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르쿠스 가브레일 <허구의 철학 (2024)을 읽고
“사회 구성주의는 자신의 비판을 정당화는 차원에서는 스스로 달성하고자 하는 바를 이뤄 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무언가가 (이를테면 사람들에게 부과되었거나 사람들이 스스로 받아들였으며, 그들에게 해롭지 않은 성 역할이)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으로부터 그 무언가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도출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비판적 주장이 단지 사회 시스템을 달리 조직 할 수도 있다는 취지라면, 사회 시스템을 다르게 구성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더 나음이 입증되지 않는 한, 그 비판적 주장으로부터 아무것도 귀결되지 않는다. 비판은 투쟁이라는 사회적 구성주의 견해는 존재론적 수준에서 붕괴한다.” - 마르쿠스 가브리엘, <허구의 철학, 46-47면.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허구의 철학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왜 우리는 변화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이 제시된 것 같다. 인용에서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어떤 사회적 구성이 다수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해롭지 않다고 여겨지는’ 한에서, 그 비판은 어디까지나 비판으로 끝난다는 차가운 지적이다.
즉, 어떤 구조가 '해롭지 않다는' 안정적인 레벨로 자리를 잡으면, 더 나은 형태로 변화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그 구조가 다수에게 ‘해롭다고 여겨’지면서, 새로운 구성의 ‘더 나음이 입증되지’ 않으면 기성 구조에 대한 비판은 공허한 말들로 끝난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사회적 비판이나 요구들이 공허한 말로 대부분 끝나는 것은, 그것이 현재 체제의 안정성을 깨뜨릴 정도로 다수가 동의하거나, 혹은 그 제안으로의 변화가 더 낫다고 증명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솔직히 말해줘서 좀 시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체제의 안정성을 깨뜨릴까? 과연 다수가 그 불안정성에 동의해줄까? 그리고 어떻게 자신의 주장이 더 나은 모델이라고 확신하고, 증명해낼 수 있는가? 과연 논변만으로? 여기에는 역학 관계가 끼어들 수밖에 없는데 카지노 게임 사이트?
가브리엘의 지적은 일견 맞는 말이고, 그가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하버마스를 떠올리게 하는 공론장의 역할과 의견 불일치를 강조하며, 불평등한 차이를 해소하는 제도의 점진적 발전을 제시한 것에도 공감한다. 그런데 그의 사회학적 모델과 제안은 합리적이지만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공론장 하나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허구와 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인간이 존재하는 국가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그의 제안은 납득하겠지만 실현 불카지노 게임 사이트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다만 가브리엘의 취지와 진정성은 의심하지 않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