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단단입니다.
몇년 전, 좋아하던 OO작가님의 북토크에 간 적이 있어요. 늘 책으로만 보던 분을 드디어 실제로 만난다니. 두근두근 심장을 부여잡고 북토크 장소로 향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북토크에 간 걸 후회했어요. 제가 생각하던 이미지와 너무 다른 작가님의 말투에 실망했고, 배신당했다는 생각마저 들더라고요. 집에 돌아와 서가에 꽂아둔 작가님의 책들을 허망하게 바라봤습니다.
시간이 흘러 OO작가님의 책이 새로 나왔길래 사서 읽었어요. 좋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던 분명하고 또렷한 날 선 생각들, 피식 웃음 짓게 하는 유머 감각, 선을 넘을듯 말듯 아슬아슬한 비판 의식까지 다 좋았어요.
얼마 뒤 팟캐스트에서 작가님의 인터뷰를 들었어요. 그리고는 또다시 제가 실망했던 그 말투에 실망했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그분을 싫어하게 되었냐고요? 아니요. 여전히 그분의 글과 생각이 좋아요.
그후에도 비슷한 경험이 더러 있었어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은 후, 푹 빠져서 곧장 도서관으로 달려가 다른 에세이를 모두 빌려 집에 돌아와 펼쳤는데... 에구머니나! 이 아저씨는 여성을 아주 그냥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거예요. 실망해서 냉큼 덮어버렸어요.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싫어하게 되었냐고요? 아니요, 좋아합니다. (하루키 팬 여러분 죄송합니다... 못난 저를 용서해주세요)
우리는 이렇게 누군가를 100% 좋아하지도 100% 미워하지도 않아요. 어떤 모습은 좋아하고 어떤 모습은 미워카지노 게임 사이트 거죠. 만약 모든 모습을 좋아카지노 게임 사이트 상대가 있다면 아마 그건 상대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거나, 그의 단점을 눈감아 주었기 때문일 거예요. 평생을 함께한 나 자신도 순간순간 마음에 안드는데 어떻게 타인이 온전히 마음에 들 수가 있을까요?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한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왜, 온전히 사랑받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하는 걸까요.
온전히 사랑받지 못할 바에야, 세상에 나를 카지노 게임 사이트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얼마 전, "틀려도, 욕먹어도, 그럼에도 세상에 나를 카지노 게임 사이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카를로 로벨리의 <화이트홀이란 책을 만났습니다. 우주에 관한 책이었지만, 과학자로서 카를로 로벨리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와닿았어요.
자신의 주장을 철회카지노 게임 사이트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것은 뭔가를 배운다는 거니까요. 최고의 과학자는 자신의 주장을 자주 철회카지노 게임 사이트 사람입니다. 아인슈타인처럼 말이죠.
틀린 것을 발표할 용기가 없다면 아인슈타인이 될 수는 없는 것이죠.
<화이트홀, 카를로 로벨리
아마 저는 아인슈타인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사람들과 생각이 다를 지라도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거든요. 물론 사람들의 냉소와 비난은 늘 두렵습니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 사이트으로부터 '당신이 옳다'라는 이야기만 들으려고 했다면, 아인슈타인은 아인슈타인이 될 수 없었을 겁니다.
아인슈타인의 목표는 틀리지 않는 것, 욕먹지 않는 것, 미움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는 진실에 가까이 서는 것'이었으니까요.
사람들은 말하게 두어라. 바람에도 꼭대기가 흔들리지 않는 탑처럼 굳건히 서라. 결국 과학을 한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목표는 이해에 다다르는 것입니다. 자신의 길을 가다보면 명료함이 카지노 게임 사이트날 것입니다. 때가 되면 말이죠. 자신을 믿지 않는 무한한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외로운 길을 갈 힘을 얻으려면 무한한 오만함도 필요합니다. 길을 열었던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했습니다.
<화이트홀, 카를로 로벨리
아인슈타인처럼, 과학자처럼, 카를로 로벨리처럼 되려면 사람들은 말하게 두고, 나는 내가 할 일을 해야 카지노 게임 사이트 거죠. 물론 이건 외로운 길입니다. 로벨리의 말처럼 겸손함과 함께 오만함이 필요한 일이죠.
저는 길을 열고 싶었어요. 틀릴 수도 있고, 미움받을 수도 있고, 눈물을 흘리며 주장을 철회해야 할 수도 있겠죠. 그렇다고 상처받은 채로 웅크리고 누워있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려면 이걸 인정해야겠더라고요.
나는 완전무결하지 않다.
이걸 인정하니까 내가 틀리는 게, 미움받는 게, 욕먹는 게 너무 당연하더라고요. 오히려 어느 누구도 완전무결할 수 없는데, 아무것도 틀리지 않는다는 게, 아무에게도 미움받지 않는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고요.
