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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프롷 May 24. 2017

노무현, 카지노 가입 쿠폰

얼치기 전직 기자의 아픈 기억

노무현의 피해의식


저런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렇지 않은 기자들도 있습니다.' 라는 부제의 칼럼을. 어쩌다 운 좋게 기자가 되고, 사이즈 큰 특종을 쫓아 이리저리 뛰던 때다. 어디로 뛰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열심히 내달리기만 하던.


2008년 12월의 어느날, 노건평 씨 구속을 하루 앞두고, 노 전 카지노 가입 쿠폰 사저에 가서 리포트를 만들어 오라는 총을 맞았다. 형님의 구속 결정을 앞둔 전직 카지노 가입 쿠폰의 심정을 담은 기사. 법조팀도, 정치부도 아닌 사건팀 나부랭이는 그게 어떤 맥락인지도 몰랐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하루 한 번 사저 앞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기자는 나 혼자. VJ와 함께. 노 전 대통령은 와이어리스 마이크를 든 나를 흘끔 보며 발언 수위를 조절했다. 사인을 해달라는 아주머니들에게, "상황이 너무 잔인해서 어려울 것 같다"고 답했다.


"심경이 어떠십니까?"란 질문을 해야했지만, 이미 필요한 답이 나온 셈. 상황이 잔인하다. 그래. 더 무슨 말이 필요한가. 팩트가 아니라 심경 묘사가 필요한 거라면.. 당시만 해도 한마디 한마디를 비틀어 조롱하던 언론이 차고 넘칠 때였다. 그러기 싫었다.


이윽고 노 전 대통령과 눈이 마주쳤다. 질문 받을 마음의 준비를 한 듯한 표정. '질문할까?' 2초 쯤 고민하다 그냥 카지노 가입 쿠폰를 건네고 목례를 했다. 그러자 돌아온 노 전 대통령의 카지노 가입 쿠폰. 이어지는 한 마디.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죠." 그리고 그는 사저로 향했다.


기사로 말하겠다는 뜻이었다. 내 눈인사의 속내는. 그가 알아차렸을리 없지만. 그렇게 건조한 기사를 내보내고. 좀 더 의연히 대처해 달라고, 그렇지 않은 기자들도 있다는 사족을 달아 글을 썼다. 몇 주 후 나는 검찰로 발령이 났고,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그 수사를 취재했다.


노 전 대통령을 허망히 보내고, 박연차 게이트의 전말을 알게되고, 슬금슬금 발을 빼는 언론을 보면서. 나는 그제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잘 모르는 기자가, 생각하지 않는 언론이, 얼마나 무서운 흉기일 수 있는가를. 그리고 내가 바로 그 흉기였다는 사실을.


나는 얼치기 기자였다. 생각할수록 부끄럽다. 내게 맞지 않는 옷을 벗어제끼고, 다른 길을 걷겠다 마음 먹은 지금도. 문득문득 그 때의 눈인사가 떠오른다. 노 전 대통령과의 유일한 기억. 평생 머릿속을 맴돌겠지.


남은 인생은 조금 더 진중히 살고싶다.

책임질 수 있는 말을 하고, 스스로를 부던히 살피면서.

또 다시 부끄러워지지 않게.


비가 온다. 부슬부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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