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4
날이 점점 추워진다. 가을과 겨울은 경계가 있기나 한 건지 11월인데 곧 눈이 올 것 같은 날씨다. 코트를 꺼내 입기도 전에 패딩을 개시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벌써 검은 롱패딩을 입는 사람들이 간혹 보였다. 나는 더위에 약한데 저 사람은 추위에 약한 걸까. 그렇다면 사람들은 자기만의 약점이 다른가보다. 내 약점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나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타인을 잘 믿지 못해 남편에게도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조차 어려워한다. 다른 사람이 내 행동을 판단할까 봐 늘 조마조마하다. 그들이 별 생각이 없다고 아무리 스스로에게 말해봐도 나는 내가 맞다고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와 있다. 내가 가지고 태어나지 못한 것들과 이미 잃은 것들(엄마의 부재라던가)은 그저 처음부터 빈 공간인데도 내 약점이라고 느껴진다. 나의 평범함도 약점인 것 같다. 아니, 남들보다 낮은 자존감을 들키지 않으려 일부러 평범한 척하는 건가. 뒤처진다는 느낌과 불안은 늘 잔잔하게 있다. 완벽주의 성향인지 뭔지 정리나 정렬, 질서에 대한 강박이 있다. 내가 한 일에 대해서는 은근히 남들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너무 알아봐 주면 부끄러우니까 그냥 회사에서 무난하게 다닐 정도였으면 좋겠다. 이 모든 게 다 내 약점인 것만 같아서 추위가 더 느껴진다. 나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생각을 떨쳐냈다. 낙엽을 바스락바스락 밟으며 서둘러 마지막 수영 강습을 하러 갔다. 기한이 끝나기도 했지만 이제는 추워서 더는 못 가겠다. 취미 한 번 해보자고 여름에 시작한 수영이 가을에 끝났다. 이게 취미까지는 가진 못했지만 그냥 해봤다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한다. 나는 평소 내 능력온라인 카지노 게임 뭔가 이룬 게 별로 없었는데 가만히 있으니 시간이 이뤄준 것들이 꽤나 있는 것 같다.
남편은 집에 도착하더니 평소처럼 노트북을 열고 업무를 마저 했다. 나는 궁금했다. 왜 그렇게 일에 매여 사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있길래 회사일 말고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는 것일까. 저번 심리치료에서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었다. 선생님이 말했다.
“사람마다 본인만의 고유한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있죠.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화나 짜증 같은 2차 감정(온건하지 못한 강경한 감정)으로 표현하게 되죠. 그냥 화가 난다고만 생각하지 자신의 진짜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뭔지 알아차리기까지 한참이 걸리기도 해요. 집에 늦게 들어온 자녀에게 화를 내는 엄마는 '너 엄마 힘들라고 일부러 이러니?'라고 화를 내지만 사실은 ‘네가 안전하게 귀가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이 된다.’라고 말해야 하죠. 엄마는 자신의 온전한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자녀에게 전달하지 못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자녀에게 실망감만 드러내죠. 하지만 마음을 전달한다면 자녀도 이해할 수 있겠죠. 자신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알아야만 상대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도 파악할 수 있어요.”
나는 선생님이 건네준 온라인 카지노 게임 문답지에 점수를 적어 내려갔다. 사람들이 가진 기본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총 5개였다.
생존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
사람과 소속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
힘과 성취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
자유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
즐거움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
나는 내가 '사람과 소속'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강하다고 착각했었다. 집단에서 소외되는 것이 두려워 회사를 착실히 다니고 원하지도 않는 동기 모임에도 빠진 적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늘 힘들다고 말 못 하고 도맡아서 하고는 힘들어하는 게 일반이었으니까. 그러나 아니었다. 나는 '자유'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높은 사람이었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 나는 다른 사람이 내게 지시하는 것을 싫어한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 내 자아를 스스로가 부정하는 것 같다. 나는 누구도 내게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요구하길 바라지 않는다. 그런 말을 너무 많이 들어왔지만 아직도 소화가 되지 않는다. 맞다. 인생은 살고 싶은데로 살아야 한다. 어릴 때부터 내가 하고 싶어 한 것들은 일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어른들로부터 묵살당했다. 그들은 내가 또래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인생이 어긋날 것처럼 말했다. 내가 만난 어른들은 내가 조금만 또래와 다르다 싶으면 내 걱정을 했다. 엄마도 이모도 할머니도 아빠도 학원 선생님도 담임도 그랬다. 나는 지금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원할 때 하고 싶고 이무도 날 건들지 않았으면 한다. 내 배우자의 자유도 조금도 구속하고 싶지 않았기에 지금껏 캐묻지 않았다. 그럴 이유기 있겠거니, 하는 날이 많았다. 나는 자유가 좋은 사람이었는데 나를 너무 모르고 살았다. 통제나 일정한 틀을 스스로 만들고 그 안에서 안전함을 느끼려 했다. 나는 내가 평범하길 원하고 조용히 묻혀 가기를 원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함부로 도전하지 않고 평타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내가 원하는 게 자유인지 몰랐기에 자유함은 어떤 느낌인지도 몰랐다. 남편과 심각한 갈등도, 깊은 유대도 없는 것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고민이나 갈등을 괜히 만들까 봐 두려워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 나이가 되기까지 자녀 계획도 진지하게 얘기하지 못하고 7년이나 지나왔다. 내가 그동안 탈진했던 이유를 조금이나 알 것 같다. 나는 자유를 원하는데 구속이나 통제를 받는 현실에 억지로 나를 끼워 넣다 보니 고장이 난 것이다. 회복하고 싶었다. 이제는 정말 고쳐보고 싶었다.
