 되는 게 확실카지노 쿠폰. 수는 유에게 질투를 느꼈다. 유는 수에게 승진 턱을 낼 테니 시간도 내라며 가방을 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퇴근카지노 쿠폰. 수는 집으로 가는 길에 가만히 생각카지노 쿠폰.


'유가 잘 되는 걸 보는 게 왜 나는 괜히 속이 쓰릴까. 내 인생은 왜 그대로이고 다른 사람들은 계속 나아가는 것 같을까.' 수는 걸으면서 계속 생각했다. 수는 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자신보다 다 나은 인생이라고 생각해 왔다. 사람들을 자신과 비교할 때마다 자존감은 낮아졌고 자신은 가망이 없게 느껴졌다. 이런 생각이 본인에게 하등 유익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수는 이 문제를 두고 심리치료 선생님과 얘기를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일에는 플러스가 있으면 마이너스가 있다는 말을 책에서 본 적이 있다. 과장으로 승진하면 좋겠지만 그만큼 회사에 발이 묶이고 실적을 내야 한다. 회사는 그냥 돈을 주지 않는다. 딱 그만큼만 준다. 무조건 승진이 좋은 건 아니다. 누군가가 잘 되는 것이 꼭 내가 후퇴하는 것은 아니다. 나보다 빨리 간다고 해서 행복을 더 가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각자 잘하는 것이 있고 재능이 다르다. 수는 이렇게 생각하니 불안이 가라앉았다. 어쩌면 인생에서 하는 일마다 진전이 없고 나 자신이 제자리인 것 같은 시기가 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 보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진전이 없다던 그 시절이 그렇게 아픈 것만 있진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 수는 사회초년생 때에 너무 힘들어 하루하루가 버거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에만 누릴 수 있는 게 있었다는 게 그리웠다. 힘이 들고 막막해도 다시 돌아간다면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도 그럴지도 모른다. 남편과 사이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마땅한 취미도 없고 임신에도 매번 실패하고 승진은커녕 월급이 3년째 동결이지만 수는 자신을 사랑하고 싶었다. 감정 표현에도 미숙하고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지만, 그래도 괜찮고 뭐든 나아지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자기가 자신을 믿어주지 않으면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도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듣지 못한 말이 있다면 자신에게 자기가 해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수야. 네가 얼마나 힘들든 얼마나 외롭든 너는 너야. 너는 너 자신을 잘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알아가려고 노력이라도 하고 있잖아. 오늘도 그냥 시간만 보냈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더라도 그런 날이 있는 거야. 누구와도 비교하지 마. 너는 너 자체로 빛나는 존재니까. 나는 네가 앞으로 더 나아갈 거라고 생각해. 너만이 가진 특별함은 누구도 갖추지 못한 거야. 가지지 못카지노 쿠폰고 생각해도 이미 가진 게 너무 많은 걸. 없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이미 가진 것들에 감사하자. 어때?"라고 말하니까 자신이 집 앞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다는 게 자각이 되었다. 이제는 귀가해서 저녁을 해야지. 그리고 남편에게 몇 시에 귀가하냐고 물어야지,라고 혼잣말카지노 쿠폰. 이미 벌써 저만큼 나아간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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