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만 의사의 선택
"소중한 것 중에서 고통 없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
척추만곡증 산모가 배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잠시 멘털이 나가려 할 때 정신을 차리고 우선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심장과 폐기능이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내과 협진이 필요했다. 수술 중에 갑자기 심부전증이 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 진통이 올지, 언제 갑자기 산모의 상태가 나빠질지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수술을 잡아야 했는데 그러면이삼일 정도밖에는 여유가 없었다.수술장 사정은 어떤지 마취과와 간호팀 사정은 어떤지알아봐야 했다. 스크럽에 들어올 간호사는 그들만의 스케줄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에 전공의가 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누가 적당할지도 고민하고 사전에 조율해야 한다. 위험성이 높은 수술이므로 경험이 많은 선임 간호사가 들어오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마취과 선생님의 의견을 구하는 일이었다.
제왕절개를 위해서는 마취가 필수다. 간단한 피부 병변에 대한 수술은 국소 카지노 게임 사이트 하거나 아니면 아예 마취 없이 수술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제왕절개 같은 큰 수술은 마취 없이 하기는 어렵다. 마취과 협진 요청서를 통해 들은 대답은
척추 카지노 게임 사이트 불가능
전신 카지노 게임 사이트도 내과 전문의의 소견을 바탕으로 가능 여부를 판단하여야 하지만 아마도 어려울 것으로 추정됨
추가 문의 사항은 다시 협진 요청할 것이었다.
내과 교수님께 협진 요청서를 작성해서 보냈다.
경도의 척추만곡증은 임신이나 출산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척추만곡증이 심할 경우 대부분 폐 기능이 떨어진다. 커진 자궁으로 인해 보통의 산모도 폐 기능이 영향을 받게 마련인데 척추만곡증인 경우 휘어진 척추가 폐를 압박하기 때문에 폐 기능이 상당히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심장 기능은 폐 기능과 서로 상관관계가 있어서 폐 기능이 저하되면 심장 기능도 저하되게 마련이다. 예상대로 내과 교수님은 임신부의 현재 심장과 폐 기능은 정상인의 20% 밖에 되지 않는 상태라서 가벼운 일상생활 정도 외에는 하기 어렵다는답변을 주었다. 임신은 물론이고 출산도 위험 부담이 아주 높다고 했다.제왕절개 수술을 위해 전신 마취를 한다면 다시 원래 상태로 회복하기 어려우니 전신 마취는 권하지 않는다고 덧 붙였다. 협진 내용을 받아 들었을 때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결국 할 수 있는 방법은 국소 마취를 해서 수술을 하는 방법뿐이었다.
나는 4년 차 수석의로 파견 근무를 나갔을 때를 포함하여 제왕절개 수술 경험은 동료들에 비하여 적지는 않았다. 제왕절개 수술 자체에 대한 부담은 별로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왕절개 수술을 국소 마취로 해본 적은 없었다. 아마 다른 의사들도 국소 마취로 제왕절개 수술을 해 본 경험은 없을 것이다. 제왕절개는 피부 절개부터 시작해서 근막의 절개, 복막의 절개, 자궁벽의 절개 순서로 이루어진다. 피부 절개야 국소마취로 어찌어찌한다고 해도 근막이나 복막, 자궁의 마취는 국소 마취로는 해결할 수가 없다.
원래 모든 외과 수술이 그렇지만 수술과 마취는 실과 바늘의 관계다. 그 점은 산부인과 수술도 마찬가지다. 예정된 수술이든 응급 수술이든 카지노 게임 사이트 하지 않고 수술을 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가볍게는 국소 마취부터 전신 마취까지 마취의 종류는 다양하다. 국소 마취는 피부에 가해지는 의료 시술 때 하는 것이고 의사라면 연륜이 얕던 깊던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척추 마취나 전신 마취는 고도의 술기도 필요하고 혹시 생길지도 모르는 부작용에 대한 대처도 필요해서 마취과 의사가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므로 마취과 의사 없이 척추 마취나 전신 마취가 필요한 의료 행위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 산모처럼 척추 마취도 전신 마취도 할 수 없다는 말은 결국 수술을 할 수 없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개인병원에서 이런 상황에 마주하게 되면 마취를 해 줄 수 있는 더 상급의 병원으로 전원을 보내면 된다. 그러나 서울대 병원은 더 이상의 상급 병원이 없는 최종 종착지에 해당하는 3차 병원이다. 냉정하게 마음을 가다듬고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런 고위험 산모를 전공의인 내가 수술을 담당하고 뒷감당까지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고 생각했다. 산과 담당 교수님께 산모의 상황을 말씀드렸다. 중언부언하면서 설명했지만 요지는 교수님께서 그 산모를 맡아 주십사 하는 부탁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아니 어쩌면 마음속으로는 사실 예상하고 있었지만 교수님께서는 거절했다. 마취과에서 마취를 해 줄 수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말씀드렸을 때 그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너무 실망스러워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럼 하버드 대학으로 보내면 되겠네"
답답한 마음에 하신 농담이라고 생각하지만 절박한 상황의 산모를 두고 농담을 한다는 것이 교수로서 적절한 처신은 아니다. 개인 병원에서 대학 병원으로 전원 하는 것도 아니고 국내 최고라고 하는 서울대병원에서 다른 나라의 대학으로 보낸다? 보낼 수도 없거니와 하버드 대학이라고 해서 이 산모가 더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서울대병원의 산부인과 교수가 자긍심도 자신감도 없는 것처럼 여겨져서 내 마음속에서 그 교수님께 실망한 마음은 이후로도 없애지 못했다.
