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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초롱 Feb 19. 2025

[글쓰기로 먹고살기] 나는 글쓰기 노동에 맞는 카지노 쿠폰일까

여행 에세이의 고전이라는 한비야 작가의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이게… 이런 책이었나? 강인하고 주도적인 여자의 낭만적 여행기 아니었나? 소제목이 너무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라 지금의 웹소설, 아니 유튜브 섬네일 뺨을 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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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부 지도자와 나눈 열흘간의 사랑 - 마지막 날의 뜨거운 입맞춤”

“종군기자 말만 믿고 겁 없이 전쟁터로 | 여자는 집 아니면 무덤에 있어야 한다.”

“누나, 콘돔 가지고 다녀요?” | 빗속의 귀곡 산장”

“닭 잡는다고 식칼 들고 설쳐 | 벌거벗고 근무하는 누드 경찰서장”

“팔미라에서 읽은 한국인 편지 | 칠겹살 시리아 여자들과 알몸 사우나”


왜 이렇게 야한 걸 좋아해! 나는 한비야의 책을 들고 깔깔 웃었다. 그녀의 책을 읽은 지 벌써 십 년도 넘었다. 내 기억 속에서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은 상당히 미화된 상태였다. 나도 저런 멋진 여자가 되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그렇게 모범적인 여행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책이 나온 게 2007년 걸 보니, 콘텐츠 업계의 ‘어그로 끌기’는 전통이 꽤 오래된 모양이다. 막연히 옛날 책은 좀 더 교양 있는 마케팅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그 후로 한비야 작가는 승승장구, 베스트셀러도 되고, 강연도 양껏 하셨다. 출판사의 어그로 끌기와는 별개로 그녀의 책은 참 근사했다고 생각한다. 책 자체도 그렇지만, 그 시대 여자들에게 상징적인 존재가 되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어그로’가 아니었으면, 그녀의 책이 그렇게 근사한 줄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가끔 생각한다. 나라면 그런 소제목을 달고 책을 낼 수 있었을까? 없었을 것 같다. 까놓고 보니 다른 내용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런 제목을 다는 것 자체에 수치심을 느끼며 출판사 사무실 바닥에 누워 발버둥을 쳤을 거다. “아, 몰라! 그런 제목으로는 안 낸다고요!”


‘글쓰기로 먹고살기’를 주제로 잡고 이 이야기를 하는 건, 한비야 작가 같은 태도를 가진 사람이 글쓰기 노동자로 살기에 훨씬 유리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누가 글쓰기 노동자에 적합한 사람일까? 첫 번째 사람은 ‘나를 드러내는 부끄러움을 참을 줄 아는 사람’이다.


카지노 쿠폰이 아저씨는 이런 자기계발서를 내고도 파산을 했다 ㅋㅋ


첫 번째, 나를 드러내는 부끄러움을 참을 줄 아는 카지노 쿠폰


다른 예술가들도 자신의 작품을 내보이는데 부끄러움을 갖지만, 글 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글을 내보이는 데 더 조심스러운 것 같다. 글쓰기를 처음 하는 사람들의 세 가지 어려움 중 하나가 ‘글을 남들에게 못 보여주겠어요’다. (‘뭘 쓸지 모르겠어요’와 ‘완성을 못 하겠어요’가 나머지 두 가지 어려움이다) 그림이나 음악은 예술가의 생각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비해, 글쓰기는 좀 더 노골적이라(시는 예외) 그런 걸까? 하지만 자신의 글을 세상에 내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 부작용이 따른다.


하나는 글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읽고 고쳐 쓰고, 또 읽고 고쳐 써도 결국 독자도 자신이고 작가도 자신이라 자신의 틀 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글을 세상으로 많이 꺼내 보일수록, 상처도 많아지지만 그만큼 글도 좋아진다. 그럼 누구에게 보여주어야 할까? 개인적으로 나는 동료가 가장 좋았고, 대중이 그 다음, 지인이 가장 마지막이었다. 글 쓰는 동료들은 글을 보여준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이해하고, 자신의 글에 대한 사랑 또한 이해해서 폐부를 찌르는 말을 따뜻하게 해주는 재주가 있었다. 하지만 무작위로 하는 합평에 참여했다가 인신공격만 당하고 만 적도 많았다. 어떤 것이 작품에 대한 비평이고, 어떤 것이 작가에 대한 공격인지는 합평할 때 분위기만 봐도 알 수 있다. 충고는 늘 그렇듯, 하는 카지노 쿠폰이 즐겁지 않아야 좋은 충고일 확률이 높다.


