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내내 인후염으로 칩거 중이다. 보통 목감기라 하지만 기침, 콧물등의 감기증상은 없으니 갑갑증도 풀 겸 그림 모임에 나갔다. 각자 따로 그림을 그리고 잠시 쉬는 시간, 꽉 잠긴 목소리에 마스크까지 가세하여 대화가 되지 않았다. 수다를 못하는 모임은 앙꼬 없는 붕어빵, 다음 약속을 취소하고 자발적 고립에 들어갔다. 매일 나가야 하는 사람과 달리, 나는 하루, 이틀 정도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있어야 밖으로 나갈 에너지(정신적)를 얻는다고 고상하게(?) 말하곤 했는데, 역으로 말하면 일주일에 두, 세 번은 나가줘야 한다는 것이다. 잘난 척하고 싶을 땐 전자를 들먹였지만, 지금은 후자가 진실이다. 귀족인 척했지만 역시 나는 자유로운 평민이라는 팩트.
고립은 몇 년간의 코로나로 익숙한 감은 있지만 온 세상 사람들과 같이 겪는 것과 혼자만의 고립(날씨, 건강 등)은 다르다. 왠지 억울하고 더 갑갑하다. 이럴 때 비법은 혼놀 메뉴 뒤적이기. 그중 시급한 건 미뤄두었던 글쓰기. 글쓰기는 오롯이 나와 노는 것, 고립을 넘어 고독한,최고강도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다.
1인 가구의 증가, 주택형태의 변화, 개인주의 성향의 팽배, 사회, 경제적 요인으로 혼자 하는 목록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혼밥, 혼쇼, 혼술, 혼영, 혼여, 신조어라 특별할 것 같지만 대부분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다. 영화는 혼자 봐야 오롯이 내 감정에 집중할 수 있고 쇼핑도 내 스타일에 맞게, 내 방식대로 해야 하고. (누군가 옆에서 부추기고 거드는 구매는 취소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나갈 일이 없으면 아침, 점심도 대부분 혼자 집에서 해결하고 여행은 얼마 전까지 혼여를 즐기다 지금은 조금 싫증난 상태, 마음 맞는 사람들과의 여행을 도모해 보지만 각자 사정으로 여건 맞추기가 쉽지 않다.
혼자 논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부분 카페나 공원등 사람들 속에서의 혼자다. 이런 곳은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듯한 느낌을 준다, 혼자가 힘든 사람들의 자구책이 되어줄 수는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혼자는 아니다. 집이나 작업실같이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인 것이 진정한 혼자다. 구태여 명명하자면 혼집. 혼집은 내 것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누구의 눈치 없이 하고 싶은 것, 또는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외로움이라는 기본값을 치러야 있다. 음이 소거된 텅 빈 공간은 자유와 함께 구속을 느낄 수도 있다. 내 의지와 하는 일에 따라 극과 극의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효기간이 필요하다. 편함이 어느 순간 나태로 변하고,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고 갇힌 느낌이 들면서 내 작업도 탄력을 잃을 때쯤, 슬슬 탈출을 시도한다. 어반을 잡든지, 친구를 만나든지, 나갈 일이 없다면 스스로 만들기도 한다. ‘혼자’가 되기 위해서 ‘같이’가 필요하다는 핑계 같은 역설, 그 역설에 비율은 불문율이다. 시소 놀이를 하듯 ‘혼자’와 ‘같이’는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혼놀은 요즈음 새로운 트랜드로 자리 잡은 듯 보이지만, 예전부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뤄진 주요한 철학 개념이다. 자신을 알고, 자신을 믿고 자신을 신뢰하기. 그런 맥락에서 소트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가 혼놀의 시초일 수도 있다. 니체 또한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라는 책에서 자유와 고독을 최고의 가치로 두었으며 요즈음 재조명되고 있는 랄프 왈도 에머슨의 자기 신뢰(Self-relience)는 고립철학의 결정판이다. 1, 자기 자신을 믿고, 2, 내가 만물의 중심이 되고, 3, 혼자서 가라. 세 단락의 문장만으로는 실행 불가능할 것 같지만 읽다 보면 수긍이 가고 구구절절 와닿기도 한다. 문제는 이론과 현실의 괴리, 인식하는 것과 행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에머슨은 ‘혼자서 살아라’라고 했지만 관계 선호자인 나는, 나를 알고, 사랑하고, 자신과 친해져야 세상과 타인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각색?)하기로 했다. 자신과 친해지면 자존감이 높아지니 타인과 친해지기도 쉽다는 생각. 거꾸로 말하면 자기를 모르고 자가와 친하지 않으면서 타인과 친해지기는 어렵다. 쉽게 만나고 쉽게 돌아서는, 소모성 감정은 우리를 지치게 한다. 요즈음 차고 넘치는 자기 계발서는 세상이 그만큼 시끄럽고 쓸데없는 정보로 넘쳐나고 있다는 반증,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혼놀이다.
개나리, 생강나무 꽃, 민들레.. 창밖이 며칠새 노란 봄옷으로 갈아입었다.
노랑 옷, 흰 옷, 분홍 옷.. 시끄러운 세상에, 봄은 모르는 척,옷 바꿔 입기 놀이에 한창이다.
고립이 길어지면서 뒤적여본 혼놀 메뉴, 일단 글쓰기로 한 건 올리고, 지금은 ‘같이’에 빙점을 찍을 때,이제 봄을 맞으러 나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