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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ding Lady Apr 06. 2025

무료 카지노 게임 타자화, 어린이 미술관의 역설

어른의 시선으로 구분지어지는 무료 카지노 게임 세계

최근 미술관의 역할이 변화하고 있다. 이전의 미술관이 문화적 자산 수집과 아카이빙에 주력했다면, 오늘날에는 지역사회의 문화적 커뮤니티이자 플랫폼으로 그 기능을 확장해 나간다. 콘텐츠 측면에서도 진입장벽을 허물려는 노력이 두드러져, 과거에 교육받은 성인만이 즐길 수 있었던 전시에서 벗어나 어린이, 노인, 장애인 등 모두를 위한 교육 기관이자 놀이터로 변모했다. 특히 어린이에 대한 개방성은 현저하여, 대부분 미술관들에서는 '키즈 프렌들리' 콘텐츠를 갖추고 있다. 나 역시 아이와 함께 종종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방문하며 아이에게 적합해 보이는 예술 프로그램에 참여하곤 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미술관에 갈 때 그곳에 어떤 전시가 열리는지보다는, 우리 아이가 참여할만한 교육이나 도슨트 프로그램이 있는지, 어린이 전시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지를 먼저 찾아보게 되었다. 그때부터였나보다. 미술관이 나와 아이의 소중한 주말을 빼앗고 있지 않은지 의문이 들기 시작한 것이.


무료 카지노 게임최근 대부분의 미술 전시는 연계 프로그램으로 키즈 도슨트와 클래스를 운영한다. 무료 카지노 게임 5세 때의 참여 장면.


무료 카지노 게임를 타자화하는 어린이 미술관의 역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Paul-Michel Foucault, 1926~1984)는 근대적 주체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타자'를 설정한다고 말했다. 성인 중심의 사회에서 아이는 종종 이러한 구분의 대상이 된다. 우리 사회가 아이를 타자화하는 방식은 일상적 차원에서부터 제도적 차원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우리가 "아이니까"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순간들이 있다. '어른들의 대화'라며 아이를 의사결정과 소통의 과정에서 배제하거나, 무료 카지노 게임 감정적 반응을 '철이 들면 나아질 일시적 상태'로 치부하는 태도는 아이를 나와 같은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는 사례들이다. 상업 공간에서 '노키즈존'을 설정하는 경우, 정치적으로는 '미래의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이 현재의 시민으로서의 법적·정치적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도 제도적 차원의 타자화라 할 수 있다.


예술의 영역에서도 이런 구분은 명확하게 나타난다. 특히 미술관의 '어린이 전시실' 혹은 '어린이 체험 공간'은 이중성을 지닌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의 눈높이와 신체적 특성을 고려한 배려의 표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진지한' 예술 공간과 아이들의 공간을 분리하고 아이의 감상과 참여를 별도의 프로그램에 격리하여 문화적 계층을 만든다. 이러한 분리는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특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장점이 있으나, 동시에 아이의 예술 감상과 참여를 '본격적인' 예술 활동과 구분하는 경계를 제도화한다. 아이들이 전시장의 소음과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분리가 이해되는 측면이 있지만, 국공립을 필두로 대부분의 미술공간이 이러한 분리를 당연시하는 것은 우려스럽다. 만약 신체적 특성만을 근거로 '장애인 전시실'을 별도로 마련한다면 어떤 반응이 있을지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구분은 아이를 문화적 타자로 만드는 메커니즘임을 깨닫게 된다.


물론 어린이 미술관이나 전용 프로그램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양한 공간과 경험이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이러한 구분이 절대적인 벽처럼 인식되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으로 여기거나 불편하게 느낀다면 그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최근에는 일반 전시장에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반대로 어린이 미술관에 가면 아이들로 넘쳐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른의 공간'과 '아이의 공간'의 이분법적 구조가 공고해지는 것은 아이들의 요구라기보다는 성인의 편의가 우선시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아이를 미숙한 존재로 구분하는 시선, 그에 따른 부모의 불편한 감정, 그리고 동질의 집단 속에 존재할 때의 안정감으로 인해, 우리는 서서히 '우리가 아는 미술관 공간'에서 아이를 분리해 냈다.