가수 요조는 비건을 지향하지만 완벽한 비건이 되지 않기 위해 일부러 고기를 먹는다고 합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완전무결할 수 없죠. 옳은 행동만 하려고 하다 보면 내가 완전무결하다는 착각에 빠져요. 그러면 나와 다른 상대를 비난하게 됩니다.
반대로 나부터 완벽하지 않다고 선언카지노 게임 사이트 거예요. 나는 틀릴 수 있다고 먼저 말카지노 게임 사이트 거예요. 그렇게 하면 일단 저부터 남을 비난할 수 없고, 다른 사람들도 본인이 틀렸다는 데 저를 더 비난할 수 없을 거예요. 대화가 가능해지는 거죠.
저는 그 어떤 신념도 100%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저는 완벽해지고 싶지 않아요. 항상 옳고 싶지 않아요. 저는 언제든 기꺼이 틀릴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건 너무 당연한 일이기에 틀리는 게 두렵지 않아요. 두려울 게 없으니 당당하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카지노 게임 사이트낼 수 있게 됩니다.
완벽한 OO주의자가 되지 않는 게 삶의 목표예요. 채소를 좋아하지만 완벽한 비건이 되고 싶지 않고, 정리를 좋아하지만 완벽한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지 않아요. 한 가지 정체성에 갇히지 않고 복합적인 여러 모습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요.
완벽하려고 하면 삶이 너무 무거워지고, 무겁게 사는 사람은 무서워지거든요. 무서운 사람 곁에 사람이 남아있을 수는 없겠죠.
저는 애매함을 사랑하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요.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경계에 서 있는 것이 불안하고 외롭긴 하지만, 그 덕분에 다양한 세계를 오갈 수 있더라고요. 앞으로도 저는 이방인, 경계인으로 균형을 잡으며 살아가는 게 목표예요.
이런 태도는 사실 인간의 본성에 반항하는 일이기도 해요. 인간은 확실함을 사랑하도록 진화했거든요. 인간은 사회적인 종이잖아요. 집단에서 퇴출당한 인간을 기다리는 건? 죽음이죠. 인간은 집단 안에 소속되기 위해 '확실히 여기 사람이 맞다'는 걸 쉼 없이 보여주며 살아갑니다. 그게 수만 년 넘게 우리에게 각인된 본능이니까요.
사람들은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죠. (행동이 아니라 '말'을 하죠. 행동으로 보여주면 집단에서 퇴출당할 지도 모르니까 너무 무섭거든요.)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건, 내 뺨을 때린 사람의 얼굴을 다시 보는 일입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죠.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에서 주인공 애순이가 자신을 구박하고 심지어 뺨다구까지 때린 시어머니에게 '그걸 어떻게 잊겠냐'고 하면서도 곧이어 '근데 이미 퉁쳤다.'고 말카지노 게임 사이트 장면이 있어요.
저는 이 장면이야말로, 삶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단 하나의 진리라는 생각을 했어요. 나로서 살아간다는 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요지경일 수밖에 없는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역시 요지경인 나 자신도 있는 그대로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거라고요.
의사소통의 진정한 목적은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물에 가까이 다가가고, 사물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가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할 때, 우리는 그들에게 뭔가를 말하기 위해 대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죠. 우리는 그들과 대화하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뭔가 말할 것이 있다는 구실을 대는 것입니다.
<화이트홀, 카를로 로벨리
다시 드라마 <폭싹 속았구다 속 한 장면을 떠올려봅니다. 식구를 먹여 살리겠다고 TV는 커녕 잠도 제대로 못 자고서 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갔던 관식이는, 딸 금명이와 말 한마디 섞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TV에 연예인이 나올 때마다 "쟤가 성유리냐."고 묻습니다. 거기에 대고 아니라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일까요. 대화하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뭐라도 말할 구실이 필요해서 던진 질문인걸요.
결국 우리가 그토록 틀리지 않으려고, 욕먹지 않으려고, 완벽해지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그저 '대화'하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아닐까요? 그렇다면 틀리더라도, 욕먹더라도 그냥 계속 말을 건네면 되는 거죠.
혹시... 눈치채셨나요? 이 글은 "좋은 댓글만 받고 싶어서 점점 더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어려워진" 제가 몇 달 동안 묵혀온 고민입니다. 부정적인 반응이 두려워서 점점 더 안전한 주제만 다루게 되고, 제 진짜 이야기는 숨기게 되더라고요. 이 고민을 일단락 짓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어서 글로 정리합니다.
후! 이제야 시원하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겠어요. 몸 사리지 않고 그냥 하려던 말을 하면서, 앞으로도 완벽하지 않게 기꺼이 틀리면서 제 이야기를 계속 해보겠습니다. 제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건, 그저 솔직한 '대화'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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