남편과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평소 하던 형식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남편은 손은 국을 뜨고 입은 짧게 대답하고 눈은 좋아하는 축구 동영상에 있었다. 평소 남편이 뭘 하든 그냥 그러려니 했지만 그날만은 나를 보라고 말했다.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하자 남편은 이미 하고 있는 거 아니냐며 눈이 동그래졌다. 남편은 씻고 와서 시간을 내겠다고 했다. 우리는 베란다 옆 작은 탁자에 앉았다. 나는 심리치료 시간에 들었던 이야기를 해주며 나는 무슨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있는지, 어떤 사람인지 말했다. 남편은 얘가 왜 이러나 하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꿋꿋했다. 내가 남편에게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 문답지를 주며 작성해 볼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쓰는 시간은 7분도 걸리지 않았다. 놀랍게도 남편은 '생존'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의외였다. '소속'이나 '성취'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큰 사람인 줄 알았으니까. 남편에게 솔직하게 당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 동안 부딪치지 않는 것만으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남편도 본인도 그렇다고 말하며 말을 이었다.
"아. 내가 스물두 살 땐가. 군대에서 정신과 상담을 한번 받은 적이 있는데 감정표현불능증이 의심될 정도로 감정에 무감각하다고 하더라고. 근데 계속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 돈이 드니까, 돈 드는 게 싫으니까 모르는 척하고 살았어. 숨기는 데는 별 문제가 없더라고. 근데 신입직원을 교육하거나 팀끼리 프로젝트를 하는데 나 때문에 그만하고 싶다는 직원이 몇몇 생기는 거야. 본인들의 의견을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 이해가 안 되니까 내 탓이 아니고 그들이 그냥 연약한 거라고 생각했지. 근데 온라인 카지노 게임 누구의 표정을 봐도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 감정이라는 단어에 아무 관심이 없어."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남편이 이해가 되었다. 남편은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검소한 생활에 길들여져 있었고 낭비하면 혼이 나기도 했다. 회사 사람들과 잘 지내는 줄만 알았는데 모든 게 경쟁이고 생존이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답답해하고 본인의 손에서 다 통제하려다 보니 계속 어긋났던 것이다. 회사에서 매번 늦게 들어오는 것도 다른 직원의 일까지 본인이 하겠다고 하고 심하면 다른 부서 일까지 하려다 보니 늦어졌다. 나는 남편이 사람이 좋아서 자주 모이는 줄 알았더니 일이 어그러질까 봐 원치 않는 식사 자리에도 참석하고 일부러 저녁 약속을 만든 것이었다. 그냥 감정의 교류 없이 업무적이고 사무적인 관계로만 노력해 온 것이다. 그는 회사 사정상 일방적으로 내처진 경험이 있었기에 더 간절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생존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 말고는 다른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관심이 있지도 않았다.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게 불편하기는 하지만 못 살아갈 정도는 아니었고 애정 표현도 잘하지 않는 편을 택한 것 같다. 그에게는 돈을 버는 것만이 최우선인 듯했다. 나는 남편의 그런 성향을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확실해지는 것이 두려워서 일부러 모른 척해 온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 둘은 서로 부모님의 도움 없이 결혼을 했고 돈을 벌고 경력을 쌓느라 지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했기에 지하 1층 미니 투룸에서 신혼을 시작해 비록 빚이지만 지금의 27평 아파트에 오게 된 것이다. 우리 둘 다 먹고 사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퍼즐이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윤곽이 드러났다. 나는 용기 내서 말했다.
"그래도 우리는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해.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다시 알아가야 해.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대해서도, 나에 대해서도."
우리는 한 시까지 대화를 했다. 그렇게 길게 대화한 날을 처음인 듯했다. 서로 쓰러져 잠들기 바빴으니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서로에 대해 알아가자고. 돈 버는 욕심 좀 내려놓고 우리가 살기 위해서 이제는 빠뜨린 게 없는지 다시금 돌아보고 노력해 보자고 얘기했다. 다른 문제는 그렇다 쳐도 남편과 감정적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게 막막했지만 문제를 입 밖온라인 카지노 게임 꺼낸 것이 해결의 시작이었다. 많은 일은 문제가 뭔지 알아내는 것부터가 시작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