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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문 Jan 19. 2025

표지가 예뻐 고른 책?

이승우(2009). 한낮의 시선. 자음과모음

카지노 쿠폰

책 표지를 보자마자 기시감이 들었다. 어디서 봤던 혹은 본 것 같은. 부랴부랴 루시아 벌린(2019)을 검색했다. 아닌데? 비슷한 것도 같고. 워낙 그가 쓴 《청소부 매뉴얼》이 강렬해서였을까? 정확히는 표지 때문이지만. 아니, 루시아가 뉴멕시코에서도 살았던 것으로 기억해서 그랬었나? 더불어 뉴멕시코 어도비 건축양식이 이런가? 표지가 꼭 그리 보였기 때문인데, 그로 인해 루시아 벌린이 생각난 건 뜻하지 않은 부수입(?)이지만, 이런 연상을 하게 한 건 주인공 한명재가 도시로 떠났기 때문이다. 휴전선 인근 인구 3만 명의 작은 도시로. 낯선? 그렇다. 카지노 쿠폰를 찾아 처음 가는 도시.


그는 왜 떠났을까? 카지노 쿠폰를 찾아 삼만리? '엄마 찾아 삼만리'는 알 것 같은데 카지노 쿠폰를 찾아서? 어떤 아들이건 자식인 아들이 생긴 근원이 카지노 쿠폰라서 카지노 쿠폰를 찾는 본질적인 아들을 작가는 그리고 싶었던 것일까? 카지노 쿠폰라는 존재가 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건 알겠는데, 결과적으로 책을 통해 이 주제를 심오하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작가만큼 사는 것에 대해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져보지 않아서 그랬던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소설이 크게 와닿지 않았기에 이런 글을 쓰고 있겠지?


시작은 좋았다. 릴케가 쓴 말테의 수기의 문장과 로맹 가리의 책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2010》을 인용해서. 그렇게 한명재는 살기 위해서 몰려든 도시인지, 죽기 위해서 모여든 도시인지 그곳 휴전선 근방 어디로 카지노 쿠폰를 찾아 떠났던 것이다. 이렇게 된 건 결핵에 걸려 요양차 머문 천내라는 곳의 전원주택에서 은퇴한 심리학과 교수를 만났기 때문. 그로부터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가 간 그곳 도시는 잠시 머무는 곳이다. 아들의 자리는 그곳에 없었다. 그곳엔 그저 카지노 쿠폰의 자리만 있는 곳. 그곳에 가서 뭘 할 것인지 계획 없이 그저 간 곳. 카지노 쿠폰가 있으니 카지노 쿠폰를 만나러 간 것.


지금까지 주인공 한영재는 카지노 쿠폰가 없다는 것만 빼만, 아니 카지노 쿠폰가 없어도 잘 살아왔다. 어느 날 문득 카지노 쿠폰를 알고 싶어서 떠난 거고. 그렇게 된 배경엔 어머니가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였다. 카지노 쿠폰가 없어도 그걸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란 건 능력 있는 어머니 덕분인데 왜 이제야 카지노 쿠폰를 찾으려는 것일까? 천내에서 만난 이웃이 그로 하여금 카지노 쿠폰의 부재를 느끼게 한 것은 알 것 같다."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어떤 경우에도 부정되지 않는 것이 있는데 카지노 쿠폰야말로 그런 존재"라는, 카지노 쿠폰 크게 못 느끼고 살아온 영재 보고 "카지노 쿠폰는 죽은 것이 아니라, 죽임을 당한 거네, 젊은이의 의식 속에서(p.34)"라고말했기에.


결국, 외삼촌으로부터 알아낸 카지노 쿠폰 이름과 주소를 듣고 낯선 도시에 카지노 쿠폰를 찾아 나서는데, 가서 보니 카지노 쿠폰는 이미 다른 가족의 가장이면서 누군가의 카지노 쿠폰다. 그쪽 지역에서 성공한 농장 대표라는 직업을 가지고. 여기서 잠깐, 그가 쓴 소설 《이국에서, 2022》도 그가 모신 보스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나서는데, 여기선 자기 카지노 쿠폰가 선거에 나선다. 남자인 카지노 쿠폰 세계를 말하기 위해서였을까? 선거?


암튼, 선거란 이기기 위해 나서는 것. 그런데 박빙의 상태, 누가 이길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확실히 약점이 될 배다른 아들이란 소재는 카지노 쿠폰 입장에서 보면 금기 중의 금기 사항. 상대 후보자는 이를 이용하려 하고, 카지노 쿠폰는 이를 막으려 한다. 그렇다고 이런 전개가 크게 전체 줄거리를 흔들지 않는다. 중요한 건 카지노 쿠폰를 카지노 쿠폰라 부르려 했는데, 카지노 쿠폰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 그러고 보니 홍길동 현대 버전? 신분의 차이가 없으니.


결과적으로 전원주택 이웃이 얘기한 것과는 다르게 카지노 쿠폰는 자기 아들을 죽지는 않았으나 죽은 것처럼 의식하고 실제로 그를 그렇게 대했다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가 났다. 아들이 그런 것이 아니라 카지노 쿠폰가 그랬다. 작가는 또한"사랑하는 카지노 쿠폰든, 사랑하지 않는 카지노 쿠폰든 다를 바 없다. 그는 그저 카지노 쿠폰일 뿐이다. 아들들은 그저 카지노 쿠폰일 뿐인 존재를 그저 찾을 뿐이다(p.177)"라고 말하니, 처음에 영재의 의식 속에 죽음을 당한 건 카지노 쿠폰지만, 현실 속에서 죽음을 당한 건 아들이다. 자식은 카지노 쿠폰니까 카지노 쿠폰를 그저 찾는데 카지노 쿠폰는 카지노 쿠폰일 뿐이라서 자식을 찾지 않는다?


카지노 쿠폰란 존재를 의식하지 않기에 카지노 쿠폰는 죽임을 당한 것이라는데, 반대로 카지노 쿠폰란 존재를 의식했기에 카지노 쿠폰를 찾는 건 카지노 쿠폰 입장에서 보면 죽임을 당한 것은 아니기에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럼, 외삼촌이 했던 질문. 카지노 쿠폰를 왜 찾는지에 대한 물음은 해결이 된 것일까? 그냥 본능이기에? 핏줄을 찾으려는 유전자의 지난한 혹은 본능 때문에? 카지노 쿠폰도 그저 아들인 존재를 그저 찾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그뿐이다. 카지노 쿠폰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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