둘은, 자기의 글을 여기저기 내놓지 않고는 글로 밥 먹고 살 확률이 현저히 떨어진다. 처음부터 “이게 얼마나 어렵게 쓴 글인데! 꼭 출판물로만 내놓겠어!”라거나, “이런 소중한 정보를 SNS에 무료로 뿌릴 순 없지. 그 가치를 알아주는 카지노 쿠폰에게만 보내겠어!”라는 식이라면, 자전거 페달도 밟지 않고 자전거가 씽씽 나가길 바라는 격이다. 나의 포트폴리오를 최대한 많은 카지노 쿠폰이 봐야 내 글이 팔린다. 사과 한 알을 팔아도 쿠팡에도 등록하고 네이버쇼핑에도 등록해야 더 많은 카지노 쿠폰이 볼 테니까. 내 사과가 내 눈에 그렇게 최상품으로 보이지 않아도 상관없다. 실제로 최상품이 아니라면 못난이 사과를 싼값에 사 가길 원하는 자취생이 사 갈 수도 있고, 자신 눈에는 최상품이 아니게 보여도 다른 카지노 쿠폰에게는 세상 최고의 사과일 수도 있는 거다.


이슬아 작가의 산문집에서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자신의 친구들 중에는 자기보다 글을 훨씬 잘 쓰는 사람이 아주 많다고. 하지만 자신이 작가가 되고 그들이 글로 먹고살지 않는 데는 한 가지 차이만 있다고. 꾸준히 자신의 글을 내보이는 부끄러움을 참을 줄 안다는 것이 그것이다. 어쩌면 누드모델을 했던 이슬아 작가의 이력이, 자신을 대중에게 드러내 보이는 직업을 갖는 데 용기를 주었을지도 모른다.


글을 공개하는 게 너무 부끄러운가? 도저히 내 글은 가까운 지인 아니면 보여주기가 어려운가? 그렇다면 최고의 문학작품을 내는 예술가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글쓰기 노동자가 되기에는 적합한 성격이 아닐 수도 있다. 최대한 많은 클라이언트를 사로잡아 글을 팔아야 하는 글쓰기 노동자는, 마치 ‘호외요!’를 외치는 신문팔이 소년처럼 자신의 글을 동네방네 팔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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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자신에게 실망할 준비가 된 카지노 쿠폰


2015년부터 딴짓 출판사로 글쓰기 워크숍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20기가 넘는 수업을 운영했다. 한 기수에 10명 정도의 사람이 들었으니, 약 200명 정도가 수업을 들은 셈이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사람도 있고 독립출판에 성공한 사람도 많지만, 수업이 끝난 후에 글쓰기를 이어가지 않는 사람도 있다. 누가 글쓰기를 이어가지 않냐고? 글을 못 쓰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잘 쓰지만 완벽주의인 사람이 글쓰기를 포기했다. “글 정말 좋은데, 정말 아까운데!” 내가 아무리 부르짖어도, 완벽주의자 수강생은 ‘완벽하지 않은 글’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마치 완벽한 도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도기를 깨는 장인처럼! 이런 사람은 ‘장인’에는 어울리지만 글쓰기 ‘노동자’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실망하는 과정이다. 자신에게 실망할 준비가 되었다는 건, 두 가지를 함의한다. 하나는 내가 실망스럽다는 것을 인정할 줄 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내가 앞으로 나아질 거라는 걸 기대할 줄 안다는 것이다. 작가 중에 ‘자신의 첫 책은 도저히 못 보겠다’라고 말하는 작가가 많다. 얼마 전에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쓴 정문정 작가와 밥을 먹는데, 그녀가 그랬다. “난 진짜 내 첫 책 다시 못 읽겠어요! 이상하게 창피해.” 나도 나의 첫 책인 <딴짓 좀 하겠습니다를 다시 읽지 못한다. 그때의 내가 너무 치기 어리고, 그때의 문장이 너무 수치스러워서 죽기 전에 모두 불태우고 죽는 게 꿈이다. (하하) 다행히 그녀도 나도 첫 책을 쓸 때보다 지금 문장력이 (아주 조금) 좋아졌다. 그때의 내게 실망했지만, 언젠가 나아질 것을 믿는 자세 덕분이다.