결국 교수님께 산모를 넘기는 것은 실패했다. 원래도 그 교수님은 그렇게 고위험 산모들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일을 맡으려고 하지 않는 편이었다. 따라서 애초에 그런 기대를 한 내가 잘못이다. 이제 남은 일은 척추 마취 없이 전신 마취도 없이 그냥 쌩으로 즉 국소 마취 만으로 제왕절개를 시행하는 일뿐이다. 국소 마취를 할 경우 마취제의 최대 사용 용량은 얼마인지 마취 지속 시간은 얼마인지 확인을 하는 일이 남았다. 전신 마취 경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팔다리의 움직임은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하는 문제도 생각해 두어야 했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다음날의 수술을 생각하면서 눈을 붙였다.
수술 당일이 되었다. 밤새 잠을 설쳤다. 지금도 그렇지만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으면 숙면에 들지 못하는 편이다. 담대한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나처럼 소심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산부인과와 같은 치열한 과목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30년 이상 이 일을 하고 있으니 세상사 참 아이러니하다.
피부에 폭넓게 국소 마취를 하고 하복부에 메스를 천천히 그었다. 피부를 통해 피가 배어 나왔다. 수술천으로 가려져서 산모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산모의 얼굴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 산모에게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후 근막의 절개나 자궁의 절개까지 대략 10여분 정도의 시간이 그날따라 무척 길게 느껴졌다. 산모는 다행히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 통증을 잘 견뎌 주었다. 처음 하는 제왕절개 수술처럼 긴장감으로 얼굴과 목에 땀이 흘렀다. 아마 다른 팀원들도 불안함과 걱정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산모는 아무 소리도 없이 너무도 조용했다. 산모는 살면서 숱한 위험한 고비를 넘겼을 것이다. 그런 고비를 해쳐 나온 순간들이 모여서 그런 힘을 주는 것 같았다. 중간에 잠깐 신음 소리 같은 것이 들린 것 같았지만 통증으로 몸부림치거나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드디어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는 건강했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산모와 다르게 아기는 외견상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전쟁터에서 승전을 알리는 북소리처럼 아기의 울음소리가 수술실 가득 퍼졌다. 사실 산부인과에서 이루어지는 자연분만 현장이나 제왕절개 출산 현장은 전쟁터와 비슷했다. 다만 적군이아니라 건강의 악화와 생명의 소실이라는 이름의 적에 대항하여 싸운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자궁의 봉합과 복막과 근막의 봉합에서 피부 봉합까지 끝났다. 일반적인 다른 마취의 수술과 다름없이 끝났다. 다행히 출혈도 많지 않았고 똑바로 누운 자세로 수십 분을 견뎌야 해서 산모는 호흡도 불편하고 무서웠겠지만 머리맡에 있는 마취과 선생님이 산소를 투여하면서 상태를 보고 있었다.
전신 마취를 하지 않은 덕분에 아기가 나오는 순간, 아기 울음소리 나 의료진의 말소리를 산모가 오롯이 들을 수 있었다. 요즘은 제왕절개 때 경막 외 마취나 척추 마취를 하기 때문에 깨어서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이 어렵지 않다. 수면 마취를 병행하면 아기의 출생 순간을 못 보기도 하지만 원하면볼 수도 있다. 다만 30년 전의 과거에는 제왕절개시 대부분 전신 마취를 했기 때문에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아기를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에 반하여 어쩔 수 없이 국소 마취를 했기 때문에 그 산모는 아기의 출생 순간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위험한 수술에 국소 마취로 통증도 상당했겠지만 대신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은 그 산모에게 주어진 작은 선물이었다. 아기를 처음 본 산모는 기쁨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을 것이다.
자연 진통을 하다 힘들게 난산으로 흡입기를 이용하여 출산을 하거나 결국 제왕절개를 한 산모들은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수월하게 자연분만 하거나 혹은 진통 없이 수술한 산모들에 비하여 아기를 얻었다는 감동이 훨씬 더 커 보였다.그렇게 산과 의사로 일하면서 깨달은 것 중의 하나가 무언가 값지고 소중한 것들은 고통이나 대가 없이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무런 수고나 고통 없이 얻어진 것은 그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거나 설사 있더라도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하여 가치가 덜하다고 느껴진다는 것이 내가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이다.누군가는 도서관에서 인생을 배웠다고 하던데나는 산모로부터 혹은 환자로부터 인생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