무료 카지노 게임예술의전당 1101라운지 프로그램 참여 모습. 재료를 마구 써 볼 수 있는 것은 키즈 클래스의 장점이다.



고급 교육기관인가, 키즈카페인가: 변화하는 무료 카지노 게임 역할

나는 가끔 내가 전혀 예술에 대한 욕구와 에너지가 없을 때에도, 그저 아이를 맡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어린이 대상 전시연계 프로그램을 찾는다. 미술관에서 성인과 아이 공간의 경계가 뚜렷해지면서, 반대로 미술관과 미술학원의 경계, 미술관과 키즈카페의 경계는 모호해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미술관이 어린이를 위한 고급 교육기관으로 포지셔닝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는 것 같아 한편으론 고무적이지만, 이는 동시에 부모의 지갑을 여는 사교육 시장을 미술관이 영리하게 공략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이를 클래스에 들여보낼 때면 '내가 어릴 때 미술관에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어떻게 느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의 전시 설명을 듣고 그림도 그려 보니 좋았을까, 아니면 동네 미술학원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을까, 혹은 이 새로운 공간을 엄마와 함께 보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을까?


어른의 공간에서 아이들이 환영받지 못하듯이, 마찬가지로 아이의 공간에서 어른은 방황하게 된다. 사실 어떤 어린이 전시는 성인이 보기에도 놀랍도록 깊은 사유의 여지를 주는데, 특히 아이들의 진지한 예술 감상을 위해 기획된 공간에서는 성인에게도 종종 새로운 시각을 선사한다. 하지만 키즈카페를 연상시키는 어린이 미술관에 기꺼이 발걸음을 옮기는 어른은 드물 것이다.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공간 중 하나는 북서울시립미술관의 어린이 전시실이다. 처음 방문했을 때 그곳에는 유현미 작가의 <소프트 카오스: 공간 상상이라는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흔히 ‘어린이용’이라 표현되는 귀여운 그래픽이 아니었고, 3차원 도형과 사물들을 2차원으로 변환하는 실험을 통해 시공간과 장르의 경계를 탐구하는 진지한 컨템포러리 전시였다. 놀라웠던 건 작품 자체는 성인들도 즐길 수 있는 아트이지만 그저 작품과 캡션의 위치가 아이들도 볼 수 있도록 맞춰져 있고, 구어체로 된 전시가이드가 있고, 편안한 관람을 위해 신발을 벗도록 하는 정도의 사소한 배려 정도만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작은 변화만으로도 23개월 아이는 놀랍도록 쉽게 경계를 허물고 작품과 교감했다. 그날 나는 아이의 몰입하는 예상 외의 모습을 지켜보며,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아이를 위한 공간’이 너무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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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 서서, 전시장 중앙부부터 코너까지 구석구석 다니며 <소프트 카오스: 공간 상상 전 관람 중인 23개월의 무료 카지노 게임.


유연한 공존, 모두를 위한 환대

미술관은 이제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사회적 담론과 문화적 실천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는 아이를 타자화하는 구조적 관행을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분법적 구분이 아닌 유연한 공존의 방식이다. 아이와 성인이 각자의 방식으로 예술을 경험하되,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애쓰는 것이 아닌, 서로의 시선을 통해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되길 바란다. 내 아이가 방문하는 미술관에 바라는 것은, 내가 그곳에 갈 때 기대하는 바와 전혀 다르지 않다. 아이들이 (어린이 전용 공간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미술관 안에서만큼은 충분히 환대받기를.

그 이후 북서울시립에 종종 갔다. 신미경 작가의 <투명하고 향기나는 천사의 날개 빛깔처럼(좌), 멜라니 보나요 작가의 <터치미텔(우)



[참고문헌]

- 베리타스알파 편집부, 「감시와 처벌(미셸 푸코)」, 베리타스알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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