세 번째,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카지노 쿠폰


작가라고 하면 새벽부터 줄담배를 피우며 골방에 앉아 있는 걸 상상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하지만 정말 장수하는 유명 작가는 대체로 자신 생활의 리듬을 규칙적으로 잡아가는 루틴러일 확률이 높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새벽에 일어나 글쓰기를 하는 습관을 얼마 동안 유지했는지, 김연수 작가가 장편을 쓰기 전에 몸부터 만드는 이유가 뭔지 안다면, 글쓰기로 먹고살기 위해 생활 리듬부터 잡아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을 거다. 글쓰기 노동자는 기본적으로 프리랜서인 경우가 많고, 혼자 자신의 생활을 다잡을 줄 모른다면 금방 마감을 맞출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들기 좋다. 좋은 글쓰기를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재능’이라기보다는 ‘체력’이 아닐까?


특히 노동의 관점에서 봤을 때, 자신의 생활 리듬을 잘 찾는 글쓰기 노동자가 일을 많이 받는 게 당연하다. 최고의 글을 내기보다 소중한 건? 마감에 맞추는 글을 내는 사람이니까. 나는 주로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자료집을 만들어주는 일을 하는데, 수강생들이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보니 함께 일하기가 좋았다.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도 많아서, 가끔 간단한 글 작업을 맡기고는 했다. 주제는 복잡하지 않았다. 신입사원이 알아야 할 매너를 주제로 짧은 글을 써달라거나, 3-4개의 질문으로 이루어진 미니 인터뷰를 정리해 달라는 식이었다. 다들 잘 해주었는데, 한 번은 글을 써주기로 한 사람이 연락이 되지 않았다. 마감일이 다가왔는데 글도 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대로 잠수를 탔고, 반년 후에 만났을 때 쩔쩔매며 고백했다. 잘 쓰려고 하니까 도저히 써지지 않았다고. 너무 괴로워서 도망가 버렸다고. 그녀 자신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지만(정신건강이 어려울 땐 도망갈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그녀에게 다시 일을 맡길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중앙일보의 매거진 ‘폴인’의 링커로 꾸준히 청탁을 받는데, 편집진에게 나는 ‘급할 때 찾는 초롱 작가’로 알려져 있다. 사무실에서 이런 대화가 오간다고 들은 적이 있다.


“이거 마감 진짜 급해요!”

“초롱 작가에게 연락해요!”


폴인과 일하면서 나는 단 한 번도 마감을 어긴 적이 없다. 대부분의 클라이언트와 일할 때도 마찬가지다. 글의 퀄리티보다 중요한 게 마감이라는 걸 알아서다. 생활을 잘 단도리해야만, 마감을 지킬 시간을 낼 수도 있다. 꼭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래도 마감을 지킬 수만 있다면. 그러나 누군가의 회초리 없이는 한없이 무너지는 사람이라면, 혼자 일하는 글쓰기 노동자는 직업으로서 추천하지 않는다.



당신은 글쓰기 노동에 적합한 사람일까? 굳이 ‘작가’라고 말하지 않고, ‘글쓰기 노동자’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다. 나는 글을 써서 발표하는 사람은 누구나 작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글을 팔아서 쌀을 사고 밥을 짓는 건 다른 일이다. 예술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직업의 영역, 생활의 영역이다. 그러니 이 글은 ‘예술가가 되는 법’이라기 보다는 ‘적당한 노동자로 사는 법’이라고 읽어주면 좋겠다.


당신이 글쓰기 노동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면, 다음 레터를 기다려 보기를. 다음 레터 주제는 ‘나만의 글쓰기 주제와 영역 설정’이다. 그때까지, 잘 먹고 살기를!


<글쓰기로 먹고살기는글쓰기로 밥벌이를 꿈꾸는 독자를 위한 뉴스레터입니다. 특히 화려한 등단 이력을 가지지도, 국문학과나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하지도 않은 '이 세계 흙수저'들을 환영합니다. 밑천없이 시작해서 글로 먹고 살고 있는 박초롱(활동명 정만춘)의 노하우(라고 쓰고 밥벌이를 향한 안쓰러운 몸부림이라고 읽는)를 공유 드립니다! 아래 링크에서 신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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