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넥서스 - 유발 하라리
가끔 자발적으로 고립되고 싶을 때가 있다. 세상으로부터 나를 떼어내고,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고 싶을 때 말이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부리는 치기이자 호기로운 상상일 테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사는 사람이 하는 말이니 허언에 가깝다. 무리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지만 떨어지면 두렵고, 독립하고 싶지만 자신이 없는 상태. 연결과 분리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존재. 인간이란 원래 그런 게 아닐까.
유발 하라리의 신작 <넥서스는 그런 인류의 습성으로 역사를 재해석한 책이다. <사피엔스가 인간의 사고력을 중심으로 인류의 빅히스토리를 서술했다면 이번 책은 '정보 네트워크'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정보는 집단을 연결, 결속시키는 접합체 역할을 한다. 정보는 진실을 발견하게 도와주고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이 되어준다. 대규모 네트워크 기술의 개발로 더 많은 정보가 더 빨리 오가는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 인간은 더 지혜로워지고 진실에 더 가까워지고 서로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졌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생각이 순진한 발상이라고 일갈한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현실은 그와 영 반대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로 얻은 정보에 현혹, 매몰되어 좀비 떼처럼 몰려다니는 이들을 보면 정보가 오히려 진실을 왜곡하고 집단의 질서를 해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보 네트워크의 역사는 항상 진실과 질서 사이의 균형 맞추기였다. 질서를 위해 진실을 희생시키는 데는 대가가 따르듯이, 진실을 위해 질서를 희생시키는 데도 대가가 따른다. -p186
AI의 발달이 인류를 향한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커지는 요즘, AI는 그 자체가 행위자이기 때문에 인류의 갈등을 증폭시키거나 AI가 인간을 지배하는 미래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이런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정보 네트워크의 역사를 훑어보고 앞으로의 변화를 연구해 보자는 것이다.
정보는 진실만을 담고 있는가? 정보에 오류는 없는가? 정보를 통해 질서를 유지하는 게 가능한가? 진실된 정보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 어느 진영의 허구가 더 그럴듯한지, 어느 진영이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을 연결했는지가 더 중요한 세상이 되지 않았을까? 인간은 AI와 함께 공유해야 하는 정보 네트워크에서 진실을 발견하고 질서를 유지할 수 있을까? 불가해하고 이질적인 지능인 AI와의 공존이 가능할까?
저자는 스스로 결정하고 아이디어를 생성하는 능동적 행위자인 컴퓨터가 정보 네트워크의 기본 구조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무비판적으로 명령을 수행하며 행동의 결과에도 무관심한 냉혈한. 어떤 관료제보다도 강력하며 통제불가능한 존재.
어쩌면 우리는 과거 전체주의 국가에서 행해졌던 것보다 더 집요한 감시, 통제 사회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미 위치, 관심사, 개인 정보 등 우리의 많은 것들을 자발적으로 컴퓨터에 제공하고 있지 않은가. 책을 읽을수록 암울한 미래가 그려졌다.
함께 책을 읽은 친구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우리에게 닥친 정보 네트워크의 문제는 기술이 아닌 정치로 풀어야 하며 의지의 문제일 뿐이라고.
친구 A : AI가 최선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가정하면, 한정된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인간은 이해관계, 탐욕 때문에 할 수 없던 분배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도 있지 않겠나. 컴퓨터라는 단일 시스템을 철인으로 상정하고 그의 지배를 받는다는 데에 거부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인간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정의롭게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공리, 정의를 어떻게 규정하는가의 문제가 남아있겠지만 그것도 합의가 가능하지 않을까.
유능한데 도덕적 목적까지 제대로 설정된 압도적인 현자의 탄생, 그가 지배하는 사회는 천국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반드시 인간이 의사결정해야 하는 영역을 만들어두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비효율이 필요한 영역이 있을 테니 말이다.
알고리즘에 잠식당하고 SNS에 중독된 인간의 경우도 사실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주기적인 알고리즘 클리닝'을 실시하여 편향된 정보에만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 주기적인 피드백과 경고를 주는 것으로 극복 가능하다. 기술적으로 힘들 것 같지는 않다. 정치가 기업에 이 요구를 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친구 B : 행위자로서의 컴퓨터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책에서도 나와 있듯이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두 개의 AI가 세계를 가르고 통제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지만, 중국의 딥시크 개발 과정을 봤을 때 적은 인원과 저렴한 비용으로도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았다. 강대국을 중심으로 하는 체제 경쟁을 예상하기보다는 IT 후발국들의 합류가 미, 중으로 양분화된 체제에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A의 말대로 최선의 시스템이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다줄지도 모르지만, 완벽한 '정의', '공리'라는 게 있을까. 민주주의가 존립하는 것도 완벽하고 절대적인 정의라는 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 아니던가. 이질적인 존재를 우리가 만든 체제를 넘어서는 절대자로 만든다면 인간은 생존할 수 없다고 본다. 목적을 엄격하게 통제해서 인간에게 이롭게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정치가 해줘야 할 문제다.
우리가 지혜로운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정보에 대한 순진한 관점과 포퓰리즘적 관점을 모두 버리고, 무오류성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강력한 자정 장치를 갖춘 제도를 구축하는 힘들고 다소 재미없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 p560
컴퓨터가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인식하도록 훈련하는 것, 컴퓨터가 내린 결정에 설명을 요구할 권리를 성문화하는 것, 알고리즘을 감시하고 승인 여부를 결정할 관료 기관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 이것들만이 컴퓨터의 감시와 통제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렇게 했을 때 컴퓨터와 인간의 연결, 인간과 인간의 평화로운 연결, 협력, 연대가 가능해지는 미래를 꿈꿀 수 있다. 어쨌든 우리는 고립보다는 카지노 가입 쿠폰 원하는 존재니까.
* nexus : 사람이나 사물 사이의 관계 또는 카지노 가입 쿠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