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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Mar 13. 2025

카지노 게임 날



카지노 게임 날이다. 무더웠던 전날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하늘이 비를 뿌렸다. 늦은 저녁 내린 비가 완전히 떠나지 않고, 구름에 숨어 멜번을 배회 중이다. 구름은 하늘색을 덧씌운다. 고개를 들어 올리면 하얀, 아니 살짝 어두운 아이보리 색으로 가득 찬 하늘이 보인다.



카지노 게임 날은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든다. 우울한 감정이 도로 위로 스며든다. 구름이 해를 가리면 세상의 명도는 낮아지고, 도시는 감성 필터로 찍은 사진이 된다. 인간은 환경에 영향받는 동물이다. 날씨 하나에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움직인다. 비 오는 날에는 슬픈 음악을 듣고 싶고, 해가 쨍쨍한 날엔 두 팔 휘두르며 도심을 걷고 싶어진다. 날씨가 감정을 통제하는 주범이라면, 우울증 환자에겐 날씨 조절 장치를 처방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날씨 영향을 피해 가지 못 한다. 멜번 도심 뒷골목에 위치한 카페 블루 도어로 향했다. 날씨와 어울리는 따뜻한 롱블랙을 주문했다. 평소라면 실내 좌석을 선택했겠지만, 오늘은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차가운 공기와 흐린 하늘이 기분에 맞아떨어졌다. 평소 듣지 않던 재즈 곡을 틀었다. 두 귀에 꽂힌 에어팟으로 색소폰 소리가 흘러들어온다. 흑백 영화 속 장면을 연출하려 했지만, 카페 의자가 지나치게 불편하다. 삼십 대 중반 되니 감성도 척추 통증 앞에선 맥을 못 춘다.



오늘은 평균 온도가 낮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구매한 면 니트를 입었다. 까끌거림 없이 포근한 소재, 약간 두툼한 짜임. 카지노 게임 날에 걸맞은 옷이다. 바지는 디키즈 874, 신발은 부드러운 가죽의 캠퍼 옥스퍼드. 배낭을 하나 걸치고 도심으로 나왔다. 대만인 바리스타가 내려준 뜨거운 커피는 어느새 차가워졌다. 카지노 게임 날엔 커피도 감성에 발맞춘다.



무엇을 할까. 7시에 저녁 약속이 있다. 지금은 12시 40분. 점심으로 간단한 카지노 게임롤 두 개를 먹었다. 호주 카지노 게임롤은 알고 보면 건강식이 아니다. 호주에서 처음 구한 직장이 카지노 게임샵이었는데, 밥을 만들 때 쏟아붓는 초대리(식초, 설탕, 소금 혼합물)를 보고 경악했다. 거대한 냄비에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설탕을 본 이후, 카지노 게임를 건강식이라 부르지 않게 됐다.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당뇨병이 한 발짝 가까워지는 기분이다.



배는 부른데, 마음이 허하다. 카지노 게임 날에는 왠지 허전하다. 배고픔과 마음의 허기짐은 헷갈리기 쉽다. 그렇다고 스시 위로 다른 음식을 쌓을 순 없다. 배 나오고 머리 벗겨진 아저씨가 되는 것보다 아사가 낫다. 아사란 말이 나와서 그런데, 베이비몬스터의 아사는 랩을 맛있게 한다. 시그니처 사운드 'Brrrr 에이스 사'는 끝내주게 멋지다. 아무튼 저녁 전까지 음식 섭취를 피하는 게 좋다.



주어진 옵션은 많지 않다. 이북 들으며 공원 걷기, 혹은 오피스에서 와인 한 잔 마시며 잡무 보기. 산책하기 딱 좋은 날씨다. 움직여야 배 나온 아저씨 신세를 면할 수 있다. 흐린 하늘 아래서 걷는 것은 묘한 안정감을 준다. 책 내용도 잘 들어온다. 여름이 끝나간다. 이번 주 토요일이 마지막 30도대 온도다. 그 이후론 시원한 봄이 찾아올 예정이다. 당분간 카지노 게임 날 보긴 어려울 듯하다.



두서없이 쓴다. 카지노 게임 날엔 할 일이 많지 않다. 커피도 거의 바닥을 보인다. 카페 의자는 점점 더 불편해진다. 앉아 있는 자세가 한계에 도달했다. 결국 감성과 현실의 대결에서 현실이 1라운드 승리를 거둔다. 감성보다 허리 디스크 예방이다. 일어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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