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카지노 게임재유기_프롤로그
나는 카지노 게임을 참 좋아한다. 어느 정도냐면, 내 가족들을 사랑하는 것보다는 조금 덜 사랑하고, 나 자신을 좋아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좋아하는 정도다. 남은 삶 동안 카지노 게임을 먹기 위해 재산의 절반을 포기해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포기할 것이다. (오히려 빚이 절반으로 줄어드니 경제적으로 이득이기도 하다.)
카지노 게임은 아침에 먹고 점심때 또 먹어도 맛있고, 일주일 동안 다이어트를 하다가 치팅데이에 먹어도 맛있고, 같이 식사하기에 몹시 거북한 사람들이랑 같이 먹어도 맛있다. 나는 초등학생 때 카지노 게임을 끓여 먹다가 작은 불을 내서 부엌의 행주를 다 태워 먹은 적이 있는데, 그때 부엌 정리를 끝내고 먹었던 다 불은 카지노 게임도 참 맛있었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흑백요리사]를 보았는데, 요리사들이 저마다의 철학을 음식에 담아내는 것이 아주 멋져 보였다. 같은 맥락에서 카지노 게임 맛의 본질을 생각해 보면, 나는 '겁쟁이의 맛'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카지노 게임의 맛은 겁쟁이의 맛이다. 자기 확신 따위는 없다. 어떻게든 먹는 이의 입맛에 들기 위해서는 선명한 짠맛이 있어야 하고, 누구의 치아도 거슬리지 않게 할 식감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가격도 저렴해야 한다.
만약 음식이 말을 할 수 있다면, 파인다이닝 음식들은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어이 자네. 나를 믿고 내 몸을 한입 베어 물어봐. 내 손을 잡아. 네가 그동안 알아채지 못했던 세계를 가르쳐 줄게. 어때? 멋지지? 10만 원이 아깝지 않지?"
반면, 카지노 게임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기요. 정말 미안한데, 혹시 제가 입에 맞으실까요? 혹시 맛이 없으면 제가 소금이랑 고춧가루를 좀 더 담아 올게요. 제발 한 입만 먹어주세요. 그리고...혹시 그러니까 저한테 1000원만 써주실 수 있나요? 제발요."
나는 당연히 겁쟁이의 편이다.
이 매거진은 내가 그동안 먹었던, 혹은 먹을 카지노 게임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마트에 가면 수많은 종류의 카지노 게임들이 있다. 그리고 분식집에서는 저마다의 스타일로 조미를 가한 카지노 게임을 내놓는다. 더군다나 카지노 게임은 끓이는 사람에 따라서도 맛이 다르며, 같은 사람이 끓여도 항상 같은 카지노 게임은 아니다.
이 매거진을 쓰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에 있는 글이란 중요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그릇이다. 사랑. 돈. 희망. 즐거움. 여행의 경험. 행복한 시절. 그리운 이에 대한 추억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카지노 게임에 관한 글이 없다니! 그건 말이 안 되지.
시간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튀긴 면발과 동결 건조 수프가 뜨거운 물속에서 위대한 존재로 태어나고 있다. 육개장 사발면부터 불닭볶음면까지. 이차란 라멘에서 텍사스식 딸기카지노 게임까지. 카지노 게임에 대한 길고 즐거운 여정을 시작해 보자. 다 같이 겁쟁이의 맛에 빠져보자. 이제 K카지노 게임재유기를 시작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