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해가 아직 창문을 온전히 밝히지 못했을 때, 난 부엌 불을 켠다.식탁 위엔 전날 밤 미리 꺼내 둔 도시락 통과 재료들이 잔뜩 놓여 있다.아직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오늘은 어떤 반찬을 넣어볼까 고민하는 순간이 즐겁다.
계란말이, 김밥, 샐러드, 혹은 달콤한 소시지 볶음.... 사실 선택지는 무궁무진하지만, 막상 매일 아침이 되면 또 막막해진다.
결혼 전까지는 밥솥 버튼 누르는 것도 버거워했던 내가, 이제는 매일 아침 뭔가를 볶고 지지고, 계란말이를 말아가며 하루를 시작한다. 물론 실력은 여전히 어설프다. 뒤집다가 찢어진 계란말이를 보고 잠시 좌절하기도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정성껏 도시락 통에 담는다.
아내와 나는 같은 직장에 다니지 않기에 점심을 같이 먹지는 못한다. 대신 도시락을 통해 서로를 응원하는 방식으로 하루를 보낸다. 처음 아내를 위해 도시락을 싸던 날, 나는 긴장과 기대가 뒤섞인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 전날 밤엔 유튜브를 통해 반찬 메뉴를 고르느라잠을 설쳤고, 새벽같이 일어나 떨리는 손으로 칼질을 했다. 어설프게 완성된 도시락을 내밀며 아내의 반응이 궁금해 초조해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점심시간 내내 나는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맛이 없다고 하면 어쩌지?", "안 먹으면 어떻게 하지?" 온갖 걱정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그러다 마침내 온 메시지 하나.
"생각보다 맛있었어. 내일도 부탁해. :)"
그 짧은 문장에 나는 소리 내어 웃으며 환호했다. 주변 동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상관없었다. 아내가 맛있다고 한마디 한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그러나 언제나 완벽한 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저녁, 사소한 오해로 우리는 크게 다투었다. 아침이 되어도 서로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도시락을 준비하는 내 마음은 어둡기만 했다. "도시락을 줄까, 말까?" 고민했지만, 습관처럼 도시락을 건넸다. "맛있게 먹어." 차갑게 도시락을 건네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날 하루, 나는 계속 마음이 불편했다. 도시락을 먹었을까? 화가 나서 그대로 방치하지 않았을까? 퇴근할 무렵, 조심스럽게 온 메시지 하나가 나를 다시 숨 쉬게 만들었다.
"도시락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오늘 계란말이가 최고였어."
퇴근 후 현관에서 마주친 아내의 얼굴에도 어색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나 역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 그 계란말이, 오늘 한 세 번쯤 뒤집다 실패한 거야."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고, 어색했던 공기가 마침내 풀어졌다.
이후 우리는 도시락을 통해 작은 비밀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메모지에는 "사랑해", "힘내자!", "내일은 내가 만들어 줄게" 같은 짧지만 따뜻한 말들이 담겼다.나는 이 작은 메모를 쓸 때마다 설레었고, 아내는 도시락을 열 때마다 그 메모를 기다리게 되었다.
도시락은 우리 부부의 작은 세계를 담는 그릇이 되었다. 아내가 요리를 잘하든 못하든, 내가 계란말이를 뒤집다가 실패하든, 뭔가 좀 망치든 간에 상관없다. 우리는 이 도시락 안에 서로를 위한 마음을 담는다. 갈등이 생겨도, 사랑스러운 한 끼 식사가 우릴 다시 이어 주곤 한다.
오늘 아침도 도시락을 싸면서 나는 아내의 표정을 상상한다. 도시락 뚜껑을 열자마자 웃음이 번지는 얼굴, 메모를 발견하고 조용히 미소 짓는 모습까지. 그런 아내의 표정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도시락 속에 담긴 작은 비밀이 오늘도 우리 부부를 달콤하게 연결해주는 최고의 양념이 되기를 바라면서그것이면 충분하다 생각한다. 우리는 하루하루 그렇게 도시락을 나누며, 평범하지만 의미 있는 행복을 만들어 가고 있으니까.