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 12월 결혼했다. 남들이 하는 웨딩홀에서의 그런 결혼식이 없는 '노웨딩' 결혼을 했다.
구남친(현남편)과 나는 올해 10월로 딱 5년 연애했다. 내 나이 서른 중반이기에 결혼에 대한 생각(또는 압박)은 항상 있었고, 그래서 만난 지 3년쯤 되었을 즈음에 한차례 결혼식을 준비했었다. 식장도 계약하고 플래너도 만났다. 둘 다 결혼식에 대한 아무 로망이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부모님들을 위해 소위 남들이 하는 건 다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시아버지의 과한 간섭이라는 산에 부딪혔고 우린 결국 놓아버렸다.
힘들어하는 남편을 모른척하고 비위 맞춰가며 식을 강행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리의 결혼'이었다. 별로 하고 싶지도 않은 이 세레모니의 호스트가 되는 여정 자체가 스트레스 만땅인데 이렇게까지 주인공들을 힘들게 하는 파티가 어디 있나 싶었다.결혼은 분명 행복한 일이어야 하는데 이렇게까지 안 행복할 수 있나 싶었다.그래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 엎었다. 23년 2월이었다.
우리는 이미 동거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혼을 엎은 뒤에도 쭉 같이 살았다(양가 모두 알고 계셨다). 아이러니하게도 '고난의 결혼 길'이 중단된 후 우리 둘은 더 돈독해졌다. 연인을 넘어 동반자로 끈끈해져 갔다. '결혼을 엎는다'는 무시무시한 결정이 파혼으로 가는 길이 아닌 우리가 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선택하기 위한 길이라는 걸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잘 이해하고 있었다.결혼은 하나의 장치이자 제도일 뿐 진짜 중요한 건 우리 둘의 본질적인 관계이자 사랑이며, 그것은 여전히 견고하다는 걸 서로가 잘 알고 있었다. 크고 작은 고민이나고난의 순간들마다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생각해"라고 되뇌이는 커플이라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걸 보고 있는 부모님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특히나 사돈의 횡포로 딸의 고생을 봐야 했던 우리 부모님은 더더욱. 식을 엎은 후 결혼의 기역자조차 꺼내지 않는 딸의 동거가 얇은 크리스탈 와인잔처럼 조마조마해 보였을 것이다. 그러던 24년 여름, 유난히도 더웠던 그 여름날, 엄마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부탁을 했다.
"올해 안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카지노 게임 사이트 끝냈으면 좋겠어. 둘이 외국에 나가 둘만의 서약식을 하든, 레스토랑에서 가족식을 하든. 어떻게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